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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행, 본점 사무용품 입찰 과정서 공정성 논란
품평회서 설치기준 안지킨 업체 선정·견품 보관않고 철거 등 의혹
2019-07-24 08:00:00 2019-07-24 11:34:48
[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기업은행이 서울 을지로 본점을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불공정한 방식으로 입찰을 진행했다는 의혹에 휘말렸다. 지난 1987년 준공 이후 32년 만에 본점 보수공사에 돌입했지만, 조달물자 입찰 과정을 놓고 깜깜이 심사와 투명성 논란 등 잡음이 일고 있는 것이다.
사진/뉴스토마토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지난달 20일 조달청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을 통해 을지로 본점 조달물자(물품) 구매 관련 개찰을 실시했다. 총 35억여원이 투입되는 이번 입찰은 은행 사무용가구 제작 및 설치를 위한 것으로, 제한경쟁(총액) 방식으로 추진됐다.
 
기업은행은 제안서 기술(80%)과 가격(20%)을 종합평가한 결과를 바탕으로 고득점자를 우선협상자로 선정하기로 했으며, 해당 입찰에는 6개의 중소기업이 참여해 A업체가 최종 선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논란이 된 부분은 규정 위반 여부다.
 
<뉴스토마토>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사무용가구 품평회에서 특정업체의 규정 위반 사실 의혹이 제기됐음에도 샘플을 보관하지 않고 철거하도록 조치했다. 조달청에 고시된 계약 예규를 보면 계약담당자는 낙찰자의 견품을 계약 이행 후, 낙찰자 이외의 입찰자 견품은 낙찰자 결정 후 각각 1개월 이내에 해당 낙찰자 또는 입찰자의 요구에 의해 반환하도록 돼 있다. 최대 한 달 정도는 견품을 보관해 향후 납품될 제품 등과 비교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기업은행은 참여업체들에게 사무용 가구 구입·설치 관련 품평회 직후 설치 물품을 철거하고, 은행의 결정에 대해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각서를 받았다. 현재 조달청은 입찰집행과 관련해 입찰공고서와 규격서(제안요청서 등 입찰 첨부서류 일체)의 내용이 서로 다를 경우 입찰공고서를 우선 적용하고 있다. 문제는 견품이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A업체가 규정을 위반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해당 업체는 은행이 요구한 설치대상 품목 이외의 제품을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기업은행은 품평회 시 설치할 가구 목록으로 책상·스크린·하부장·캐비닛 등을 제시했으며, 지정품목 이외의 노트북이나 스탠드 조명, 꽃병 등 액세사리 설치를 불가했다.
 
또한 서랍레일 등 하드웨어에 있어 국산제품 동등품 이상을 사용하도록 하고, 지정한 규격과 요건을 지키지 않은 업체에 대해선 참가자격을 무효로 하는 등 엄격한 기준을 내세웠다. 그러나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A업체가 무선충전기 박스를 별도로 설치한 것으로 전해지며 경쟁업체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상황이다.
 
아울러 A업체는 지난 2016년 명동 본점 사무용가구 설치와 관련한 입찰 과정에서도 전시품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제품을 내놔 문제가 된 바 있어 논란은 가중되는 모습이다. 해당 업체는 당시에도 우선협상대상 기업으로 선정됐다.
 
이 때문에 여타 참가 업체들은 현재 기업은행에 문제가 된 무선 충전기에 대한 제안서 내용과 품평회에 설치된 상태의 사진촬영 자료 등을 공개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제안서 작성 시 비품 등의 내역을 품목별로 표기해 규격, 모델, 사용소재, 수량 등을 포함해야 하고, 제안서와 품평회 설치 비품이 다를 경우 참가자격 및 선정의 무효 사유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는 얘기다.
 
조달청 행정규칙인 ‘협상에 의한 계약 제안서평가’ 제16조에 따르면 평가집행자는 입찰자의 정당한 요청이 있거나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개인정보나 영업비밀 등을 제외한 범위 내에서 제안서 평가결과를 공개할 수 있다.
 
더욱이 해당 품평회는 비공개로 진행됐다는 점에서 수요기관 측에 확인·검증의 책임이 있다는 게 업체들의 지적이다. 입찰에 참여한 업체 관계자는 “품평회가 다른 기관과 달리 비공개로 진행됐기 때문에 입찰 참여업체간 상호 검증할 기회가 없었다”면서 “제안서 내용과 품평회 설치 비품이 다를 경우 우선협상자의 지위가 무효화될 수 있는 심각한 상황으로, 이에 대한 문제 제기는 제안요청서 내용과 계약 예규 등 제반 사정을 비춰 볼 때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확인해줄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이와 관련해 기업은행 측은 정보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통상 입찰은 나라장터를 통해 공개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외부의 압력 등에 의해 낙찰자를 선정할 수 없다”면서 “이 때문에 사전에 확약서를 받은 것인데 결과서를 공개한다면 오히려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업체나 다른 업체 등과의 약속을 위반하는 것이 된다”고 반박했다. 이어 “윤리 위반 여부와 관련해서도 은행 내 준법지원부에서 법률 검토를 진행했지만, 절차상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조달청 관계자는 “입찰 과정에서 하자나 문제가 있다면 해당 결격사유에 대한 심사를 진행해 (우선협상자) 선정을 무효로 할 수 있다”면서도 “수요기관인 기업은행에서 적용하는 기준이나 규칙이 있기 때문에 불합리한 점이 있다면 우선 은행에 이의 신청을 제기해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입찰 과정에서 담합 등이 있었다면 공정거래와 관련해 조사를 할 수 있지만 현 단계에서는 이의가 제기된 정도로 보인다”며 “만약 리베이트가 오갔다거나 하는 부분이 있다면 형사 처벌로 넘어가기 때문에 논란이 된 부분을 잘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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