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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민낯을 다시 한 번…연극 '대학살의 신'
남경주·최정원·이지하·송일국 2년만에 재출연
19일 프레스콜…"네 배우의 앙상블 따라 그날 공연이 달라져"
2019-02-20 19:10:58 2019-02-20 19:10:58
[뉴스토마토 정초원 기자] 교양이라는 가면 속에 숨은 민낯을 파헤치는 작품, 연극 '대학살의 신'이 2년 만에 돌아왔다. 지난 2017년 공연 캐스트였던 남경주, 최정원, 이지하, 송일국이 이번 시즌에도 참여해, 지난 공연의 절묘한 앙상블을 다시 한 번 재연한다. 특히 네 배우는 열정이 앞섰던 2년 전 공연보다 캐릭터 해석이 깊어지고 여유가 생겼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신시컴퍼니
 
'대학살의 신'에서 '아네뜨' 역을 맡은 배우 최정원은 19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아무래도 초연 때는 열정만 가득했던 것 같다"면서 "공연을 하면 할수록 계속 이 작품을 내가 했었나 싶을 정도로 대본이 달리 보이는데, 더 좋아지는 건 확실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살의 신'은 웃음 뒤에 진한 페이소스가 깔린 코미디로, 지식인의 허상을 통렬하게 꼬집는 야스미나 레자의 작품을 원작으로 삼았다. 11살 두 소년이 놀이터에서 싸우다 한 아이의 앞니가 부러지고, 이 사건을 통해 두 부부가 한 공간에 모이며 벌어지는 설전과 육탄전을 그렸다. 대화 초반까지만 해도 지성과 교양, 매너로 똘똘 무장했던 두 부부가 시간이 흐를수록 내면의 이기심과 폭력성을 드러내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위선을 조롱한다. 
 
최정원은 "술이 취하거나 속을 비워냈을 때 나오는 모습을 통해, 아이들보다 더 유치하고 폭력적인 어른들을 볼 수 있도록 표현하려 했다"며 "네 명의 어른 중에 '과연 나는 어떤 캐릭터에 속할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굉장히 철학적인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신시컴퍼니
 
네 배우가 출연진을 동일하게 유지했을 경우에만 작품에 다시 출연하겠다는 조건을 걸었다는 점은 이례적이다. '알랭' 역을 맡은 남경주는 "네 사람이 이번 공연에 같은 캐스트로 한다는 조건으로 작품을 하게 됐다"며 "서로 호흡이 잘 맞아야 하고 네 사람이 굉장히 친밀해야 하는데, 2017년에 돈독히 친밀함을 다져놨기 때문에 더 이상 친밀함에 시간을 쏟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미셸 역을 연기하는 송일국 또한 "배우 생활 하면서 이런 작품 다시 만나기 힘들 것 같다"며 "연습실에 있는 게 행복하고, 무대에 있는 게 행복한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지난번 공연의 평가가 좋았던 탓에 매너리즘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남경주는 "최대한 우리의 바로 앞에서 벌어지는 현재의 순간에 일에 모든 것을 걸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임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 공연보다 작품 전체적으로 개선된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는 게 배우들의 자평이다.
 
'베로니끄' 역의 이지하는 "지난 공연에서는 어떻게든 관객들을 박장대소시키고 싶은 마음에 캐릭터를 좀 더 희화하는 쪽으로 풀었다면, 지금은 최대한 절제했다"며 "좀 더 리얼하면서도 훨씬 이기적인 캐릭터로 연기하는 것이 어쩌면 오늘을 사는 우리 관객에게 좀 더 공감대를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송일국은 "과거에는 소리지르기 바빴던 것 같은데, 이제는 이 무대에 설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쫓아온 것 같다"고 평했으며, 남경주도 "배역에서 '남경주'의 존재를 조금 더 빼고, 이성적인 변호사 '알렝'의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신시컴퍼니
 
네 사람의 앙상블이 얼마나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으냐에 따라 그날 공연의 성패가 갈린다는 게 이 연극이 갖고 있는 재미이자 어려움이기도 하다. 이지하는 "단어 하나, 표현 하나에도 큰 차이가 생기는 연쇄 작용이 있다"며 "절묘한 타이밍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신이 줘야 해낼 수 있는 알 수 없는 영역인 것 같다"고 말했다. 최정원은 "타이밍이 잘 맞았던 날에는 네 배우가 뒤에서 환호를 지른 적도 있다"며 이 작품을 축구경기에 비교하기도 했다. 그는 "어시스트 잘 받고 골을 잘 넣으면 그 때 같이 기뻐지는 게 팀워크이고, 하모니인 것 같다"며 "이런 느낌으로 잘 맞춰서 가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연습 과정에서 네 사람이 서로의 배역을 바꿔서 연기한 적도 있지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았다'는 게 네 배우 모두의 생각이다. 남경주는 "캐스팅 디렉터가 있는 이유가 있더라. 확실히 캐스팅할 때 생각을 깊이 했구나 싶었다"고.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거나 토하는 연기를 해내야 하는 두 여성 배우의 열연도 작품의 관전 포인트다. 이지하는 "연습하다가 '나 진짜 너무 추한 거 아냐?'라는 자의식이 발동돼 대사를 잊어버린 적도 있다"며 "내가 여기까지 가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에라 모르겠다, 가보자' 했다. (최정원)언니가 꽃으로 총탄을 날리듯이 저도 혓바닥과 몸으로 총탄을 날려보자는 생각이다"라고 각오를 밝혔다. 또 최정원은 극 중 아네뜨가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남의 집 거실에서 토사물을 쏟아내는 연기와 관련해 "베로니끄가 만든 파이가 실제로 정말 맛있는데, 공연 시작하면 정말 역겹고 맛이 없어 속이 울렁울렁한다"며 "토하기 전까지 감정을 끄집어 내는 게 재미도 있지만 처음엔 어려웠다. 세 배우가 잘 만들어줘서 할 수 있는 부분으로, 마지막날까지 늘 같은 양의 토가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게 저의 목표다(웃음)"라고 전했다. 
 
사진/신시컴퍼니
 
아울러 남경주는 "연극을 작업하는 이유는 다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뭔가 조금 손해보는 듯하고, 굉장히 어렵지만 기꺼이 모험을 하겠다는 각오다"라면서 "공연과 배우가 좀 더 다양한 시대가 빨리 됐으면 좋겠는데, 저희의 이런 활동이 조금이나마 연극계에 힘이 돼서 다시 관객들을 연극 무대로 불러올 수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어 "재밌는 연극 뿐만 아니라 진지한 연극을 많은 분들이 봤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대학살의 신'은 다음달 24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정초원 기자 chowon616@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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