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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부재 속 '무법지대'된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트래빗, 보이스피싱 이유로 파산…올해만 5번째
주먹구구식 거래소 운영에 암호화폐 이용 사기도 횡행
2019-05-08 13:03:28 2019-05-08 14:57:35
[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국내 중소형 암호화폐 거래소를 둘러싸고 잡음이 커지고 있다. 정부 차원의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과 법·제도적 규제 장치가 없는 탓에 내부자 거래부터 거래소 파산, 대표 잠적·먹튀 의혹까지 투자자를 우롱하는 사기가 횡행한 까닭이다. 특히 암호화폐 자체가 제도권에 포함되지 못하다 보니 투자자를 보호할 방안은 전무한 반면 자격미달 거래소는 난립하는 등 시장이 '무법지대'로 전락하는 모습이다.
 
사진/픽사베이
 
암호화폐 거래소, 출금지연부터 개인정보 유출·먹튀의혹까지 제기
 
8일 블록체인업계에 따르면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트래빗(TREBIT)은 오는 15일 대고객 암호화폐 거래 서비스를 모두 종료하고 파산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보이스피싱 등으로 인해 경영악화가 심화돼 더 이상 영업을 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앞서 트래빗은 지난해 7월 문을 연 이후 올해 3월까지 4차례에 걸쳐 보이스피싱이 발생해 출금 요청 및 원화 입금을 잠정 중단한 바 있다. 현재 트래빗은 이달 15일 정오까지 접수한 고객을 대상으로 순차적으로 출금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 같은 사례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에서 투자자의 우려는 높아지고 있다.
 
실제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파산은 붐비트와 루빗, 코인빈, 코인네스트에 이어 올해만 다섯 번째다. 이 가운데 루빗의 경우 전산 장애 등의 이유로 파산을 선언했다가 이틀 만에 번복했지만 현재 외주제작업체 오일러이퀘이션 간의 책임 공방이 진행되는 등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작년 11월 문은 연 히트코리아 또한 개인정보 유출 및 개발지연 등의 문제로 소송이 진행되고 있으며, 원화와 코인 입·출금 업무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올스타빗 거래소의 경우 임직원 횡령과 사기 논란에 휘말리며 올해 초 신민수 올스타빗 대표이자 전 카브리오빗 대표이사의 재산이 가압류되기도 했으며, 인트비트 거래소는 개발사와의 불화와 출금 정지에 따른 먹튀 의혹까지 제기된 상태다.
 
이밖에 코미드 거래소는 고객 예치금을 돌려주지 않아 대표가 실형을 선고 받았으며 국내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인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 임직원 3명은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 등으로 기소돼 이달 15일 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공식적인 파산 수순을 밟진 않았지만 투자자가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암호화폐를 이용한 사기 사건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달 초 암호화폐 발행업체 코인업은 수천억원대 사기혐의로 간부 5명이 구속됐으며 암호화폐 운영업체인 Y페이 대표와 임직원도 다단계 사기로 구속되기도 했다.
 
트래빗 거래소가 서비스 종료를 공지하고 있다. 사진/트래빗 홈페이지
  
거래소 설립기준 등 가이드라인 없어…규제 공백 악용에도 투자자 피해 보상길 '막막'
 
문제는 암호화폐 거래소가 300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도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고 암호화폐 또한 금융자산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거래소의 '먹튀'나 파산 시 법적 보상을 받을 길이 막막하다. 또한 임호화폐 거래소에 대한 제대로 된 설립기준이 없어 제도 부재와 사각지대를 악용한 범죄도 발생하기 쉽다.
 
실제 한 트래빗 투자 피해자는 "트래빗이 그동안 보이스피싱을 핑계로 고객자금의 입출금을 막았는데, 이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고객의 돈을 가로채기 위한) 자작극인지 모르겠다"면서 "예치금 역시 공개하지 않은 상황에서 (횡령에 대한) 모든 증거를 인멸했을 경우,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얼마가 될지 암담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거래소가 파산할 경우 회사 매각 후 채권·채무 순위에 따라 비용이 제외되기 때문에 보상금 또한 거의 없을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중소형 암호화폐 거래소 상당수가 해킹·디도스 등 공격에 면책조항을 명시하고 있는 데다 고객 예치금은 법적으로 투자자 보호를 받을 수 없어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의 몫이 된다.
 
김동주 법무법인 에이원 변호사는 "암호화폐는 은행에 넣어둔 자금 등과 달리 예금보호가 되지 않는다"며 "만약 암호화폐 거래소가 예탁금을 별도로 보관할 경우 투자자의 자금을 정상 인출할 수 있지만, 문제는 벌집계좌 형태로 운영되는 중소형 거래소가 많고 고객 투자금액 역시 법인자금과 뒤섞이는 경우가 많아 실질적인 피해 회복이 어렵다"고 평가했다.
 
김 변호사는 "암호화폐 거래소 파산 시 잔존 재산이 없을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용자들이 피해를 떠안아야 한다"고 부연했다. 그는 다만 "약관상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회사 측의 고의나 과실로 인한 경우라면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단, 고의나 과실에 대한 입증은 피해자가 해야 한다.
 
김 변호사는 "현재 암호화폐 거래소에 특화된 투자자 보호책은 없지만, 임직원의 배임이나 횡령 등의 문제는 회사의 관리 소홀 부분과 연결된다"면서 "불법행위를 추적해 입증한다면 반환청구나 손해배상청구 등을 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그는 이어 "물론 이를 입증하는 과정이 어렵고, 긴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힘든 문제"라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호조치가 마련돼야 하는 것으로, 일련의 사건들은 이용자에 대한 보호조치가 제도화되지 않아 피해가 확산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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