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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복무로 군 기피 는다는 건 '기우'"
'양심적 병역거부' 박모씨, 3년 송사 끝에 무죄 판결 받아내
"포기 않은 건 더 나은 환경 위해"
2019-07-16 06:00:00 2019-07-16 06:00:00
[뉴스토마토 최서윤 기자] 대만에서 대체복무가 시행되면 종교를 구실로 군복무를 기피하는 사람이 늘어날 거라고 우려했지만 매년 신청자는 10~30명뿐, 16년간 총 700여명에 그쳤습니다. 강도 높은 대체복무를 해야 하기 때문이죠. 저희가 바라는 건 법률제도 개혁이 아니라 그저 양심에 따라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지난 11일 병역법위반 혐의를 벗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박모(29)씨는 선고 직후 <뉴스토마토>와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1(재판장 이성복)는 박씨에 대해 징역 1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확고한 신념·대체복무 이행 의지·성실한 종교생활 참작
 
재판부는 형사처벌 위험을 감수하면서 종교적 신념에 따라 집총 및 현역 입영 거부 의사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면 이를 통해 병역의무를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박씨는 부모님은 신도가 아니란 사실이 진지하고 확고한 양심 판단에 걸림돌이 될까도 걱정했다고 한다. 재판부는 박씨가 2010년 캐나다에서 침례를 받은 뒤 꾸준히 교회에서 성경공부와 봉사활동을 병행, ‘정규 파이오니아라는 봉사자 및 장로·지부 원격 봉사자의 직분으로 활동하는 등 적극적으로 교회활동을 하고 있는 점을 참작했다.
 
더 나은 환경만들기 위한 3년의 법적 싸움
 
주문이 낭독되자 방청석에선 !” 하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3년 송사의 고충이 집약됐다. 박씨는 중학생 때 캐나다로 가 10여년 유학생활 중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됐다. 2016년 여름 귀국할 땐 고민이 많았다. 입영통지를 받게 될 걸 알았기 때문이다. 캐나다에서 직장을 얻고 살거나 국적을 포기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그는 귀국을 택했다. 바로 입영통지서를 받고, 3일이 되도록 입영하지 않아 범법자가 되는 수순을 그대로 따랐다.
 
박씨는 가장 힘들었던 건 유죄 판결을 받을 걸 뻔히 알면서도 제 입장을 지켜나가야 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다.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을 것이다(이사야 2:4)’는 등의 성경 구절에 따라 병역의무 이행을 거부하고 있다. 재판 과정 내내 박씨는 범법자가 될 수밖에 없는 주장을 견지했다.
 
그는 지난 세월 양심적 병역거부가 받아들여질 것처럼 보인 때가 몇 번 있었지만 모두 무산됐습니다.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죠라고 회고했다.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을 때도 결국 다 이렇게 되는구나싶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송사를 이어온 건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는 지난 3년을 법적 싸움이라고 표현했다.
 
헌재대법원국회서 멈춰선 대체복무 통해 국가의무 다하고 싶다
 
법원은 2004715일 양심적 병역거부를 유죄로 판단한 대법원 입장을 유지해왔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에게 다시 입영통지를 받더라도 종교적 양심을 이유로 입영할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밝히고 있어 집행유예를 선고할 경우 재범 위험성이 명백하다며 징역형을 선고해왔다. 박씨 역시 그 판례에 의해 201612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지난해 628일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같은 해 111일 대법원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병역의무 이행 강제와 불이행 시 형사처벌에 대해 헌법상 기본권 보장체계와 전체 법질서에 비춰 타당하지 않고,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라는 자유민주주의 정신에도 위배된다며 판례를 변경했다. 이에 올 초부터 법원에선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남은 건 대체복무 입법이다. 국회는 헌재 결정에 따라 올해 말일까지 병역 종류를 현역·예비역·보충역·병역준비역·전시근로역 등으로만 규정한 병역법 5조를 개정해야 한다. 정부는 36개월간 교정시설에서 합숙 복무하는 안을 마련해 제출했지만, 국회는 아직 상임위 상정도 하지 않았을 만큼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정부안을 두고도 찬반이 팽팽해 넘을 산도 많다.
 
대체복무 수행 의지가 무죄 판결 이유에도 참작됐을 만큼 강한 박씨는 앞으로 시행될 군과 무관한 형태의 대체복무 제도를 통해, 대한민국에서의 국가의 의무를 기꺼이 이행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7월5일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이철희 의원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국회 정론관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대체복무제 입법 촉구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지난해 6월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을 2019년 12월31일까지 개정하라고 권고했지만, 국회는 아직 정부가 제출한 대체복무안을 국방위 상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서윤 기자 sabiduri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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