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정치인은 책임감 있어야
입력 : 2019-07-02 06:00:00 수정 : 2019-07-02 06:00:00
어떤 사람을 알고자 한다면 그 사람의 이력을 보라는 말이 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를 두고 하는 말 같기도 하다. 그는 모두가 알고 있듯이 공안검사 출신이다. 그런 사람이 국민의 촛불로 이뤄낸 민주주의 무대에 주인공으로 재등장하다니 한국 민주주의의 큰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수렁에 빠진 한국당을 살리기 위해 구원투수로 등판했다는 ‘20세기 공안검사’는 21세기 개방형 인간이 되기엔 역부족이다.
 
연일 쏟아내는 그의 말실수가 이를 증명한다. 어느 날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차등지급하자고 해 인종주의자임을 자처하고, 어느 날은 자신의 아들이 이른바 ‘스펙’ 없이 대기업에 입사했다고 자랑해 청년들의 분노를 샀다. 세계의 국경이 허물어지고 경제 불황이 지속되는 이 시대, 그는 화성에서 온 정치인임이 분명하다. 어디 이뿐인가. 지난달 26일에는 일부 한국당 당원들이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춤을 추는 ‘우먼 페스타’에 참석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러한 일련의 해프닝을 보면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김연철 현 장관에게 한 “축사하러 다닐 시간이 어디 있느냐”는 말이 떠오른다. 황 대표에게도 부합하는 말로 보이기 때문이다. 공당의 대표라면 당 쇄신을 위해 아이디어를 짜고 정책 개발에 고군분투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청와대에 “경제청문회를 하자”고 싸움을 걸려면 한국당이 먼저 그럴듯한 경제정책 하나는 내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의 정치가 제자리걸음인 것은 정치를 너무 가벼운 퍼포먼스로만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치인들은 그들의 행동에 큰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절감한다. 현재 수렁에 빠진 프랑스 공화당이 그 예다. 지난 5월26일 유럽선거에서 8.48% 밖에 득표하지 못한 공화당은 역사적 대참패를 당했다. 그로부터 1주일 후인 6월2일 밤 로랑 보키에(Laurent Wauquiez) 대표는 프랑스 민영TV TF1에 나와 당 대표 사임의사를 밝혔다. 보키에 대표는 “사실 간단히 말하면 승리는 공동의 것이지만, 실패는 외롭다. 원래 그런 것이다. 나는 책임을 지고 뒤로 물러서기로 결심했다”라고 초연하게 말했다.
 
이에 보키에의 라이벌인 공화당의 거물급 여성정치인 발레리 페크레스(Valerie Pecresse)는 “만약 내가 그(보키에)의 입장이었어도 분명 사임했을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이처럼 선거에 참패하면 당 대표가 책임을 지는 액션을 취하는 것이 프랑스 정치다. 1999년 유럽선거에서도 공화당이 12.9% 밖에 얻지 못하자 당시 대표였던 니콜라 사르코지는 전격 사임했다.
 
프랑스 정치인들이 이처럼 책임 있는 행동을 하는 데는 국민의 역할이 크다. 프랑스인들은 정치인들의 잘못을 호락호락 넘기지 않는다. 보키에가 사임한 후 공화당 후임자가 마땅히 보이지 않자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재등판 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은 사르코지의 정계복귀를 원치 않는다. 공화당 대표로 사르코지가 다시 나설 가능성을 놓고 지난달 30일 프랑스 일요신문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76%의 프랑스인이 이를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63%의 프랑스인은 사르코지가 당 대표로 돌아오는 것 자체를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봤다.
 
반면에 공화당 지지자 중 65%는 사르코지의 복귀를 호의적으로 봤다. 이 조사에서 57%의 프랑스인은 대통령으로서의 사르코지 업적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러한 평가는 2013년 이후 변함이 없다.
 
싸늘한 민심을 의식이라도 한 듯,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프랑스 공영TV France 2에 출연해 최근 출판한 자신의 책 <열정(Passions)>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정계복귀는 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다. 그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 대해 “그의 자리가 어디인지 알아봐야 한다”고 했고, 자신에 대해서는 “내가 있을 곳은 더 이상 정치 쪽이 아니다. 나는 그 어떤 정치적 일정도 없다. 만약 내가 다시 공화당으로 돌아간다면 혼란만 좌초하고, 이건 불필요한 일이 될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이처럼 프랑스 정치인들은 정치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통감하고 있다. 또한 국민들은 정치인들의 잘못을 쉽사리 용서하지 않는다. 프랑스 정치가 그나마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비결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황 대표는 탄핵당한 박근혜정부의 국무총리를 역임했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전 정부와 전혀 상관없다는 듯 한국당 수장으로 돌아와 총선 승리를 꿈꾸고, 나아가 대선 주자처럼 행보를 이어가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역설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물론 꿈꾸는 건 자유다. 인간에겐 그럴 자유가 있으니까. 단지 “자유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책임이 따른다”라는 말을 우리 정치인들은 기억해야 한다. 또한 국민들도 ‘정치는 생물’이라며 정치인들의 거짓말을 당연시 한다면 정치의 악순환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정치인은 스스로가 자질이 있는지 반성할 줄 알고, 국민은 자질 없는 정치인을 단호히 단죄할 수 있는 문화가 조성돼야 정치는 진일보한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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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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