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배우 엄지원에겐 2013년을 기준으로 앞과 뒤가 다르다. 우선 2013년 이전에는 엄지원의 배우 생활은 가볍고 발랄하고 교과서적인 캐릭터 연기가 많았다. 이런 교과서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정형화된 작품 출연이 대부분이었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한계성을 분명히 느꼈을 것이다. 2013년 엄지원은 엄청난 도전을 하게 된다. 캐릭터적인 변화도 분명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도저히 쉽게 접근하기 힘든 작품이었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소원’에서 엄지원은 끔찍한 성폭행을 당한 초등학생 딸을 둔 엄마를 연기했다. 그는 지금도 ‘소원’을 자신의 필모그래피 기준점이라고 자신 있게 얘기했다. 대표작이나 최고작이 아닌 기준점이다. 엄지원은 2002년 데뷔 이후 이 작품 전까지가 성장기였다. 그리고 이 작품 이후가 발전기가 된다. 이제 그는 또 하나의 기준점을 갖게 될 듯하다. 이건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색깔의 작품이다. 본인 역시도 맞장구다. 영화 ‘기묘한 가족’은 엄지원에겐 또 다른 기준점이 될 것이 확실하다.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자신만의 배우 신념을 드러낸 엄지원의 그 기준점은 분명해 지기 시작했다.
배우 엄지원.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에서 엄지원과 만났다. 영화 자체가 워낙 기묘하고 색다른 톤 앤 매너를 갖고 있기에 대중들의 반응이 궁금했을 법했다. 본인 역시 궁금하단다. 아니 우선 영화 자체에 대한 궁금증이 아주 컸다고. 시나리오로 읽은 ‘기묘한 가족’은 자신을 가장 많이 웃긴 작품 중 하나였단다. 이미지로 그려진 이 영화의 실체가 더욱 궁금했었다고.
“설 연휴 전에 열렸던 언론시사회에서 처음 봤어요. 사실 제가 이런 색다른 영화를 너무 좋아해요(웃음). 뭐랄까. 취(향)저(격) 영화에 대한 호기심이 아주 커요. 우선 제가 좀비 장르를 너무 좋아해요. ‘워킹데드’는 시즌1부터 본방 사수로 시청할 정도였으니. 하하하. ‘기묘한 가족’은 배우들이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서 재미를 무제한으로 끌어 올릴 여지가 많아 보였죠. 결과적으로 배우인 나는 ‘표현만 잘하면 되겠다’ 싶었죠. 감독님이 완전 제 취향을 저격하셨어요(웃음)”
엄지원 자신의 취향을 저격했다고 하지만 타이밍도 적절했다. 그는 ‘소원’부터 시작해서 연이어 감정을 극한으로 끌어 올리는 작품을 연달아 도 맡아왔었다. 본인 스스로가 그런 작품을 찾았던 것은 아니란다. 그 시기 기묘하게도 감정적으로 어둡고 힘든 작품들이 충무로에 트랜드처럼 쏟아졌다. 그 작품 가운데 가장 완성도가 높고 자신의 색깔과 잘 맞아 떨어지는 작품을 선택하고 골라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분위기를 전환시킬 필요성을 느꼈다고.
배우 엄지원.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소원’부터 ‘더 폰’ ‘경성학교’ ‘미씽: 사라진 여자’ 그리고 ‘마스터’도 마찬가지였어요. 감정적으로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는 작품들을 해오다 보니 뭔가 내가 껍데기만 남은 느낌이었죠. 좀 분위기를 바꿀 필요성을 느꼈어요. 그리고 배우라면 장르를 넘나드는 연기 색깔을 보여주고 싶은 욕구나 그 스펙트럼에 대한 갈증이 분명히 있잖아요. 제가 그게 거의 최고조로 올라왔을 때 딱 ‘기묘한 가족’ 시나리오를 받게 됐어요. 완전 타이밍 죽였죠(웃음)”
엄지원은 좀비 장르의 바이블로 불리는 ‘워킹데드’부터 국내에서 개봉한 좀비 영화 ‘부산행’ ‘창궐’ 그리고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오픈된 ‘킹덤’까지 모두 섭렵했단다. 스스로가 좀비 마니아임을 드러낸 ‘기묘한 가족’의 맞춤형 배우임을 자부했다. 하지만 그는 ‘좀비’ 코드보단 이 영화 속에 등장한 ‘가족’ 코드가 더 흥미로웠고 호기심을 자극했단다. 굳이 따지자면 ‘좀비’보단 ‘가족’이란 단어에 더 이끌렸단 얘기다.
