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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기방도령’, 절반의 아쉬움이 너무 강했다
B급 장르물, 풍자와 해학 제대로 담은 전반의 흥겨움
영화 후반, 시대적 무능함 권위 비판-여성 억압 ‘지적’
2019-07-07 00:00:00 2019-07-07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제목부터 B급 감성이 뚝뚝 떨어진다. 내용은 더욱 B급이다. 조선시대가 배경이다. 남존여비 유교사상이 사회 전체 지배하던 시기이다. 이 시대에 남자가 기생이 된다. 여자, 특히 남편을 먼저 떠나 보낸 여인들이 술집에 드나든다. 이 여인들을 상대하는 남자 기생이 나온다. 현 시대를 거울로 풍자를 콘셉트로 잡았다고 하지만 아슬아슬하다. 풍자와 3류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두 시간 분량의 매체(영화)가 풍자를 주된 동력으로 삼고 있다면 필시 3류의 색채를 강하게 풍겨야 한다. 3류가 나쁜 것은 아니다. 1류와 2류의 허울은 사실 3류의 존재감을 반대급부로 돋보이게 하는 역발상이다. 더욱이 장르적으로 사극이다. 사극은 무게감과 분위기로 시대상을 그려야 한다. 영화 기방도령은 완벽한 역발상의 드라마이다.
 
 
 
여성의 욕망과 욕정을 속곳으로 꽁꽁 싸매야 정절수절의 상징이며 훈장처럼 여기던 시절. 그것을 희생이 아닌 강요로 이뤄내던 시절. ‘기방도령은 정면으로 응시하고 조롱한다. 조롱의 수위가 아슬아슬한 비주얼이 아닌 상황과 사건으로 풀어가니 발칙하고 깜찍하다.
 
주인공은 기방에서 태어나 세상 모든 삶의 이치가 기방속에 머물고 있던 허색. 기생의 몸에서 태어난 그는 출세의 길은 언감생심이다. 스스로도 생각이 없다. 그저 시, , 화 그리고 여자의 몸에서 세상 이치의 즐거움을 찾으려고만 하는 놈팽이 꽃도령이다. 기방 연풍각의 주인이자 허색의 이모 난설은 역정을 내고 그를 내쫓는다. 허색은 이름처럼 헛헛한 웃음 한 방과 함께 멋들어지게 연풍각을 제 발로 나선다. ‘며칠 놀다 들어가면 되겠지란 생각이다. 한 두 번이 아닌 듯하다. 그렇게 떠난 유랑길에 벌거숭이 기인 육갑을 만난다. 허색과 육갑은 그렇게 다시 연풍각으로 돌아온다. 허색의 주색잡기에 가까운 난봉기, 육갑의 기괴한 행색. 이들은 난설에게 기절초풍할 제안을 한다. 허색 스스로가 남자 기생이 돼 쓰러져 가던 연풍각의 매출을 끌어 올리겠단 것이다. 육갑의 말 빠른 행동과 입담은 금새 장안 최고의 기방으로 연풍각의 이미지를 끌어 올린다. 장안 과부들을 넘어 여인네들의 마음이 들썩인다. 매출 급락으로 사채 고리를 끌어 쓰다 하루 아침에 기방을 넘길 위기에 처했던 난설은 반색을 한다. 이제 연풍각은 장안 최고의 아이돌 스타 허색’, 장안 최고의 홍보 전담맨 육갑을 고용한 최고의 연예 기획사가 된 셈이다. 밤마다 문전성시를 이룬 연풍각은 이제 제2 3허색을 대신할 연습생들까지 고용한다.
 
영화 '기방도령' 스틸. 사진/판씨네마(주)
 
하지만 사건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발생한다. 여성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여성의 마음을 사로 잡는 법에선 장안 최고의 기술자였던 허색이 마음을 빼앗긴다. 몰락한 양반집 여인 해원이다. 어린 몸종과 함께 홍시를 따는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장안 모든 여성의 마음을 찰나의 순간에 빼앗던 허색이지만 왠지 모르게 해원 앞에선 어쩔 줄 몰라 한다.
 
영화 '기방도령' 스틸. 사진/판씨네마(주)
 
기방도령은 전반과 후반이 완벽하게 다른 색깔로 나눠진다. 전반은 국내 상업 영화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B급 사극 장르다. 사극이란 장르의 색채가 가진 무게감을 완벽하게 전복시키면서 상업 영화가 추구하기 힘든 B급의 색채를 물씬 드러낸다. 이 색깔이 의외로 싸구려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는 드러냈지만 포장하려 들지 않은 자신감 때문이다. 연출은 맡은 남대중 감독은 전작이자 데뷔작인 위대한 소원을 통해 B급 코미디에 대한 감각을 드러낸 바 있다. 물론 소재주의 측면에서 여론의 뭇매를 얻어 맞은 경험도 갖고 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친구가 죽기 전 여자와 한 번 자보고 싶다는 콘셉트가 문제였다. 그래서인지 기방도령에선 더욱더 적나라하지만 정서적으로 접근했다. 사극과 여성의 욕망 여기에 장르와 시대상의 전복이 만들어 낸 풍자가 적절하게 죠화를 이루며 의외의 결과물을 이끌어 낸 셈이다. 전반까지는 분명히 완벽에 가까운 풍자극이며 해학까지 담은 마당극의 한 판 놀음이었다. 제작사의 모회사가 데뷔시켜 신드롬을 일으킨 걸그룹의 히트곡이 허색의 연심을 담은 멋들어진 시 태을미로 그려진 점 역시 허를 찌르는 한 장면이다.
 
영화 '기방도령' 스틸. 사진/판씨네마(주)
 
하지만 중반 이후 기방도령의 색채는 흐려지고 무게를 끌어 온다. 전반에서 조롱과 풍자를 일삼던 모든 소재를 정공법으로 해석하려는 방식으로 전법을 바꾼다. 남존여비를 비판하는 장면, 시대상의 주류 지배층인 양반들의 무능, 국가에서 장려한 열녀문의 허상을 비교적 무게감을 더하며 지적하고 비판한다. 전반의 가볍고 웃음기 가득한 인물들이 돌변한다.
 
영화 전반의 한 바탕 놀음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후반에 끌어 오려 했다면 무리수가 분명하다. 반대로 후반의 반성과 성찰을 위해 전반의 흥겨운 웃음을 장치했다면 B급 정서에 대한 감독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 너무 강했다.
 
영화 '기방도령' 스틸. 사진/판씨네마(주)
 
쉼 없이 웃기고 말도 안되게 웃기고 생각 없이 웃기고 웃길 것 같은 데서 웃겼는데 마지막에 그 웃음을 혼낸다. ‘절반의 아쉬움은 분명히 기방도령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오는 10일 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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