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기획2050)20-2020년 총선의 시대정신은 '촛불개헌'
촛불혁명, 세계사·한국사 민주주의 변곡점…촛불정신 살린 개헌 필요
대의 민주주주에 직접 민주주의 요소 강화한 주권자 민주주의 구현해야
입력 : 2019-05-13 06:00:00 수정 : 2019-05-13 06:00:00
 
 
2020년 4월15일엔 21대 총선이 열린다. 역사의 흐름에서 총선은 종종 정치적 변곡점이 됐다. 내년 총선의 시대정신은 2016년 촛불혁명의 제도적 완성이다. 그 제도화는 '국민의 주인'인 나라를 위한 헌법 개정이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을 발의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헌법 개정은 국회의원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하지만 개헌찬성 블록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
 
 
 
역사적 흐름으로 볼 때, 촛불혁명은 21세기 한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었다. 세계사적 의미에서도 새로운 민주주의의 등장을 알리는 주권자 민주주의의 시작이었다. 내년 총선은 주권자 민주주의를 위한 헌법 개정이 가능토록 의회혁명을 추동하는 정치적 모멘텀이 될 수 있다. 2016년 촛불혁명과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을 통해 주권자 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 촛불개헌이 이루어져야 한다. 촛불혁명은 현재진행형이고, 총선은 또 하나의 분기점이 될 것이다. 혁명은 긴 호흡을 갖고 밀물과 썰물처럼 밀고 당기는 정치적 과정을 통해 한 걸음씩 변화해가는 과정이다. 촛불혁명 역시 단선적 과정이 아니라 혁명의 파고가 공세기와 수세기를 반복하면서 긴 호흡으로 변화해 간다.
 
2016년 11월26일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제5차 촛불집회가 서울 광화문에서 열렸다. 사진/뉴시스
 
촛불혁명 3주기…한국정치 과제는 현재진행형
 
올해 10월이면 촛불혁명 3주기가 된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서 정서적으로 촛불혁명은 오래된 사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정치적 격동기는 잦아들고 시민들은 일상으로 돌아가 언제 그런 거대한 사건이 있었느냐는 듯이 과거의 기억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탄핵의 대상이었던 정치세력도 탄핵 이전의 지지율로 거의 회복되고 있다. 촛불혁명 당시 소수세력으로 수세에 몰렸던 태극기부대가 지금은 가장 활발하게 광장에서 움직이는 정치세력이 됐다. 오히려 촛불세력이 휴화산처럼 비활동기에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시민적 공화주의의 화염은 주기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한국 정치의 중요 국면마다 재현될 것이다. 그 역사적 계기가 2020년 총선을 통한 개헌일 수 있다.
 
시민적 공화주의의 화염이 주기적이고 반복적일 것으로 예측하는 이유는 시민적 공화주의의 세계사적 경험으로부터 나온다. 한국의 짧은 공화주의 역사 속에서도 2008년 촛불집회 이후 10여년의 잠복기를 거쳐서 2016년에 다시 공화주의적 계기가 발화했다. 이런 역사적 계기가 내년 총선과 그 뒤 촛불개헌 국면에서도 나타날지 주목하게 된다.
 
총선 이후 촛불개헌 국면이 열린다면 그것은 어떤 개헌일까, 그 대답은 근대 공화정을 열었던 피렌체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근대 이후 민주주의는 크게 3단계로 변화하고 있다. 첫째는 1494년에 있던 피렌체 공화정의 직접 민주주의, 둘째는 영국의 청교도 혁명과 명예혁명 그리고 미국 독립전쟁 이후 나타난 대의제 민주주의, 셋째는 한국의 촛불혁명 이후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직접 민주주의다. 그러나 직접 민주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보완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민주주의 역사의 긴 흐름으로 보면 촛불혁명으로 발화한 주권자 민주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에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강화하는 것이다.
 
