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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니 날개 달고 사랑하는 하늘로 간 조양호 회장
‘시스템 경영’ 통해 재직 45년간 한국 항공산업 역량 키워
2019-04-08 19:15:35 2019-04-08 19:15:41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고니의 날개를 달고 첫 비행한지 45년. 전 세계를 누비며 한국 항공산업을 키워낸 조양호 회장이 다시 날개를 달고 사랑하고 존경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하늘로 돌아갔다. 고니는 현재의 태극문양의 CI 이전 대한항공공사 및 초창기 대한항공 로고에 형상화 됐던 새로, 당시 회사 TV 광고에도 출현하기도 했다.
 
조양호 회장은 부친 정석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뒤를 이어 대한항공을 주축으로 한 한진그룹을 맡았다. ‘디테일에 강한’ 경영자로 불리는 그는 경영과 관련한 전 과정을 꿰뚫어 보며 전문경영인과 임직원들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미세한 부분까지 챙기는 스타일이다. 그렇다고 카리스마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직원들이 혹시라도 긴장할까봐 한 발 뒤에서 조용히 관찰하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개선할 사항을 지시하는 리더십을 추구했다.
 
지난 2011년 5월24일(현지시간) 프랑스 툴루즈 에어버스 본사에서 열린 초대형 항공기 A380 1호기를 인수식에서 조양호 회장이 조종석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는 그가 평생 추구했던 ‘시스템 경영론’을 기반으로 한다. 시스템 경영의 기본은 직위여하를 불문하고 개인 한명의 능력에 의존하기보다 회사 전체 차원에서 톱니바퀴가 맞닿아 돌듯 중단없이 흐름을 이어가야한다는 것이다. “똑같은 인력과 보유자재라도 최대한 활용해서 한진그룹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것이며, 어느 한 개인에 의해 업무가 좌지우지 되지 않도록 탄탄한 기업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가업을 물려받았지만 조양호 회장은 정석의 노하우를 이어받되 이를 발전시킨 자신만의 경영철학을 구축하며 기업을 이끌어왔다. “기업은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자격을 갖춰 가꿔나가는 것”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부자간 경영의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정석은 민영 대한항공을 이륙시키면서 “사업가가 아닌 ‘예술가’처럼, 사장이 아니라 ‘화가’처럼 노선도를 그렸다”고 했다. 반면 조양호 회장은 “최고경영자(CEO)는 시스템을 잘 만들고 원활하게 돌아가게끔 하고 모든 사람들이 각자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율을 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예술가처럼 사업을 하되 부친이 화가의 시각으로 봤다면, 조양호 회장은 음악가의 자세로 행동했다.
 
조 회장이 재직한 45년은 건국이후 가장 역동적으로 경제와 사회가 비약적인 도약을 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국가경제의 성장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의 국적 항공사인 대한항공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올라가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기간은 회사의 존폐를 흔드는 위기는 끊임없이 이어졌던 시기이기도 하다. 조 회장은 세계 항공업계 무한 경쟁의 서막을 항공동맹체인 ‘스카이팀(SkyTeam) 창설 주도로, 전 세계 항공사들이 경영 위기로 움츠릴 때 앞을 내다본 선제적 투자로 맞섰다. 결국 대한항공은 결국 이들 위기를 이겨내고 창립 50주년을 맞을 수 있었다.
 
조 회장은 탁월한 선견지명의 혜안으로 위기의 순간을 기회로 만들었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자체 소유 항공기의 매각 후 재 임차를 통해 유동성 위기를 극복했으며, 1998년 외환 위기가 정점일 때는 유리한 조건으로 주력 모델인 보잉737 항공기 27대를 구매했다. 이라크 전쟁, 사스(SARS) 뿐만 아니라 9.11 테러의 영향이 아직까지 남아있어 세계 항공산업이 침체의 늪에 빠진 2003년 조 회장은 이 시기를 차세대 항공기 도입의 기회로 보고, A380 항공기 등의 구매계약을 맺었다. 결국 이 항공기들은 대한항공 성장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조 회장은 전 세계 항공업계가 대형항공사와 저비용 항공사(LCC)간 경쟁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시대의 변화를 내다보고 이를 받아들였다. 또한 대한항공과 차별화된 별도의 LCC 설립이 필요하다고 보고 2008년 7월 진에어를 창립했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이라는 개별 기업을 넘어,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위상 자체를 바꾸기 위한 노력도 끊임없이 이어왔다. ‘항공업계의 UN’이라고 불리우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맡으며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발언권을 높여왔다. 조 회장은 1996년부터 IATA의 최고 정책 심의 및 의결기구인 집행위원회(BOG) 위원을 맡았다. 이후 2014년부터는 31명의 집행위원 중 별도 선출된 11명으로 이뤄진 전략정책위원회(SPC) 위원도 맡아왔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평생을 ‘수송보국(輸送報國)’이라는 일념 하나로 살아온 조 회장의 모든 관심은 오로지 고객과 고객들을 위한 안전과 서비스였다. 본인을 챙길 겨를 없이 모든 것들을 회사를 위해 쏟아냈다. 조 회장의 이 같은 열정과 헌신은 대한항공이 지금껏 성취했던 것들과 궤를 같이 한다”면서 “고인이 만들어 놓은 유산들은 영원히 살아 숨쉬며 대한항공과 함께 할 것”이라고 전했다.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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