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 5년 이건희 회장, 깨어나면 삼성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메모리 반도체 1위 신화 비메모리로…패배주의 깰 '럭비정신' 강조할 듯
입력 : 2019-05-09 00:00:00 수정 : 2019-05-09 00:00:00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목표가 있으면 뒤쫓아 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한번 세계의 리더가 되면 목표를 자신이 찾지 않으면 안되며, 또 리더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다."
 
지난 1993년 10월,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가운데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D램 부문에서 세계 정상에 오른 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경영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회장은 이 말이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1987년 12월1일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삼성그룹 회장 취임식에서 총수에 오른 이건희 회장이 사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이 회장과 반도체는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다. 부친인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자가 반도체 사업 참여를 선언했지만, 이를 위한 밑거름은 이 회장이 닦았다. 특히, 이 회장은 수요산업의 흐름까지 예측해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추진력을 발휘해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에 등극하는 데 기여했다. 기술도 중요하지만, 반도체 산업은 '타이밍 업'이라고 불릴 만큼 불확실한 예측에서 수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선행 투자를 최적의 시기에 해야 하는 산업이다. "최적의 투자시기를 결정할 때는 피를 말리는 고통이 뒤 따른다"고 했을만큼 이 회장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감내한 끝에 결정했다.
 
1987년 반도체 역사의 전환점이 된 중대한 고비, 즉 4메가 D램 개발 방식을 위로 쌓아올리는 스택(stack)으로 할 것인가, 파내는 트렌치(Trench)로 할 것이냐를 두고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물론 삼성전자 내에서도 주장이 엇갈려 고민이 거듭되던 때였다. 이 회장의 중재로 스택을 선택했고, 삼성전자는 한 단계 도약에 성공했다.
 
1993년에는 반도체 5라인을 8인치 웨이퍼 양산라인으로 결정했다. 당시 반도체 웨이퍼는 6인치가 세계 표준이었는데 이를 뛰어넘는 과감한 모험을 건 것이었다. 실패할 경우 최소 1조원 이상의 손실이 예상되는 만큼 주변의 반대가 심했지만, 이 회장은 세계 1위로 발돋움하려면 그때가 적기라고 여기고 강행했다. 그해 6월 5라인 준공과 동시에 6, 7라인을 착공해 이듬해 7월부터 가동했다. 그 결과 16메가D램 개발은 일본과 동시에 했지만 양산시기를 앞당기고 8인치 웨이퍼를 사용해 생산력에서 앞선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재패했다.
 
오는 10일은 이 회장이 병상에 누운지 만 5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 2014년 5월 10일 이태원동 자택에서 급성 심근경색을 일으켜 인근 순천향대학 서울병원에서 심폐소생술(CPR)을 받은 뒤 다음날 새벽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 막힌 심혈관을 넓혀주는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 시술 후 심폐기능이 정상을 되찾자 입원 9일 만에 중환자실에서 병원 20층에 있는 VIP 병실로 옮겨졌으며, 지금까지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재계와 복수의 삼성 관계자 등에 따르면 이 회장은 여전히 의식이 없으나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년간 증권가 정보지 등을 통해 수차례에 걸쳐 위독설과 사망설까지 돌기도 했으나 이 회장은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입원 초기에는 그룹 사장단들이 들러 업무 보고를 하기도 했으나 요즘은 횟수를 줄였으며, 부인인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과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가족들은 수시로 문안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삼성측은 전했다.
 
이건희 회장이 1987년 3월22일 서울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임직원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삼성그룹 창립 55주년 기념식에서 '신경영' 이념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그가 병마와 싸우는 사이, 삼성전자는 미국 인텔을 제치고 전 세계 반도체 업계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초호황을 지속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스스로의 도전을 게을리 하지 않은 삼성전자의 끊임없는 투자와 노력 덕분이라고 업계는 평가했다.
 
이러한 삼성전자가 지난달 오는 2030년까지 총 133조원을 투자해 비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에 오르겠다는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했다. 부친 아래에서 스타 최고경영자(CEO)들과 심사숙고한 이 부회장이 마련한 계획이다.
 
만약 이 회장이 쓰러지지 않았다면, 이 부회장과 삼성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졌을까? 그는 직접 쓴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패배의식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럭비정신'을 강조했다. 악천후를 이겨내는 불굴의 투지, 하나로 뭉치는 단결력, 태클을 뚫고 나가는 강인한 정신력. 그는 럭비정신을 이렇게 정의하고, "몸을 던져서라도 난관을 돌파하는 럭비정신으로 현재의 정신적 패배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이런 정신이 한 사회의 정신적 인프라로 자리잡을 때 그 사회에는 위기를 이겨내는 저력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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