프랑스혁명 등 근대 시민혁명 이후 등장한 대의제 민주주의가 제도화되자 피렌체에서 시도된 직접 민주주의는 한동안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주변부로 밀려나게 됐다. 미국 독립선언의 기초가 된 '패더럴리스트 페이퍼(The Federalist Papers)'에서도 피렌체와 같은 작은 도시국가가 아닌 미국과 같은 영토국가에서도 민주주의가 가능한지 논쟁했다. 결론은 미국처럼 거대한 영토를 가진 나라에서도 민주주의가 가능하며, 그 방법은 간접 민주주의인 대의제를 도입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18세기 이후 민주주의의 주류를 대의제와 간접 민주주의가 차지하게 됐다.
 
한국의 촛불혁명은 15~6세기 피렌체에서 발화한 시민적 공화주의, 17~18세기 영국과 미국, 프랑스 등 대서양 양안의 시민혁명에 이어 세 번째로 등장한 민주주의 패러다임의 변화다. 사진에 나오는 피렌체의 베키오궁전은 이 도시 지도자들이 회의를 열 때 사용한 건물이다. 사진/플리커
 
'촛불혁명 제도화'가 나아갈 민주주의 모습은?
 
촛불혁명은 영토국가에서도 간접 민주주의가 아니라 주권자가 스스로 결정하는 직접 민주주의가 발화하고 있음을 알린 사건이다. 촛불혁명 과정에서 광장으로 뛰쳐나왔던 1700만명의 시민들은 대의제를 통해 간접적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주권자로서 직접 대통령을 헌법적 절차에 따라 탄핵하고 새 대통령을 뽑았다. 지금도 정치적으로 가장 활발한 제도는 시민들이 국회를 거치지 않고 직접 대통령에게 요구사항을 알리는 '청와대 국민청원 제도'다. 촛불혁명 이후 민주주의가 변화한 모습이다.
 
촛불혁명이 대의제를 넘어서 어떤 민주주의로 나아갈 것인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삶의 질 지수에서 '시민참여' 분야를 확인하는 것으로 가능하다. OECD 삶의 질 지수에서 11개 분야 중 시민참여 분야는 다른 분야와 달리 독특한 특성을 보이고 있다. 11가지 분야 중 대부분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국가들은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등 노르딕 복지국가와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 등 대륙형 복지국가들이다. 그리고 분야에 따라선 영미권 국가 중 캐나다와 호주 등이 상위권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시민참여 분야에선 상위권 국가 목록에 앞서 언급한 나라들이 포함되지 않는다. 실제로 투표율에선 스위스가 38개 회원국 중에서 꼴찌다.
 
한국이 30년 이후 미래비전으로 OECD 삶의 질 지수 10위를 목표로 할 때 시민참여 분야는 이미 그 목표에 상당히 근접했다. 투표율은 77.2%로 OECD 38개 회원국 중 11위이며, 규제정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해당사자가 얼마나 참여하는지는 OECD 14위다. 그러나 시민참여 분야에 관한 두 부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단순히 이 지수들의 순위를 올리는 게 더 좋은 민주주의의 방향인지에 대해선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된다. 이 지수의 내용 자체가 근대 시민혁명 이후 대의제 민주주의에 기반하고 있어서 직접 민주주의 등 새로운 시대의 흐름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는 탓이다.
 
시민참여의 두 부문 중 투표율은 선거인 명부에 등록된 인구 대비 유·무효표와 무관하게 실제 선거 기간에 투표한 사람의 비율을 의미한다. 삶의 질 지수는 투표제도의 제도적 특징이 국가와 선거유형에 따라 상이함을 인정, 의회선거나 대통령 선거 등 가장 많은 숫자의 투표자가 참여한 선거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한국의 투표율은 2017년 대선 당시 77.2%가 최고치이며, 향후 몇 년간 이 기록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018년 지방선거나 2020년 총선보다 일반적으로 대선에서 투표율이 더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와 비교해 민주주의 발전에서 투표율이 10위 이내로 진입하는 게 능사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룩셈부르크나 호주, 벨기에가 이 분야에서 1~3위를 하고 있다. 하지만 특이한 건 이 부문에서 꼴찌가 스위스라는 점이다. 스위스는 투표율이 48%에 불과하다. 스위스 투표율이 서구의 다른 국가보다 현격히 낮은 건 투표 외의 다른 정치적 의사표출 장치가 있다는 것이다. 스위스 출신으로 직접 민주주의를 세계에 전파하고 있는 브루노 카우프만 '현대직접민주주의글로벌포럼' 공동창립자는 "스위스 사람들은 선거 때만 민주주의를 하는 게 아니다. 선거와 선거 사이 모든 과정에 걸쳐 시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선거란 승리와 패배의 이분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직접 민주주의는 선출된 대표자들이 선거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시민의 목소리를 계속 듣도록 만들 수 있다.
 
