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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미성년’, 과정과 결과의 아이러니한 인과 관계
세 명의 ‘성년’ 두 명의 ‘미성년’ 통해 삶의 변곡점 조명
현재의 삶과 미래 바라보는 ‘성년 vs 미성년’ 다른 시선
2019-04-03 00:00:00 2019-04-03 11:01:45
[뉴스토마토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아직 아니다란 뜻의 아닐 ’()를 쓰는 미성년(未成年). 하지만 아름다운 성년을 꿈꾸는 미성년(美成年). 영화 미성년은 이 두 가지 모습을 지금의 우리 삶에서 끄집어 낸다. 누구나 아름다운 해피엔딩을 꿈꾸지만 과정 자체가 해피할 수는 없다. 삶 자체가 그렇다. 영화 속 미희(김소진)조차 말한다. “바람, 한 번 피워봐라. 그게 마음대로 되나라고. 결과가 그러했다고 과정도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과정이 매끄럽다고 결과가 정답을 내놓는 것도 아니듯. 배우 김윤석은 자신의 감독 데뷔작 미성년을 통해 3명의 미성숙한 성년과 두 명의 성숙한 미성년 얘기를 이 과정과 결과의 인과 관계로 이끌어 낸다. 그 방식이 너무도 영화적이지 않다. 연출스럽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돋보이는 미성년의 아우라가 연출 신인 김윤석의 솜씨란 점이 주목되는 가장 큰 지점이다.
 
 
 
영화 미성년은 다섯 명의 인물이 뜻하지 않은 사건을 겪으며 성장하는 밀도 높은 심리 상태의 변화를 그려낸다. 완벽한 성장 드라마다. 이 과정은 현대인들이 느끼는 삶의 변곡점과 그 과정 속에 느끼는 희로애락을 모두 담고 있다. 이 영화의 영문 제목 ‘Another Child’은 가리키고 있다. 성년이지만 미성년인 세 명의 성년, 그리고 미성년이지만 너무도 일찍이 성년이 돼 버린 두 명의 여고생을 말한다.
 
먼저 세 명의 성년은 불륜 관계로 얽혀 있다. 대원(김윤석)과 영주(염정아)는 남부러울 것 없는 평범한 중산층 부부다. 살고 있는 아파트 가격이 또 올랐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영주. 아내의 혜안이 돋보이는 선택이었다며 또 다시 시큰둥하는 대원. 두 사람은 각방을 쓰고 지낸 지 몇 년이다. 특별히 부부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다. 그저 평범한 부부의 섹스리스일 뿐이다. 사실 이유는 있다. 대원은 지금 불륜 진행형이다. 영화 시작과 함께 등장한 여고 2학년 주리(김혜준). 그는 대원의 딸이다. 아빠의 불륜을 알고 있다. 한 식당 창 밖에서 아빠의 회사 회식 자리를 엿보고 있다. 이 식당은 대원과 불륜을 진행 중인 미희가 운영 중이다. 그 모습을 미희 딸 윤아(박세진)가 목격한다. 주리와 윤아는 같은 학교 동급생이지만 친분이 전혀 없다. 이 일로 두 사람은 다음 날 학교 옥상에서 만난다. 이 자리에서 부모의 불륜을 놓고 다툰다. 윤아는 주리의 핸드폰으로 영주에게 대원의 불륜 사실을 의도적으로 터트린다. 그 때문이었을까. 영주는 아파트값 상승에도 시큰둥했다. 그런 아내의 반응을 대원은 눈치 채지 못한 듯싶다. 하지만 영주는 이미 알고 있었던 듯싶다.
 
영화 '미성년' 스틸. 사진/쇼박스
 
19세에 윤아를 낳은 미희는 대원과의 불륜으로 다시 임신을 했다. 배가 만삭이다. 윤아는 낙태를 권유하지만 미희는 뱃속 아이를 보듬으며 불륜을 정당화한다. 과거 자신의 남편과의 원만하지 못했던 결혼 생활에 대한 보상을 받았단 자기 위안을 하는 눈치다. “아들이란다.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라며 딸의 걱정을 무시한다.
 
