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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이야기)5·18 망언과 빨갱이
2019-03-06 06:00:00 2019-03-06 06:00:00
‘빨갱이’란 말이 표현의 자유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몇몇 언론과 특정 정당의 정치인들에게서 나오고 있다. 동아일보 김순덕 대기자의 칼럼 <‘빨갱이’를 빨갱이라 부르지 못하는 나라>가 대표적이다. “빨갱이를 빨갱이라 부를 수 없는 나라는 북한과 다름없는 전체주의 국가”라고 강변한다. 정말 그럴까?
 
빨갱이란 말은 표현의 자유로 허용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빨갱이로 낙인찍히면 본인만이 아니라 온 가족이 몰살당하거나 살아남아도 연좌제에 걸려서 제대로 된 공민의 생활을 할 수 없는 무권리의 상태로 내몰렸다. 지금도 한국전쟁 시기의 유해를 발굴하는 현장에서는 어김없이 어린아이의 유골까지 나온다. 엄마의 등에 업힌 어린아이까지 빨갱이로 몰아서 학살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신원을 풀어주지도 못하고 있는 게 이 나라의 현실이다. 
 
극우세력이 국부로 칭송해 마지않는 이승만은 자신의 정치적 반대세력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한국전쟁 이전부터 친일파를 등용했고, 극단적인 반공정책을 사용했다. 여순사건을 계기로 국가보안법을 제정했고, 그때의 국가보안법은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본 따서 만든 악법이었다. 일제가 독립운동가를 사상범으로 처벌했던 법을 갖고 와서 이승만은 자신의 정적들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는데 악용했다. 빨갱이 사냥은 여순과 제주 4.3을 거쳐서 전쟁 시기에 보도연맹과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학살로 이어졌다. 전쟁 뒤에도 군사독재 정권이 필요할 때마다 꺼내 썼던 게 빨갱이 사냥이었다. 
 
이후 빨갱이를 독재정권에서 워낙 많이 남용하다 보니 약발이 떨어지자 등장한 게 ‘주사파’였고, ‘종북좌파’였다. 빨갱이의 주술처럼 이들 용어들도 주술성을 갖고 있다. 합리적인 토론이나 이성이 마비되는 악마의 언어가 빨갱이였다. 단지 사상이 붉으니 처벌하자가 아니고, 그러므로 죽여도 좋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악마의 언어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에는 눈감은 채 빨갱이란 말을 쓸 수는 없다. 반인권의 역사적 유물에다가 인권의 핵심적인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갖다 쓴다는 것은 무식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가치관이 반인권적임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러니까 빨갱이는 우리사회가 규제해야만 하는 대표적인 혐오표현이다.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5.18망언들도 빨갱이 식의 혐오표현이다. 지만원의 헛소리에 자유한국당의 의원들이 동조하면서 논란이 되었는데, 그들에게는 학살의 책임을 북한 소행으로 떠넘기고 전두환과 같은 학살원흉을 영웅화하려는 의도가 있다. 심지어 1980년 5월 광주의 어린아이도 북한군에 동조한 세력으로 보고 있으니 이 얼마나 끔찍한 인식인가. 아마도 어린아이마저도 학살해도 된다는 빨갱이 언어의 주술이 거기에서 발견된다. 한때 논란이 되었던 일베들이 광주학살 때 자식의 관을 붙잡고 통곡하는 유가족의 사진 밑에 “홍어 택배”란 말을 붙여서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이런 일베와 무엇이 다른가. 
 
이런 빨갱이의 언어는 광주 5.18 망언만이 아니라 여성, 장애인, 난민, 이주민 등 소수자 혐오로 이어진다.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혐오표현도 마찬가지였다. 아무 근거 없는 편견에 기초해서 작동하는 혐오의 언어들은 가짜뉴스로 창작되어 번져가고 있다. 이런 혐오표현을 어떻게 규제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과제를 우리는 안고 있다. 
 
늦었지만 차별금지법도 제정하고, 5.18 망언 규제법도 만들어야 한다. 법에 의한 강제규제 외에 사회적 인식을 높이고, 문화를 만드는 연성적인 규제강화도 동시에 추구해야 하지만, 우리 사회의 공론장은 연성적 규제가 제대로 작동할 만큼 건전하지 못하다. 혐오표현이 더 창궐해서 그 비정상의 반인권의 언어들이 표현의 자유처럼 인식되기 전에 빨갱이를 비롯한 혐오표현은 퇴출시켜야 한다. 지금도 늦었는지 모른다. 혐오표현이 아무 규제 없이 창궐하는 사회 뒤에는 무엇이 올까 두렵다. 
 
박래군 뉴스토마토 편집자문위원(pl317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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