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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방대한 자료 요구하는 회생제도, 채무자 두번 죽여"
변협 등 '개인도산제 개선모색 토론회' 열어…서울회생법원 수석부장 "도산준비가 청문회보다 어려워"
2019-06-25 17:32:19 2019-06-25 17:32:19
[뉴스토마토 최서윤 기자] #경기도에 사는 30대 초반 A씨는 채무에 시달리다 2014년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해 이듬해 변제계획안이 폐지됐다. 현재는 150만 원 정도의 일용직 소득으로 월세 38만원의 고시원에 살고 있지만, 구직이 어려워 채무변제를 못하고 있다. A씨는 2017년 개인회생 재신청을 했으나 소득이 불분명하다며 기각됐다.
 
#충북에 사는 40대 후반 택시기사 B씨와 식당 일용직으로 근무하는 부인 C씨는 고등학생과 대학생 자녀 2명을 키우며 월세와 교육비 등으로 전보다 빚이 늘자 2015년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그러나 상환 여력이 부족해 변제금 미납으로 폐지됐다. C씨는 개인파산을 신청하려고 법률구조공단을 찾았지만, 근로능력이 있어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2004년 개인채무자회생법 시행과 2017년 서울회생법원 설립으로 개인도산이 제도적으로 자리 잡은 것 같지만, 아직 사각지대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인회생과 개인파산 제도가 있지만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아직도 채무로 인해 일가족이 자살하는 사건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대한변호사협회와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는 25일 더불어민주당 박주민·제윤경 의원과 공동주최로 2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토론회를 열고 개인도산제도 개선안을 논의했다.
 
대한변호사협회와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가 더불어민주당 박주민·제윤경 의원과 공동주최한 '개인도산제도 현황 및 개선점 모색 토론회'가 2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박주민 의원실 제공
 
발제자로 나선 서경환 서울회생법원 수석부장판사는 개인파산보다 개인회생에 비정상적으로 쏠리는 현상을 제도 운영상 중요한 허점으로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전체 개인도산 사건 중 개인파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70%정도인 반면, 우리나라는 201735%, 지난해 32%에 그치며 개인회생 쏠림 현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 원인으로 서 판사는 복잡한 신청서류와 방대한 소명자료 등 절차적 문제를 우선 짚었다. 서 판사는 “‘개인도산 준비가 장관임명 청문회 통과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면서 소득이 있는 걸 소명하는 것보다 소득이 없는 걸 소명하는 게 더 어렵다. 대법원도 신청서류를 너무 과도하게 요구한다는 내용을 지적한 판례가 몇 십 개 있지만 아직도 하급실무는 이를 못 따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서 판사는 판사들은 기본적으로 약속을 지켜야 하고, 빌린 돈은 갚아야 한다는 사고를 갖고 있어 담당법관에 따라 언제든 엄격심사로 바뀔 수 있다면서 신청서류와 절차를 대법원 예규에 못 박거나 입법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파산 선고자에 대한 여러 차별 규정도 문제다. 특히 파산선고를 받고 복권되지 않으면 공무원·교원·변호사·공인회계사·결혼중개업자 등의 직업을 제한한 법 규정만 200여개이고, 그 외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아파트 동별대표자, 아이돌보미 등도 할 수 없고, 국비유학시험 응시자격도 제한된다. 파산대상자도 쉽게 신청하지 못하는 이유다. 서 판사는 파산을 많이 하는 의사와 약사, 변호사 사무장 등은 힘 있는 직능단체의 압력으로 다 빠져나갔다면서 입법적 해결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다수 채무자가 일단 개인회생을 신청하더라도 파산신청이 가능한 대상자는 쉽게 전환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보완이 될 수 있다. 서 판사는 미국의 경우 개인회생 심사 중 파산대상자는 개인파산으로 쉽게 전환해주는데, 우리나라는 기각하고 처음부터 다시 신청해야 해 전환이 쉽지 않다면서 제도 운영의 유연성을 역설했다.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백주선 변호사는 도산전문법관제도의 도입을 제안했다. 백 변호사는 파산법관 근무기관은 2~3년에 불과한데, ‘약속을 지키고, 빚은 갚아야 한다는 원칙이 익숙한 판사들이 도산법에 적응하는 데 2년쯤 적응기간이 필요해 거기서 오는 부작용도 적지 않고, 재판부가 바뀌면 처음부터 다시 소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은 연방파산법원(U.S. Bankruptcy Court) 법관 임기가 14년으로, 미국기업들은 잘 정비된 도산법제와 도산전문가들 덕분에 유럽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위기를 벗어나 경쟁력을 회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면서 회생법원이 생겼다면 그에 수반해 도산전문법관제도를 도입, 전문화 된 법관이 지속적으로 한 기관에서 일하면서 역량을 축적시킬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그밖에 주택담보대출채무나 대학생 학자금대출 등 회생 범위에서 제외된 채무도 있다. 백 변호사는 청년들은 파산절차를 거치더라도 학자금이 면책되지 않아 실효성이 없다면서 면책 범위를 좀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주택담보대출채권의 도산절차 편입 관련 법무부가 2009년 입법예고안을 마련했지만 금융권 반대로 법안으로 제출되지도 못했다. 19대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박영선·박범계 의원 등이 법안 발의를 했으나 임기 만료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는 민주당 제윤경 의원이 2016년 발의한 법안이 계류 중이다. 서 판사는 입법이 계속 좌절되자 서울회생법원이 올 1월부터 신용회복위원회 등과 협의를 거쳐 채무재조정 프로그램을 시범실시하고 있다면서 입법적 개선을 재차 강조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명한석 법무부 과장은 도산법은 결국 기존 사법 법률체계와 법률기본원칙을, 사회경제적 차원의 필요성과 인간 존엄성 측면의 개인적 필요성에 의해 수정한 것이라면서 “‘경제를 더 잘 돌아가게 한다는 찬성론과 왜 돈 떼먹은 사람이 떵떵거리고 살아야되냐는 반대론 사이에서 제도개선만큼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서윤 기자 sabiduri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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