[뉴스토마토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이건 사실상 불문율이었다. 충무로 영화 제작 현장에서 1000만 돌파는 ‘신의 선물’이라고 한다. 그만큼 어렵고도 힘든 일이다. 당연하다. 하지만 그게 코미디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불문율이 아니라 불가능이다. 국내 상업 영화에서 1000만 돌파는 지금까지 총 17편이었다. 이 가운데 ‘코미디’는 2013년 개봉한 ‘7번 방의 선물’이 유일했다. 포괄적인 관객 유입이 불가능한 장르다. ‘웃음’이란 코드 자체가 세대를 나누는 기준점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7번 방의 선물’이 세대 불문의 공식을 따르기는 했다. 하지만 웃음과 함께 눈물이 더했다. 그러나 ‘극한직업’은 다르다. ‘웃음’ 하나에 오롯이 집중했다. 세대 불문 공감이다. ‘극한직업’이 깨버린 선입견은 상당했다. 1000만 흥행이 아직도 진행 중인 ‘극한직업’의 흥행은 그저 운일까. 현장의 목소리는 ‘아니다’에 힘이 실린다.
♦ “불가능을 뚫어 버린 가능”
국내 중견 제작사 대표이자 현직 감독인 A씨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7번 방의 선물’ 같은 케이스는 다시는 나올 수 없단 게 현장의 공통된 의견이었다”면서 “색깔이 분명히 다르지만 ‘극한직업’이 그걸 깨버렸다. 나 조차도 놀랍다”고 전했다.
A감독에 따르면 코미디는 세대별 공감대와 웃음의 코드 변천사, 여기에 시대상이 반영된다. 때문에 전 세대에게 고른 지지를 받기가 의외로 불가능에 가까운 장르다. ‘7번 방의 선물’은 코미디와 신파를 적절히 뒤섞은 법정 드라마였다. 각각 820만과 860만 관객을 동원한 ‘과속스캔들’과 ‘수상한 그녀’는 동양권의 가족 정서가 녹아 든 코미디를 활용했다. 앞서 세 편의 영화가 세대를 나누는 웃음의 경계선을 구분 지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시장의 흥행 마지노선으로 불리는 1000만 돌파에는 실패한 영화였다. ‘7번 방의 선물’은 코미디보다는 신파의 코드가 그 선을 꿰뚫은 동력으로 더 크게 작용했다.
A감독은 “’극한직업’은 다른 코드를 배제했다. 오롯이 웃음 하나에만 집중한다”면서 “그 어떤 설정이나 장면에서도 ‘웃음’을 놓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관객들이 흐름을 잃지 않는 집중을 발휘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모든 배역이 ‘코미디’란 장르 안에서 모든 것을 해석할 수 있다”면서 “이병헌 감독이 전작 ‘스물’과 ‘바람바람바람’에서 선보인 캐릭터 활용법이 돋보였다. 상업 영화 감독으로서 쉽게 내릴 수 없는 결정이다”고 평가했다.
영화 '극한직업' 스틸. 사진/CJ엔터테인먼트
♦ “정공법이 오히려 정답”
A감독처럼 ‘코미디’ 하나에만 집중한 ‘극한직업’의 무리수(?)가 오히려 독이 아닌 약이 됐단 시각도 있었다. 최근 코미디 영화를 기획 중인 한 제작사 대표 B씨는 “이병헌 감독도 당연한 얘기지만 이 정도의 흥행을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면서 “국내 흥행 정서와는 분명히 상반된 공식을 따라가는 영화가 ‘극한직업’이다”고 전했다.
이병헌 감독도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매 장면, 매 컷마다 ‘코미디’를 집어 넣는 것이 ‘극한직업’ 연출의 핵심이었다”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웃음을 위한 코미디로 도배를 하자는 심정으로 만들었다”고 덧붙인 바 있다.
