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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태양광 보급 확산, 모듈도 소비자 눈높이에 맞춰야"
조병래 한화큐셀 한국 마케팅 총괄 파트장
"태양광산업, 자생력 확보의 첫걸음은 정책 뒷받침…25년 뒤 생각하는 합리적 소비 필요"
2019-04-12 15:36:27 2019-04-12 15:36:27
바다의 신 '포세이돈', 날렵한 '치타', 중국을 상징하는 동물 '판다'.
얼핏 보면 연관성이 떨어져 보인다. 하지만 세 단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태양광 모듈의 브랜드 이름이라는 점이다. 과거에는 모듈 출력량이 곧 제품명으로 통했으나 신재생에너지 시장이 커지고, 소비자들이 생활 곳곳에서 태양광발전을 친숙하게 접하게 되면서 관련 기업들도 끊임없는 시도를 하고 있다. 세계 1위 태양광 제조사인 한화큐셀 역시 지난해 의미있는 도전을 했다. 수상태양광용 신제품에 '큐피크 듀오 포세이돈'이라는 이름을 붙여 고객과 거리감 좁히기에 나섰다. 포세이돈 브랜드명을 만든 한화큐셀의 한국 마케팅 총괄 조병래 파트장을 만나 브랜드 전략과 한국 태양광 산업에 대한 소회를 들어봤다. 조 팀장은 한화그룹이 사원·대리급 우수 인재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글로벌 탤런트'로 선정돼 일본 한화큐셀재팬에서 파견 근무를 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브랜드 네임 개발, 한국 고객 마케팅과 영업지원 업무를 맡고 있다. 한화큐셀재팬에서는 일본 영업기획을 담당하며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급팽창한 신재생에너지 시장을 몸소 경험했다.
 
[뉴스토마토 양지윤 기자] 태양광 모듈을 구매할 때 소비자가 접하는 정보는 크게 두 가지다. 태양광 모듈의 출력량과 제조사를 보고, 구매를 결정한다. 물론 태양광 모듈의 가격도 구매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한화큐셀 역시 다른 태양광 기업들과 전략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효율 태양광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수요자에게 공급하는 게 최우선 목표였다. 
 
한국 시장에서 마케팅과 영업지원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조병래 한화큐셀 파트장도 수상 태양광 신제품을 선보이기 전까지 브랜드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제품과 가격 경쟁력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다. 영업 일선을 뛰는 한 동료가 태양광 모듈의 세부 명칭을 외우는 과정에서 버벅거리는 모습을 보면서다. 일반적으로 태양광 업계에서는 출력량이 모듈 이름을 대신한다. 한화큐셀의 경우 '듀오 390Wp(피크와트), 듀오 415Wp, 큐피크 370Wp' 등의 이름을 붙여 판매한다. 모듈에 브랜드명을 입히는 작업은 영업사원에게도 낯선 제품 이름이 일반 소비자에겐 얼마나 생소할까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조 파트장은 소비자와 눈높이 맞추기를 고민했고, 그 결과물이 지난해 선보인 수상태양광 발전용 신제품인 '큐피크 듀오 포세이돈'이다. 큐피크 듀오 포세이돈은 납이 포함되지 않은 자재를 사용해 친환경성을 높이고, 방습성이 뛰어난 자재를 적용해 습기가 많은 지역에서도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성능을 보장하는 모듈이다.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대구에서 열린 '2019 국제 그린에너지 엑스포'에서 받은 톱 브랜드 어워드 트로피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한화큐셀
 
포세이돈이라는 이름을 붙이기까지 진행 과정이 순조롭진 않았다. 한화큐셀이 처음 시도하는 작업이다보니 회사 내부의 높은 기대감에 부담이 컸다. 또 브랜드명을 론칭하기 전까지 후보군을 놓고 구성원들과 열띤 토론도 벌였다. 퓨어 에디션(PURE Edition), 아쿠아 에디션(AQUA Edition) 등도 거론됐으나 발음이 어렵고, 소비자에게 수상태양광에 적합한 제품이라는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는 "수상태양광이라는 점에 착안해 '물의 신'으로, 물과 관련된 정점에 있는 '포세이돈' 이라는 이름을 생각했다"며 "직관적으로 친환경성, 수상환경 특화, 고출력 등 소비자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이미지를 강력하게 뇌리에 심어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태양광모듈에 브랜드명 붙이기는 최근 태양광 시장의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2017년 파산한 독일 솔라월드가 모듈에 '선(SUN)'이라는 브랜드명을 사용했지만,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확실히 각인될 만한 특징을 가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개성있는 브랜드명이 나오고 있다. 대형 태양광발전 뿐만 아니라 가정용 태양광 발전이 확산되자 기업들이 소비자에게 친숙한 브랜드명을 사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세계 1위 태양광 모듈 제조사인 진코솔라는 '이글(Eagle·독수리)'에 이어 최근 '치타'라는 이름을 붙인 고효율 모듈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 서울역과 강남역 등에 설치된 광고판을 보면, 흡사 명품 브랜드 까르띠에의 광고를 연상케 한다. 까르띠에가 상징 동물인 표범을 광고 전면에 등장시킨 것처럼 진코 역시 모듈 위에 앉은 치타로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세계 10위권 태양광 기업인 잉리는 중국을 상징하는 대표적 동물인 '판다'를 브랜드명으로 쓰고 있다. 외우기 쉬운 이름이기도 하지만, 판다의 귀여운 이미지를 통해 중국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희석시키려는 계산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조 파트장은 "내부에서 통용되는 제품 코드를 그대로 브랜드명으로 쓰게 되면 소비자들이 태양광 제품을 어렵게 받아들일 수 있어 최근 글로벌 제조사들이 커뮤니케이션 강화 전략의 일환으로 대중적인 브랜드 네이밍을 늘리고 있는 추세"라고 전했다.
 
