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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욱 변호사의 블록체인 법률이슈 진단)STO, 허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불확실한 규제, 시장 혼란 야기…명확한 절차·기준 마련 필요
2019-03-19 06:00:00 2019-03-19 06:00:00
정부가 모든 형태의 ICO(암호화폐공개, Initial Coin Offering)를 금지한다는 방침을 발표한지도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정재욱 법무법인(유한) 주원 파트너 변호사
증권형 ICO(Security Token Offering, 이하 STO)에 대해 자본시장 및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을 적용해 처벌할 수 있다는 방침을 발표하던 2017년 9월 당시에는 정부가 신속히 관련 법령을 제·개정해 ICO에 대해 엄정히 다룰 것처럼 여겨졌으나,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뚜렷한 법령상의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지난 1월 정부는 ICO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P2P대출 유동화 토큰 발행 및 거래, 가상통화 투자펀드 판매, 증권에 해당되는 ICO 토큰 투자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 무인가 금융투자업 영위가 된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는 소위 증권형 ICO라 불리는 STO에 대해 자본시장법을 적용해 제재하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법령상 근거가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위와 같은 방침을 유지 중인 이유는 ICO나 암호화폐 등을 빙자한 사기, 유사수신, 다단계 등 범죄행위가 다수 발생함에 따라 투자자 보호가 시급히 필요하다는 판단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정책의 목표가 블록체인, 암호화폐 산업의 고사 내지 방치에 있었다면(블록체인·암호화폐 산업 육성, 관련 기술의 발전이라는 거창한 목표는 차치하더라도) 일단 성공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과연 이러한 정책이 투자자 보호, 사기 유사수신 등 관련 범죄 감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STO, 자본시장법에 따라 금지된 것인가?

불합리한 규제만큼이나 모호한 규제, 불명확한 규제는 시장의 혼란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현재의 한국 암호화폐 시장이다.
  
실제 ICO와 관련해 정부는 전면 금지 방침만을 발표했을 뿐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법률상의 근거를 마련하지 않아 규제의 공백이 있는 상황이다. 단 자본시장법은 증권의 발행, 유통 등을 규제하고 있는데 증권형 암호화폐의 경우 그 성격이 사실상 증권과 다름없다고 해석할 수도 있으므로 증권형 ICO(STO)에 대해선 법적 공백이 없다고도 볼 수 있다.
 
암호화폐가 증권으로서의 성질을 갖는다면 이를 공모할 때에는 당연히 자본시장법상의 증권공모규정을 따라야 하고, 이를 위반하면 처벌을 받게 된다. 관련 정부기관도 이러한 입장에서 시장을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주요국가에서도 비슷한 규율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STO에 대해 자본시장법이 적용될 수는 있겠지만, STO가 자본시장법에 따라 금지된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 있다. 정부의 입장대로 증권형 암호화폐 발행에 대해 자본시장법이 적용된다고 보면, 역으로 자본시장법이 정한 절차와 요건을 준수한다면 증권형 암호화폐도 합법적으로 발행될 수 있어야 한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정부로 하여금 개별 증권의 발행과정을 모두 심사해 해당 증권의 가치를 정부가 심사하도록 하고 있지 않고, 단지 발행자로 하여금 증권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공시하도록 함으로써 투자자가 본인의 책임 하에 해당 증권의 가치를 판단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명확한 규제가 시장을 바로잡는 길
 
즉 정부가 후견주의적 입장에서 개별 기업의 증권 발행 과정에 전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자제하되, 증권이 발행되는 단계에서는 발행인에 의해 일방적으로 증권의 가격이 결정되기 때문에 해당 증권의 가치가 왜곡될 수 있으므로 발행자로 하여금 관련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자금모집과정을 투명하게 하라'고 하는 것이 현행 자본시장법 증권공모규정 등의 취지이지, '정부가 개별 기업의 자금모집가부를 심사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정부의 입장대로 STO에 대해 자본시장법상의 증권공모규정 등이 적용될 수 있다면, STO를 할 때 자본시장법이 정하고 있는 바에 따라 증권신고서, 투자설명서 등을 통해 그 과정을 '투명하게' 한다면 이를 허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말로만 ICO, STO를 금지하고 방치하는 것보다 오히려 ICO, STO를 진행할 때 준수해야 할 절차나 기준을 제대로 알려주고,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정보 제공을 하도록 하는 것이 사기, 유사수신, 다단계 등 피해를 줄이고 실질적 투자자 보호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요컨대 규제의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걷어내자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지 무조건적으로 규제를 풀자는 것이 아니다. 분명, 피해자 발생이 우려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제한을 통해 규제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법률의 근거가 없는 부분 또는 법률상 절차와 요건을 지키면 되는 부분까지 창구 지도 등을 통해 제한을 하거나 금지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정재욱 법무법인(유한) 주원 파트너 변호사
 
* 정재욱 변호사는 국내 대형로펌 중 하나인 법무법인 세종(SHIN & KIM)을 거쳐 현재 법무법인(유한) 주원의 파트너 변호사로 재직하고 있다. 주원 IT/블록체인 TF 팀장을 맡아 블록체인·암호화폐·핀테크·해외송금·국내외 투자·관련 기업형사 사건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아울러 서울지방변호사회 법제이사를 거쳐 현재 대한변호사협회 상임이사(교육이사)와 대한변호사협회 IT 블록체인 특별위원회 간사, 사단법인 블록체인법학회 발기인·이사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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