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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항공 사태가 결심 계기, 전날 산은 행장 만나 지원 요청
2019-03-28 18:56:26 2019-03-28 18:56:26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영원한 39(삼구)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의 별명이다. 나이에 비해 생각이 젊다는 뜻을 담고 있는 이 별명을 박 회장 본인도 좋아했다고 한다. 인수합병(M&A) 승부사로 불리기도 했던 박 회장이 경영일선 퇴진을 선언했다. 입사 후 52년, 회장 취임 17년 만이다.
 
재계와 정치권을 아우르는 마당발이자, 뛰어난 경영수완을 발휘해 궁지에 몰릴 때마다 묘수를 찾는 등 위기에 강하다는 평을 들었던 박 회장이지만 주력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 감사보고서 사태까지 몰리자 더 이상 내세울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재계 관계자는 “자신 때문에 그룹이 위기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한 마지막 카드를 꺼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다만, 더 일찍 결심을 했더라면 불명예 퇴진을 막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면서 “박 회장이 10여년 전 벌인 과욕의 여파가 너무나 뼈아팠다”고 전했다.
 
지난 2008년 9월11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에 참석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왼쪽에서 네 번째)이 회의 시작전 총수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인수한 뒤 박 회장은 전경련 등 각종 단체를 통해 활발한 대외활동을 벌였다. 사진/뉴시스
 
28일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따르면 박 회장은 전날 저녁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을 만나 아시아나항공의 금융시장 조기 신뢰 회복을 위해 KDB산업은행에 협조를 요청했다. 이어 이날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퇴진을 선언했고, 임직원들에게 별도로 이와 관련한 심경을 담은 메일을 보냈다. 직접적인 배경은 아시아나항공의 경영난이었다.
 
박 회장은 메일에서 “아시아나항공의 2018년 감사보고서 관련, 그룹이 어려움에 처하게 된 책임을 통감하고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한 결정”이라며 “주주와 채권자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한 퇴진이 임직원 여러분들에게는 저의 책무를 다 하지 못한 것이라는 모순에서 많은 고심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저의 일생을 함께 해온 그룹이 처한 어려운 상황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그룹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결정”이라며 “임직원들이 회사에 대한 신뢰와 애사심으로 이 어려움을 극복해달라”고 당부했다.
 
1945년 창업주 박인천 회장의 5남3녀중 셋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67년 금호타이어에 입사해 1980년 금호실업 사장, 1990년 (주)금호 사장, 2000년 아시아나항공 사장을 거쳐 2002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부친의 뒤를 이어 첫째 박성용 회장, 박정구 회장에 이어 박삼구 회장으로 그룹 경영권을 이양했다. 의도하진 않았으나 형이 65세였을 때 동생이 이어받아 ‘65세 퇴진론’이 나오기도 했다. 박삼구 회장도 그렇게해서 잡음없이 회장에 취임했고, 재계에서는 이를 ‘아름다운 형제경영’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박삼구 회장은 형님 회장들을 도와 쟁쟁한 기업들을 밀어내고 대한민국 제2 민간 항공사 운항권을 따내 아시아나항공이 탄생하는 산파역을 맡았다. 고속버스와 건설 등을 주력으로 해왔던 전라남도 광주 기반의 당시 금호그룹은 아시아나항공을 통해 재계에 두각을 나타냈고, 그룹명도 지금의 금호아시아나로 바꿨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전 국민들에게 뚜렷이 각인시킨 계기는 2006년 대우건설에 이어 2008년 대한통운을 인수한 것이다. 두 회사 모두 각 업종에서 국내 1~2위를 달리고 있던 대기업이다. 그런 기업들을 박 회장의 결단으로 품에 안았다. 재계는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과 맞먹는 정도의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전했다. 이를 통해 박 회장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재계 10위내에 포진할만큼 단기간에 사세를 확장했다.
 
하지만 기쁨이 오래가지 않았다. 최근 말하는 ‘승자의 저주’는 금호아시아나그룹 때문에 일반 명사가 됐다. 충분한 자금 없이 무리하게 인수한데다가 인수 직후 찾아온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기업들의 실적도 떨어지면서 돈구멍이 막혔다. 유동성 위기로 인해 그룹 전체가 흔들렸다. 이런 상황에서 2010년 65세를 맞이한 박 회장은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화학 부문 회장에게 그룹을 넘길 것이란 기대를 깨고 끝까지 남겠다고 선언했다. 이 과정에서 박찬구 회장이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를 반대하며 형과 대립각을 세웠던 사실을 폭로했고 형제간 갈등이 지속되다가 서로 갈라섰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도 매각했다. 이후 박 회장은 그룹을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예전의 영광을 되찾지 못한채 핵심 계열사인 금호타이어를 매각했고, 이젠 그룹 경영권도 내려놓게 되었다.
 
재계에서는 박 회장의 무리수가 73년 역사의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위기로 몰아간 원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재계 관계자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기업이지만 각 계열사들 가운데 세계 1위 또는 국내 1위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사업이나 제품이 없다”면서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세상은 바뀌고 있지만 과거의 방식으로 사세를 키우려고 했던 박 회장의 경영능력이 지금의 상황을 만든 것”이라고 전했다.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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