한화큐셀은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대구에서 열린 '2019 국제 그린에너지 엑스포'에 참가했다. 한화큐셀 부스가 방문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사진/한화큐셀
 
 
조 파트장은 한국 시장의 마케팅과 영업지원 업무를 총괄하고 있지만, 태양광 사업은 일본에서 먼저 접했다. 2014년부터 2년간 한화큐셀재팬에서 현지 영업기획을 담당했을 당시 일본 태양광 시장은 황금기였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태와 일본 정부의 발전차액지원제도(FIT) 정책으로 시장이 급격한 성장세를 맞으며 매년 원자력발전소 9~10개 용량인 9~10GW(기가와트)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가 들어섰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한화큐셀의 일본 매출과 인지도도 급격히 상승했다. 
 
일본에서 태양광을 중심으로 신재생에너지 열풍을 직접 지켜보고 경험을 했기에 그에게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3020' 정책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조 파트장은 "전력수급 등 국가의 인프라 계획은 기존 이권과 정치적인 이슈가 얽혀 있으면서 동시에 경제성 확보에 대한 검증과 여론의 숙의를 통한 합의가 필요한 다차방정식"이라고 강조하며 일본의 사례에 주목했다.
 
그는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친환경 에너지 수급에 대한 드라이브가 걸린 상황에서 일본 정부는 공급의무화제도(RPS)보다 더 강력하다고 평가 받는 FIT 제도를 실시했고, 그 결과 태양광 시장이 급격히 성장했다"면서 "초기 시장성 확보를 통해 사업 기반을 닦고, 역량 있는 사업자가 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는 것은 결국 정부차원의 계획 아래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음을 일본에서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태양광산업 생태계가 조성 되면 다소 시장이 감소할 수 있으나 자체적으로 시장이 유지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한국도 시장이 일정 궤도에 오르면 정부의 보조와 지원 역시 서서히 줄여가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태양광산업이 신재생에너지 3020 정책의 뒷받침으로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하면서 밸류체인(가치사슬)의 선순환 연결고리를 확실하게 구축하면, 향후엔 보조금에 기대지 않고도 자생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화큐셀의 큐피크 모듈이 설치된 일본 아이치현의 한 주택. 사진/한화큐셀
 
한국은 최근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3020 정책으로 주요 태양광 시장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내수 안전판 없이 수출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던 국내 기업들이 설움에서 벗어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기대감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글로벌 시장에서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국 기업들이 한국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중국 내수경기 침체가 계속되고, 해외에서 저가공세로 집중 견제를 받는 상황이 지속되자 최근 1~2년 새 한국 시장에서 영업을 빠르게 강화하고 있다.  
 
현재 글로벌 톱10 태양광 제조사는 한화큐셀을 제외하면 모두 중국 기업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태양광 보급 정책과 제조업체 지원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중국 기업들은 생산능력 확대에 거침없다. 그러나 규모의 경제를 기반으로 한 가격 경쟁력 외에는 앞세울 만한 게 없다는 게 조 파트장의 판단이다. 
 
그는 "중국 태양광기업은 아직까지 생산능력 순위에 비해 인지도와 브랜드 파워가 약한 것이 사실"이라며 "메이드인 차이나의 저품질 이미지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태양광 사업은 경제성과 수익성이 단연 1순위여야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품질과 재무안정성에 기반한 보증 안정성이 중요하다"면서 합리적 소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조 파트장은 "태양광제품의 구매를 결정할 때 가격이 조금 더 싸다고, 언제 사업철수 또는 파산할지 모르는 회사의 제품을 사용하게 되면 결국엔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며 "소비자들이 25년이라는 품질보증 기간동안 지속 가능한 기업인지를 따져보고 구매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양지윤 기자 galile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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