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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와 부품사이…'초격차'로 영향력 높이는 삼성·LG
타도' 외치던 화웨이, 삼성을 주요 고객사로 영입…하이센스도도 LG 기술력 인정
2019-03-19 06:00:00 2019-03-19 06:00:00
[뉴스토마토 권안나 기자] “한편에서는 적이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파트너다.”
 
디스플레이·반도체 등 소재업체와 완제품업체의 생존을 위한 ‘적과의 동침’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삼성전자와 미국 애플이다. 양사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격전을 벌이면서 특허를 앞세워 법정 다툼도 마다하지 않는 등 불편한 관계를 숨기지 않았다. 
 
특히 애플은 메모리 반도체와 비메모리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생산), 디스플레이, 부품 등으로부터 삼성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를 비롯해 일본·중국·대만 등의 주요 부품업체들과의 연대를 강화했으며 일부 기업들에게는 자금 투자까지 단행했다.
 
그럼에도 아이폰 생산에 필요한 고품질의 부품에서는 삼성과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지 못했다. 특허 갈등이 계속되는 상황 속에서도 애플은 2011년 이후 8년째 삼성전자의 최대 고객사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양사간 특허 갈등을 조기 해소한 배경에는 애플의 높은 삼성 의존도가 깔려 있다는 설명도 나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같은 저장용량의 메모리 반도체라고 해도 아이폰과 다른 스마트폰 제품에 적용되는 제품은 다르다”면서 “아이폰의 규격에 맞는 제품을 맞춤 생산해 공급할 수 있는 업체는 삼성전자 밖에 없없기 때문에 제품 소싱을 최고로 잘한다는 애플조차 포기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애플의 사례는 중국 업체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새로운 경쟁자로 떠오른 화웨이가 대표적인 사례다. 폴더블폰 시장에 맞불을 놓으며 타도 삼성전자를 외치는 화웨이지만 지난해 삼성전자 5대 주요 고객사에 애플에 이어 처음으로 회사 이름을 올렸다. 화웨이가 더 많은 스마트폰을 판매할수록 삼성전자 의존도 역시 높아져 조만간 애플을 제치고 삼성전자의 최대 고객사로 등극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프레이 등 국내 디스플레이 제조사들은 중국업체들의 패널 공급 과잉 때문에 매출 면에서 상당한 피해를 입은게 사실이다. 하지만 공급량이 많다고 해서 품질도 높은 것은 아니다. 화웨이와 하이센스 등 현지 대형 업체들이 삼성과 LG의 패널과 부품을 구매하는 이유다. 세트 업체들의 입장에서도 자사 제품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앞선 기술력을 내세운 부품에 구미가 당길 수 밖에 없다. 
 
 
 
삼성·LG와 애플·화웨이의 ‘동침’은 사업 규모가 글로벌로 바뀐 상황에서 어느 한쪽도 반드시 우군이거나 반드시 적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삼성과 LG는 세트 부문에서는 열세에 놓이더라도 부품·소재 분야에서 ‘초격차’ 우위를 지켜 나간 덕분에 이러한 관계를 주도할 수 있는 위치를 차지했다.
 
한국과 중국, 미국을 둘러싸 무역 통상 갈등에서도 삼성과 LG의 우월적 지위는 우리 정부에게는 큰 힘이 된다. 미국과 중국 정부가 한국에 통상압박을 가하려고 하더라도 현지 세트업체들이 양사의 부품·소재를 원활히 공급받기 위해 스스로 로비활동을 벌여 제재를 못하도록 하거나 해당 부문은 제외토록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1990년대 중반 메모리 반도체 부족 사태가 벌어지자 미국 대통령이 자국 세트업체들의 성화에 못 이겨 삼성전자에 직접 전화를 걸어 제품을 공급해 달라고 요청했을 정도”라면서 “사실상 전 세계 반도체·디스플레이 공급권을 쥐고 있는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등 덕분에 한국 정부가 미국과 중국, 일본 등과의 통상 협상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러한 힘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치고 나오고 있는 중국업체들이 수년 내에 한국기업을 따라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기업 투자를 늘릴 수 있는 제도적 환경 마련과 더불어, 공학 전공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체계 개선 등의 지원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권안나 기자 kany872@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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