B씨에 따르면 국내 상업 영화의 경우 메시지와 반전 그리고 두 가지 이상 장르의 특성을 혼합한 장르 교배가 일반화돼 있다. 앞서 언급한 ‘7번 방의 선물’도 코미디가 메인 정서이지만 지적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판타지를 결합한 영화적 해석 그리고 법정 드라마로서의 풀이가 돋보였다. 마지막 결말 지점에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최루성 시퀀스는 압권이었다.
B씨는 “’극한직업’은 별다른 메시지를 넣으려고 하지 않은 가벼움이 돋보였다”면서 “세대별 공감의 ‘보이지 않는 벽’이 이 영화에선 무의미하게 보였다”고 전했다. 이어 “’반전 강박증’ ‘메시지 강박증’으로 귀결되는 국내 상업 영화 시장에 꽤 유의미한 지점을 ‘극한직업’이 짚어줬다고 생각한다”면서 “상업 영화 제작자나 감독이라면 분명히 생각해 볼만한 지점이다. 그 고민을 ‘극한직업’이 해결해 준 셈이다”고 언급했다.
영화 '극한직업' 스틸. 사진/CJ엔터테인먼트
♦ 코미디의 해법
코미디를 활용하는 방식에서도 ‘극한직업’은 돋보였다. 현직 시나리오 작가 C씨는 “리듬감이 워낙 좋았다”면서 “작가와 연출자가 시나리오를 위해 고민한 지점이 많이 보였다”고 말했다.
C작가에 따르면 ‘극한직업’의 최고 장점은 이미 언론과 팬들이 언급한 ‘말 맛’이었다. 그 ‘말 맛’이 단순한 ‘말장난’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상황과 캐릭터의 특성을 고려한 대사의 취사 선택이었다. 여기에 대사가 담고 있는 리듬감이 웃음을 터트릴 수 있게 관객들에게 적절한 호흡을 선사했다는 점이다.
‘극한직업’은 이병헌 감독의 ‘말 맛’ 대잔치로 관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이 감독의 솜씨가 아니다. 지난 해 개봉해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520만 관객을 끌어 모은 ‘완벽한 타인’ 시나리오를 쓴 배세영 작가의 솜씨다. 배 작가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이 감독이 각색을 했다. 이 감독은 충무로에서 내로라하는 각색 작가다. ‘과속스캔들’ ‘써니’ ‘타짜-신의 손’이 모두 이 감독의 손에 의해 각색된 작품들이다.
이 감독은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영화 속 대사의 리듬감이나 말 맛은 모두 배세영 작가님의 힘이다”면서 “각색 작업에서도 대사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내가 추구하고 해보고 싶은 코미디의 리듬감이 절묘하게 담겨 있었다”고 추켜세웠을 정도다.
C작가는 “’완벽한 타인’의 경우 한정된 공간 속에서 배우들의 연기력에만 오롯이 기댄 채 스토리 흐름을 이어간다”면서 “이런 구성은 필연적으로 대사의 리듬감이 강해야 한다. 그 리듬감은 배우들의 주고 받음에서 절묘하게 살아나야 한다”고 전했다.
‘극한직업’ 주인공 ‘고반장’을 연기한 류승룡조차도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대사가 정말 절묘했다”면서 “꼭 날 꿰뚫어 보고 맞춤형으로 쓴 대사 같았다. 대사를 쏟아내는 방식을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리듬이 세밀하게 계산된 채 구성된 느낌이었다”고 설명했다.
영화 제작사 대표이자 감독인 A씨는 “지난 해 추석 시즌부터 한국 영화들이 연이어 흥행에 실패했다. 이번 겨울 시즌도 마찬가지였지 않나”라면서 “’극한직업’의 1000만 돌파가 대진운이라고도 평가는 하는 시선이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바라본 결과는 순전히 작품 자체의 힘이 강했다. 이 정도의 색깔과 뚝심을 낼 코미디 영화가 다시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정도로 ‘극한직업’은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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