스위스에선 선거 외에도 시민들이 의제를 제안하고 의사결정자로 참여할 수 있는 '시민발의'가 가장 강력한 직접 민주주의 도구이다. 시민발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시민들이 서명을 통해 법 제·개정을 제안한 뒤 이를 투표에 부쳐 결정하는 것이다. 스위스에선 유권자의 2%가 시민발의안에 서명하면 이를 투표에 부치도록 제도화 됐다. 기관이 결정한 입법과 규제 등에 대한 찬반을 시민들이 투표로 정하는 '국민투표'도 중요한 요소다.

촛불개헌, 시민발의·국민투표 상시화해야
 
직접 민주주의는 '제3의 입법기제'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스위스에서도 건수로만 보면 의회입법이 훨씬 많다. 그러나 중요성을 보면 의회가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중요한 이슈는 국민들이 직접 결정한다. 직접 민주주의가 정착하게 되면 언론의 보도 형태도 변화를 겪게 된다. 과거의 보도가 어떤 정치인이 뭘 했다는 '인물'에 초점을 맞췄다면, 직접 민주주의 아래에선 이슈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더 취재하게 된다. 직접 민주주의에선 시민들이 의사결정자가 되고 스스로 결정에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이슈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받길 원해서다. 시민발의와 국민투표 활성화는 촛불혁명의 주권자 민주주의를 위한 실질적 대안이 되고 있다.
 
촛불혁명을 계기로 한국에도 주권자 민주주의가 태동했다. 촛불혁명 정신을 구체화한 촛불개헌은 '시민발의'와 '국민투표' 등을 통해 기존 대의 민주주의에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강화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사진/뉴시스
 
시민참여의 다른 부문, 규제정책 만드는 과정에 이해당사자가 얼마나 참여하는가에 대해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14위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시민참여에서 이 분야가 필수적인지는 여전히 의구심이 남아 있다. 논란 끝에 2016년부터 시민참여 영역의 지표로 포함하고는 있지만, 특이하게도 이 분야의 1위는 멕시코다. 멕시코의 부패지수 등을 고려하면 이 지수가 민주주의의 발전을 제시하는 측정 기준이  될 수 있는 지 의문이다.  
 
향후 30년 이후 한국 정치의 미래를 생각할 때 촛불혁명 이후의 정치개혁이 어느 방향으로 진행되고 제도화될 것인지가 중요하다. 촛불혁명은 광장에서 시민의 직접행동으로 구현됐지만 그 마무리는 제도화를 통해 한국 사회에 체화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주권자 민주주의의 제도화는 헌법 개정을 통해 제도적으로 완성된다.  
 
주권자 민주주의를 위한 헌법 개정에선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시민발의와 국민투표를 상시화하는 조문이 필수적으로 포함돼야 한다. 5000만명 인구의 2%인 100만명이 시민발의할 경우 자동적으로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직접 민주주의를 명문화 해야 한다. 2020년 총선의 시대정신은 직접 민주주의의 강화 등을 비롯한 주권자 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 촛불개헌이 돼야 할 것이다. 내년 총선의 정치적 전선은 촛불개헌 블록과 그 반대 블록 사이에서 형성될 수 있다. 촛불개헌 블록이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확보, 촛불혁명을 제도적으로 완성하는 촛불개헌을 할 수 있길 기대한다.
 
임채원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
 
 
*필자 소개 : 필자는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로, '미래, 문명, 평화'와 국정아젠다를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행정학을 전공했고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기획평가위원장으로 국내 26개 국책연구소의 국정 정책담론을 기획·평가하고 있다.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으로 국가비전2040을 수립하는데도 참여 중이다. 30년 후의 국가비전을 모색하는 이번 기획은 격주로 총 30회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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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병호

최병호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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