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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곤의 분석과 전망)검찰도 수술대에 올라가야 하는데
2019-04-01 06:00:00 2019-04-01 06:00:00
대검찰청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별장 성접대 의혹사건' 재수사를 맡을 특별수사단을 구성했다.
 
특별검사 논의가 진행됐지만 결국 검찰의 '틀 안'에서 수사를 진행하기로 결정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공세를 당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은 "김학의 특검을 하자. 대신에 김태우, 손혜원, 드루킹 재특검 다 같이 하자"고 주장했었다. 사실상 하지 말자는 뜻이나 다름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여당도 특검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특검을 개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박상기 법무장관도 애초부터 '검찰 안에서'로 울타리를 쳐놓고 있었다.
 
김학의와 윤중천 두 사람의 범죄혐의 자체와 별개로 이들 수사를 둘러싼 흐름은 매우 어지러웠다. 검찰과 경찰, 그리고 검찰 O.B와 경찰 O.B의 난타전을 방불케 했기 때문이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산하 대검 진상조사단'은 지난달 4일 "경찰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는 과정에서 주요 관련자에 대한 최소 3만건 이상의 디지털 증거를 누락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히면서 "경찰이 소명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조사단은 "별장 성접대 관련 추가 동영상이 존재할 개연성이 충분함에도 경찰은 디지털 증거를 누락했고, 검찰은 이에 대한 추가 송치를 요구하지도 않은 채 김 전 차관 등에 대해 두 차례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고 풀이했다.
 
검찰의 과거 잘못을 조사하는 기관이 경찰의 잘못을 지적하며 슬쩍 책임을 떠넘긴 것이다. 버닝썬 사태 등으로 난타를 당하고 있던 경찰로서는 엎친데 덮친 격.
 
하지만 민갑룡 경찰청장이 직접 반격에 나섰다. 지난달 14일 국회에 출석해 민 청장은 "당시 3월에 흐릿한 영상을 입수해 국과수에 감정 의뢰했고 다시 선명한 영상을 5월에 입수했다"면서 "선명한 영상은 육안으로도 식별 가능하고 명확해 감정 의뢰도 하지 않고 동일인으로 판단내려 검찰에 송치했다"고 말했다.
 
'무슨 소리냐? 우리는 수사 다해서 넘겼고 검찰이 뭉갠 것 아니냐'는 주장인 것.
 
그 다음에는 박근혜정부 시절 청와대에 대한 경찰의 보고 문제를 놓고 경찰과 검찰 O.B들의 충돌이 벌어졌다. 검찰출신의 당시 민정수석실 관계자들은 "김학의 인사 검증 과정에서 경찰이 제대로 보고를 하지 않았다. 그래놓고 임명 이후에 언론에 수사 사실을 알렸다 그래서 인사상 불이익을 줬다"고 주장했고 당시 수사팀을 이끌다가 이후 옷을 벗은 경찰 고위직 출신 인사들은 "무슨 소리냐. 다 보고 했는데 불이익만 입었다"고 맞섰다.
 
따지고 보면 시작 단계부터 검경의 암투가 있었다. 박영선 중기벤처부장관 후보자에게 동영상을 나눠줬다는 박지원 의원은 "(2013년) 3월초쯤 경찰 고위간부로부터 동영상과 녹취록 사진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 측 당사자들의 주장에 따르더라도 2013년 3월초에는 동영상과 녹취록이 청와대 민정라인에 보고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후 수사, 두 차례의 무혐의 과정에서 검찰의 책임이 덜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특검으로 가는 게 맞았다. 검찰이 사법농단 수사를 하면서 법원을 들었다 놓았다 한 것처럼, 비검사 출신 특별검사가 이 사건과 관련해 검찰을 샅샅히 파헤치는 것이 옳다는 이야기다.
 
법원 입장에선 아픈 일이지만 '우리도 성역이 아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감시와 조사를 받을 수 있다'는 뼈아픈 깨우침을 얻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당장 검찰 수사 관행, 조서의 증거능력에 대한 본질적 성찰도 법원에서 나오는 판이다.
 
검찰 역시 마찬가지다. 물갈이나 찍어내기 수준의 인사 파동이 아니라 외부에 의해 수술대에 올라가는 경험을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아쉽다. 검찰이 혼날 기회가 사라져서가 아니라 검찰이 각성할 기회를 잃어 버린 것 같아서.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taegonyo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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