“이 영화의 가장 좋았던 것은 각자 캐릭터가 독특한 가족들 사이에서 끈끈하게 뭉친다는 스토리가 마음에 들었어요. ‘좀비’란 코드를 가졌지만 가족 간 메시지가 있어 좋았고 그런 얘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전작 중 가족극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을 연기했을 때 가장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JTBC 드라마 ‘무자식 상팔자’도 그렇고 ‘기묘한 가족’도 가족이란 메시지 안에 작업하는 게 좋았어요. 그 안에서 배우고 얻어가는 게 정말 많아요.”
배우 엄지원.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사실 정상의 개념에서 조금 비껴나가 있는 모습들이다. 본인이 연기한 ‘남주’도 무뚝뚝하고 어떤 면에선 속을 알 수 없을 정도의 꿍한 모습이 기묘했다. 그는 크게 웃으며 ‘가족 모두가 이상하니 남주가 본인만이라고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했기에 그런 것 아닌가’라며 설명한다. 성격적인 면도 그랬지만 외모적인 부분도 상당히 거칠고 파격적이었다.
“하하하. 아마도 실제 생활에서 가족들이 그러면 실제 엄지원도 남주처럼 변할 거 같아요. 진짜로요. 그걸 어떻게 제 정신으로 버텨요(웃음). 아마도 성격이 거칠게 변해서 그런지 외모도 시골 아줌마처럼 변했죠. 하하하. 저한테 남주란 캐릭터는 만들어 가는 재미가 컸어요. ‘소원’에서 시골 아줌마 외모를 만들었다면 이번에는 더 만화적인 모습을 입히려 노력했어요. 최대한 만화적으로. 임신용 특수복도 입고 연기했는데 할 만했죠 뭐. 하하하.”
워낙 영화 자체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기묘하고 색다른 콘셉트이기에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뉠 것 같단 예상은 누구나 하고 있다.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엄지원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취저’란 단어를 쓸 정도로 본인도 그 지점을 우려하면서도 반대로 그 지점이 강점이라고 여기고 주저 없이 출연을 결정했을 정도다. 그는 자신했다.
배우 엄지원.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이 영화가 ‘거창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그런 스토리는 아니잖아요. 다만 분명하게 말 할 수 있는 건 특별하단 점이죠. 최근 충무로에 등장하는 영화들이 다 천편일률적이잖아요. 장르만 다를 뿐 다들 비슷비슷한 느낌이 강하고. ‘기묘한 가족’은 조금 다르고 엉뚱한 지점이 분명히 있잖아요. 그런 분위기 속에 내가 있다면 어떨까 상상해 봤죠. 이런 느낌으로 선택한 영화가 과거에도 있었어요. ‘페스티벌’이란 영화였죠. ‘기묘한 가족’은 ‘페스티벌’보다 훨씬 더 나아가요(웃음)”
인터뷰 당시 극장가를 휩쓸었고 최근 국내 개봉 코미디 영화 사상 최고 흥행작 타이틀 거머쥔 ‘극한직업’ 흥행에 엄지원은 활짝 웃었다. 코미디가 충무로에서 비주류로 취급을 받고 있었지만 ‘극한직업’이 이 분위기를 뒤집은 것이다. 이런 흥행세가 ‘기묘한 가족’으로 이어지길 기대하기도 했다.
“’극한직업’ 만큼 흥행은 바라지도 않아요. 그런데 배우로서 부럽기는 하죠. 도대체 어떤 기분일까 뭐 그런 느낌이에요. 당연한 얘기지만 흥행은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기묘한 가족’이 그렇게 되지 말란 법도 없고(웃음). 제가 오버하거나 그런 성격이 아니라서. 글쎄요. 이 분위기가 잘 유지 됐으면 좋겠어요. ‘극한직업’ 보신 관객분들은 ‘기묘한 가족’도 한 번 보시고 색다른 웃음을 또 한 번 터트리실 기회를 가져보시는 건 어떨까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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