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일본 경제보복 속 한국의 현주소
입력 : 2019-07-05 06:00:00 수정 : 2019-07-07 18:16:46
최한영 정치부 기자
일본인들의 준비성은 철저하기로 유명하다. 1941년 미 진주만 공습 전 일본 해군은 함대 이동 과정에서 민간 상선이나 미군 정찰기와 마주칠 가능성이 없는지 여부를 사전 점검하고, 첩보원을 통해 정박 중인 군함 위치까지 상세히 파악했다.
 
<스포츠조선>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 2012년 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앞두고 호주와의 평가전과 1라운드 경기가 열리는 자국 경기장 흙을 대회 준결승·결승전 장소인 미 샌프란시스코 AT&T파크 흙과 같은 종류로 바꿨다. 일본 야구장 흙은 미국 야구장보다 상대적으로 무른 편인데, WBC 3회 연속 우승을 노리면서 현지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흙까지 바꿨던 것이다.
 
우리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판결 관련 일본 정부는 지난 1일 사실상의 경제보복 조치를 발표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에 쓰이는 3개 소재(불화 폴리이미드, 리지스트, 불화수소)를 포괄적 수출 허가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 등을 포함했다. 곳곳에서 일본 정부가 철저히 준비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한 전직 외교관은 이번 발표를 경제산업성이 한 것에 주목하며 "오래 전부터 준비를 했을텐데 한국 정부와 기업 어디서도 사전에 감지를 못했을 정도로 내부 정보통제가 완벽하게 이뤄진 점도 놀랍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가 올해 초부터 경제보복 조치 가능성을 예고해 왔다거나, 지난달 28~29일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자유롭고 공정하며 비차별적인 무역환경 구축' 선언을 주도한 일본이 불과 이틀 후 이에 반하는 정책을 내놨다는 등의 사실은 일단 제쳐두자. 우리 기업들에게 미칠 피해를 막기 위해 당장 사태수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정부의 반응은 현재까지 놓고 보면 미덥지 않다. 특히 외교부는 2·4일 모두 대변인 논평을 통해 "일본의 이번 조치는 불합리한 경제보복 조치이고 상식에 반하는 조치라는 점에서 매우 유감이다" "즉각 철회를 요구한다”는 정도의 언급에 그쳤다. 지난달 19일 우리 정부가 제안한지 한 시간 만에 퇴짜를 맞았던, 한일 양국기업이 자발적으로 출연금을 조성해 강제노동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방안을 논의하자는 말도 반복했다. 이를 놓고 일본 전문가인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우리 정부가 너무 수세적"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일본 정부가 내놓은 조치들이 영원히 간다는 보장은 없다. 일본 기업들도 '우량 고객' 한국을 잃을 수 있기에 상황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그렇더라도 지금처럼 '무대응일 뿐이지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는 식으로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 영원히 일본과 등을 지고 살 것이 아니라면 어떤 형태로든지 채널을 구축해 대화에 나서야 한다. 국토가 통째로 이동하는 기적이 발생하지 않는 한, 좋든 싫든 한국은 일본과 마주보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최한영 정치부 기자(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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