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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뽕 피해자, '버닝썬 사건' 이전에도 있었다"
'물뽕·집단 성폭행 정황' 강하게 의심…증거 없어 무혐의 수두룩
2019-05-15 17:30:16 2019-05-15 23:02:06
[뉴스토마토 최영지 기자] 이른바 '버닝썬 게이트'의 가장 충격적 범죄는 '물뽕 성폭행이었다. 그러나 버닝썬 사태가 세간에 알려지기 전 이미 강남 클럽 버닝썬과 아레나에서 '물뽕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여성들이 있다. 이들 가운데 일부 가해자들은 재판을 받고 있지만 상당수는 무혐의로 경찰조사가 종결됐다. 더 놀라운 것은 경찰은 피해자들에게 심리상담을 주선하고도 사건을 무혐의 처분했다. 
 
<뉴스토마토>는 서울에 있는 여러 심리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은 피해여성 7명의 상담 내용을 입수했다. 이들은 모두 버닝썬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한 사람들이다. 경찰은 이들이 센터에서 상담 받을 수 있도록 이어줬다. 
 
상담내용을 보면, 이들은 공통적으로 “평소 주량보다 술을 현저히 적게 먹었음에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쓰러졌고, 일어나보니 성폭행을 당했지만 기억이 없다”고 진술했다. 2차 피해 가능성을 우려해 피해여성들과 상담을 진행한 상담자를 익명으로 표기한다.
 
A씨는 “지난 2018년 5월 아레나 클럽에 동성친구들과 놀러갔고 평소 알고 지내던 MD가 술을 싸게 준다고 해 술을 먹다 보니 어느 순간 기억이 없고 깨어보니 모텔이었다”며 “술에 취할 정도로도 마시지 않았는데 드문드문 나는 기억으로는 길거리에서 토했던 것 같다”고 상담 당시 털어놨다. 같은 해 7월 B씨 역시 친구들과 아레나를 찾았다가 성폭행을 당했다. B씨는 클럽에서 남성들과 어울렸고 룸에 몇 번 들어가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기억이 없는데 (남성들이 준) 보드카 한 잔을 마신 기억이 마지막”이라며 “깨어보니 호텔 방이었고 가해자가 없이 혼자 남겨졌고 변호사를 선임해서 지금도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C클럽에 친구들과 놀러간 D씨는 클럽에서 만난 남성들과 술을 먹다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상황은 A·B씨와 같았다. D씨는 “술을 별로 먹지 않았는데 기억이 끊겼고 잠깐씩 떠오르는 건 호텔 방에 남자 3명이 있었던 것”이라며 “물뽕이 의심됐지만 검출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D씨는 자살을 결심할 정도로 극심한 피해를 호소하다 센터에서 상담을 받게 됐다. E클럽에서 일했던 F씨는 손님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했지만 무혐의로 사건이 종결됐다. F씨 역시 “룸에 잠깐 들어가 술을 먹었는데 기억이 안난다”며 “클럽 측에 항의를 했지만 합의금으로 무마하려고 했고, 내 주장을 뒷받침 하는 동료 직원 진술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여성 G씨는 강남 일대 음식점에서 알고 지내는 남성을 만나 식사를 하다가 정신을 잃었다. G씨는 “경호학과 출신이고 체력이 좋은 편이라 술을 먹고 한번도 실수한 적이 없다”며 “와인과 어울리는 요리가 아닌데다가 1병을 둘이서 나눠 마셨는데 이후 기억이 없어 약물을 탄 것으로 강하게 의심된다”고 상담센터에서 밝혔다.
 
이른바 물뽕으로 불리는 GHB는 무색무취로, 소다수 등 음료에 몇 방울 타 마시게 되면 10~15분 내 약물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약물이 몸에 들어오면 15분 이내로 동공이 풀리고 콧물이 나오다가 갑자기 쓰러지게 된다. GHB는 물과도 잘 섞이며, 와인이나 칵테일 등과 섞으면 더욱 알아채기가 힘들어 범행 수단으로 쓰인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조사결과 약물이 검출된 경우도 있다. H씨에 따르면 그는 지인 남성과 강남일대 호텔 라운지에서 맥주 1병을 마셨고, 화장실을 다녀오니 또 1병이 주문돼 있어 마시고 나니 기억이 없었다. 그에게선 우울증 치료제로 유명한 약물이 검출됐다. 
 
이들과의 상담을 진행한 I씨는 “피해자를 전담하는 경찰이 피해자에 대해 모니터링을 하다 상담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에게 심리지원을 하게 되고, 피해상담 요청이 들어와 피해자들과의 상담을 진행하게 된다”며 “피해자들이 상담하는 내용은 거의 경찰조사 때 진술하는 내용과 같은데 성폭행이나 약물에 대해 모두 무혐의 처분이 되는 게 상당수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경찰은 이러한 피해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봐왔을 텐데 결국 버닝썬 사태가 터지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며 “버닝썬 사건에 앞선 사건들이 미처 규명되지 못한 부분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그룹 '빅뱅'의 멤버 승리의 성접대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지난 3월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클럽 '아레나'를 압수수색했다. 사진/뉴시스
 
최영지 기자 yj113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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