영주는 미희와 만날 결심을 한다. 식당을 찾아간다. 배가 부른 미희의 행복한 모습, 자신의 남편 대원과 통화하며 행복해 하는 모습에 분노한다. 영주의 심정을 이해한다며 차 한잔을 권하는 미희다. 하지만 영주는 그런 미희를 뿌리쳤다
 
대원은 아내 영주와 불륜녀 미희 사이에서 갈팡질팡이다. 딸 주리에게조차 자신의 불륜이 들통났단 것에 잠적을 결심한다. 지인이 운영하는 지방 한 팬션으로 향했지만 그곳에서 미성년자들에게 집단 폭행과 강도를 당한다. 대원은 자신이 만들어 낸 결과에 어떤 책임도 질 수 없고 지려하지도 않는다. 결과를 이끌어 냈지만 그 과정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다. 이 영화 미성년의 완벽한 표상이다. 이기적이고 치사한 미성년이다.
 
영화 '미성년' 스틸. 사진/쇼박스
 
반면 미희는 대책 없는 미성년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삶의 무게에 짓눌렸다. 꿈만 꾸고 살아온 소녀였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딸 윤아를 낳았다. 윤아의 아빠는 자신의 딸 나이와 이름도 모른다. 그 역시 대책 없기는 마찬가지다. 미희는 외로웠다. 그래서 뱃속 불륜의 결과물인 아이에게 든든함을 강요했다. 스스로 강요했다. 그럴 것이라고 다짐을 한 것이다. 대원과의 불륜도 사랑이라고 믿었다. 전화기에 마지막 사랑이라고 대원을 입력했다. 영주의 질문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대원에게 가정이 있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마음을 따랐을 뿐이다. 그건 잘못이 아니라고 몸으로 눈물로 말한다.
 
어쩌면 가장 평범하면서 동정표를 얻을 인물이 영주다. 사실 그는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우등생 딸 주리에게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다. 동요하지 말라며 딸의 방황을 견제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가장 크게 동요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고해성사까지 하며 감정 제어를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딸과 냉정함을 유지하려 들지만 정작 가장 뜨겁게 반응하는 영주의 상황이 역전돼 있다. 영주 역시 결국 미성년일 뿐이다.
 
영화 '미성년' 스틸. 사진/쇼박스
 
반면 주리와 윤아는 성년인 부모들과 달리 우리의 시각에서 오히려 미성년의 틀을 깨고 나왔다. 아빠 대원의 방황과 엄마 영주의 불안정함을 무마시키려는 주리의 노력과 엄마 미희의 철없음을 격멸하는 윤아의 탄착점은 자기 자신을 향한다. 상황의 불안정함에 두 사람은 학교에서 난투극을 벌일 정도로 쌓여가는 분노를 표출시킨다. 서로에게 다시는 보지 말자라고 선을 긋는다. 하지만 이복-이부동생이 된 인큐베이터 속 아기를 통해 두 사람은 한 곳을 바라보게 된다. 그저 불륜의 결과로 태어난 이복-이부동생이지만 생명의 신비함에 둘은 다른 눈을 뜨게 된다. ‘미성년의 눈으로 바라본 성년의 성장담은 이렇게 역전이 된다. 두 미성년의 시선은 밖을 바라보고 있고, 성년인 세 사람은 자신만을 들여다 보고만 있다.
 
영주와 학교 선생님(김희원)은 주리에게 흔들리면 안돼”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야라며 충고한다. 하지만 주리는 거짓말이라며 선을 그어 버린다. 이미 미성년의 시선으로 성년미성숙함을 알아 버렸다. 윤아는 자신에게 충고하는 영주에게 주리나 걱정하세요라며 충고한다. ‘미성년의 시선에서 성년의 위선을 꼬집는다. 영주는 대원에게 성욕이야, 사랑이야라며 되묻는다. 스스로 자기 정당화를 찾으려고만 한다. 지켜야 할 것(가족)에 대한 이유를 부여 받고 싶다. 미희는 대원에게 나 사랑해라며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결과를 확인 받고 싶어한다. 외로운 미성년의 삶에 대한 단상이다. 그저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 스스로가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삶은 과정을 위한 결과를 내놓지도 결과를 위해 과정을 길라잡이 해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제목을 미성년으로 잡았다. 아름답고 싶지만(美成), 아직은 이뤄내지 못한(未成) 나이()를 살고 있는 우리 삶의 시간은 어쩌면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영화 '미성년' 스틸. 사진/쇼박스
 
미성년(未成年)의 시선을 통해 미성년(美成年)을 꿈꾸는 세 성년의 아이러니한 상황의 연속이 웃픈 현실 속 삶의 이면과 맞닿아 있다. 배우 김윤석의 연출 시선이 이 정도라면 앞으로 이어질 그의 연출 필모그래피가 무조건 궁금해질 수 밖에 없다. 개봉은 오는 11.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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