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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걸 "청와대·외교·법무부와 부적절한 만남…행정처 오만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
2019-04-23 14:27:11 2019-04-23 14:27:21
[뉴스토마토 최서윤 기자]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 201312월 당시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공관에서 윤병세 외교부장관과 황교안 법무부장관, 차한성 법원행정처장이 비공식적으로 회동한, 이른바 ‘1차 소인수 회의를 가진 데 대해 굉장히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전 실장은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6(재판장 윤종섭)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15회 공판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같이 말했다.
 
이 전 실장은 해당 회의 사실을 알고 있었냐는 검찰 질문에 전혀 몰랐다. 이번에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다면서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굉장히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그런 일이 왔을 때는 거절하고, 필요하면 공식적으로 처리해야지 그렇게 하는 건, 만난 경위는 잘 모르지만, 만남 자체가 굉장히 부절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검찰은 2013년 박근혜 청와대에서 ‘20125월 대법원이 파기환송 한 강제징용 사건이 확정되면 한일관계에 파장이 예상된다고 판단한 후 1차 소인수회의를 시작으로 사법부와 비공식적인 만남을 통해 인식을 공유했다고 보고 있다. 이 전 실장 역시 임 전 차장과 함께 자신의 고등학교와 대학교 선배이기도 한 조태열 외교부 2차관을 세 차례 만났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민걸 법원행정처 전 기획조정실장이 지난해 9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며 검찰의 포토라인에 선 모습. 사진/뉴시스
 
이날 법정에서는 당시 만남에서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한다는 구체적인 언급이 임 전 차장 등으로부터 나왔는지도 쟁점이 됐다. 전원합의체 회부는 대법원의 지난 판례를 뒤집는 절차를 의미하고, ‘판결 뒤집기는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과 재외공관 파견 등에 대한 행정부의 협조를 얻기 위해 재판 거래를 시도한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되고 있다.
 
이 전 실장은, ‘20169월 임 전 차장과 함께 조태열 외교부 2차관과 박철주 외교부 국제법률국장 등을 만난 자리에서도 임 전 차장이 전원합의체 회부를 언급했다는 취지로 지난해 11월 검찰 조사 진술을 확인하는 검찰의 질문에 “‘회부되는 경우에는(가정)’ 정도로 한 것 같다. 임 차장이 아무리 그래도 그런 얘기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고 부인했다. 그는 이어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개인적으로는 법원행정처가 오만하지 않았나생각하고 있다면서 저도 반성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대법원 재판에 대해서 전원합의체 회부를 추진한다고 얘기할 순 없는 거다.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실장은 외교부 관계자들을 만나기 전 양 전 원장과의 보고 자리에서도 전원합의체 회부언급이 있었다고 진술했던 게 맞느냐는 검사의 재확인 질문에도 정확하게 추진하겠다는 얘기는 안했고, 전체적으로 이 사건 신중을 기해야 하는데 과연 (양 전 원장) 임기 중 제대로 끝낼 수 있을까에 방점을 뒀기에 양 전 원장이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말고는 할 권한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 전 실장이 재차 불분명한 답변을 하자, 재판부는 그 당시 대화의 방점을 묻는 게 아니라 당시 그와 같은 대화가 있었는지 여부를 답변하면 된다며 주의를 줬다. 이에 이 전 실장은 당시 워낙 (검찰의) 질문사항을 보면, 전원합의체 회부를 확정적으로 얘기한 것처럼 심문한 것 같다. 그래서 검토했는지 모르겠다는 취지로, 단정적으로는 얘기하지 않은 것 같고, 저도 환기해봤는데 양 전 원장이 전원합의체 회부는 얘기를 안 한 것 같다고 번복했다.
 
이 전 실장 역시 법원행정처에서 201111~20142월 사법정책실장, 20158~201711월 기획조정실장으로 근무하며 임 전 차장과 양 전 원장의 사법행정권 남용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앞두고 있다.
 
이 전 실장은 신문 후 더 할 말이 있느냐며 재판장이 준 발언 기회에 사법행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저로서는 여러 가지 문제로 송구스럽다면서 이 사건(강제징용 재상고)과 관련해서는 어찌됐건 제 개인적으론 (외교부의) 의견서를 고쳐주지도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의견서 제출 과정에 제가 기존에 있던 데 편승해 개입돼서 외교부와 비공식으로라도 의견을 나눴다는 자체는 굉장히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면서 전체적으로는 행정처가 너무 오만하게 타성에 젖어, 일을 열심히 할 명목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면에서 잘못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들고, 그렇더라도 재판장이 실체관계에 대해 정말 제대로 한번 살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했다.
 
이날 임 전 차장과 이 전 실장의 법정 대면도 눈길을 끌었다. 임 전 차장은 직접 질문을 던지기에 앞서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이런 자리에서 뵙게 돼 어려가지로 마음이 안 좋다며 신문을 시작하기도 했다.     
 
최서윤 기자 sabiduri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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