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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아베와 추경의 딜레마
2019-07-22 06:00:00 2019-07-22 06:00:00
"자유한국당이 추경 인질극을 벌이고 있다."
 
지난 19일 정의당 전 대표가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다. 그 다음 날인 20일 나경원 한국당 원내 대표는 "대승적 양보 생각했지만, 정부가 낸 추경안이란 것이 해도 해도 너무 심했다"라고 작심 비판했다. 
 
우리 헌법 제56조에는 ‘정부는 예산에 변경을 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하여 국회에 제출할 수 있다’고 되어 있고, 올해 추경은 6조 7천억 규모로 재해·재난복구 및 예방 예산 2조2000억원과 경기대응 및 민생지원 예산 4조5000억원으로 구성됐다. 여기에 일본의 경제보복 관련 7929억원의 증액이 추가로 요구되었다. 정부는 그 중 절반 가량을 국채 발행을 통해 집행할 예정이다. 
 
그동안 한국당에서 ‘추경 규모가 너무 크다, 총선을 겨냥한 선심성 예산이다’라며 반대의사를 피력해 왔지만, 국회가 지난 4월 5일 본회의 이후 단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했고 국민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6월 임시국회에서 추경안을 통과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17일부터 3일 동안 올해 추경안 감액 심사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상당 부분의 사업들이 보류되고, 정회가 선포되는 등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 6월 임시국회가 끝나는 날까지 추경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는 열리지 못했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어쩔 수 없다. 우리는 y(종속변수)고 원내대표들이 x(독립변수)"라고 말하기도 했다. 
 
홍남기 부총리가 "정부가 하반기 경제성장률을 2.4%로 전망한 배경에는 추경을 포함한 정부 정책들이 효과를 낸다는 전제하에서 추계한 것"이라고 강조했고, 이낙연 총리 역시 "IMF(국제통화기금)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추경을 하라고 권고했으며 이들 기관이 한국을 골탕 먹으라고 했겠느냐"고 거들기도 했으나 바른미래당 지상욱 의원은 "국가부채가 GDP(국내총생산) 대비 4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추경의 절반 이상을 빚을 내서 조달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국채 발행을 통한 추경 편성을 반대하고 나섰다. 한국당 박완수 의원도 "이번 추경의 특징은 '적자부채·빚 추경', 면밀한 준비 없이 진행된 '급조 추경', 6조7천억원 가운데 63%인 4조2천억원이 현 정부 추경 때마다 나온 '재탕·삼탕 추경', 그리고 근거 법령 없는 '졸속편성 추경'"이라며 "정부의 이야기를 전혀 신뢰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2015년 이명박 정부가 편성한 '메르스 추경' 때도 9조6천억원이나 국채를 발행했던 전례가 있었다. 또 정부 제출 284개 사업 가운데 약 25%가 그 사업의 특성상 과거 두 차례 추경과 연결지어 진행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야당 의원들의 지적은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이번 아베 총리의 반도체 소재부품 수출 규제와 관련하여, 예결위 심사 과정에서 최대 8000억원 상당의 일본 경제보복 대응 예산 증액 규모가 발목을 잡는 쟁점으로 떠올랐다는 것이 놀라운 점이다. 
 
당초 이낙연 총리가 언급했던 일본 대응 관련 추경 증액은 1200억원이고, 민주당이 요구한 금액은 3000억원이었지만, 각 상임위 단계에서 증액되면서 총 8000억원 가량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벤처기업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이 지난 대정부 '정책질의' 과정에서 문제가 되었던 야당의 요구를 반영하자 갑자기 금액이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나 대표는 최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처음에 미세먼지 추경하더니 경기부양 추경을 하면서 온통 총선용 추경, 가짜 일자리 추경을 가져왔다"며 반발했고, 나대표를 포함한 한국당 의원들은 일본 보복 대응 추경을 가져오더니 액수 확정도 하지 않고, 도깨비 방망이처럼 닥치고 '깜깜이 심사'를 하라는 것은 문제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1년 4개월만에 열린 여야 5당 대표와의 영수회담에서 거둔 성과라는 것이, ‘아베 내각의 대 한국전 경제 보복을 한 목소리로 비판하고 초당적 대응을 하기로 했다’는 것 하나밖에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추경 심사의 발목을 잡은 것이 ‘일본 보복 대응 추경 예산’이었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더욱이 한국당이 추경 처리 조건으로 정경두 국방부장관 해임 건의안 표결과 국정조사를 주장하고 나선 것을 보면, ‘한국당의 추경 인질극’이라는 말은 차라리 팩트가 아닐까. 
 
노영희 법무법인 '천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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