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인터뷰)‘봉오동 전투’ 류준열을 숙연하게 만든 ‘숫자’
“청산리대첩 알지만 ‘봉오동 전투’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위대한 역사 속 승리, 그 승리 만들어 낸 ‘숫자’ 속 독립군”
2019-08-07 00:00:00 2019-08-07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2014년 영화 소셜포비아로 데뷔했다. 이듬해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통해 벼락스타가 됐다. 누구는 그에게 벼락이란 단어를 쓴다. 하지만 류준열에게 떨어진 벼락은 길고 긴 시간을 버텨온 세월의 답변이었을 뿐이다. 그 역시 한 때는 숫자로만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여러 영화에서 단역으로 출연했다. ‘지나가는 행인1’ ‘행인2’ 때로는 이름도 없는 단역이 그의 몫이었다. 누구도 알아 주지 않는 단편 영화에서만 자신의 존재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버텨냈다. 그저 순수했기 때문이다. 연기가 좋았다. 연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류준열에게 지금이 있다. 그랬기에 역사 속 봉오동 전투의 승리 뒤에 숫자로만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는 이름 모를 독립군의 의지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감복했다. 대한민국 국민 누구라도 그렇지만 류준열이 걸어 온 배우의 길과 의지가 영화 봉오동 전투속 독립군 이장하를 만났기에, 우린 그 시절 숫자로만 역사에 아로새겨 진 그들의 위대함을 더욱 가슴 떨리게 이 영화로 느꼈는지도 모른다.
 
배우 류준열. 사진/쇼박스
 
언론 시사회가 열린 바로 다음 날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류준열과 마주했다. 충무로에서 소처럼 일하는 배우로 불리는 류준열이었다. 지난 해 말부터 올해까지 리틀 포레스트’ ‘독전’ ‘뺑반’ ‘등 무려 네 편을 연이어 소화했다. ‘봉오동 전투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1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는 스케줄 강행군이다. 누구라도 그랬겠지만 이번 봉오동 전투는 선택 안 할 이유를 전혀 찾지 못할 정도였다고.
 
시나리오를 봐도 거절할 이유를 전혀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너무 영광스럽기도 했죠. 이런 위대했던 분들을 제가 연기한다는 게. 사실 너무 슬프기도 해요. 분명히 존재했던 분들이지만 역사에는 숫자로만 기억된 분들이잖아요. 실제 봉오동 전투승리를 위해 노력하고 돌아가신 분들이 분명히 존재했을 텐데 그분들의 이름조차 남아 있지 않으니. 그리고 이 전투 자체에 대한 자료도 거의 없더라고요. 독립군 최초의 승리의 역사인데.”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역사 속 봉오동 전투를 배우게 됐다며 부끄러워했다. 실제 이 전투는 국사 교과서에도 단 몇 줄로만 남아 있다. 일제 강점기에 벌어진 전투였고, 분명히 독립군 최초의 승리로 기억된 전투이기에 당시 일제는 이 전투의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 것으로 여겨질 뿐이다. 때문에 제작진이나 배우들 모두 촬영 전 수 많은 자료 수집과 공부를 많이 했다고.
 
배우 류준열. 사진/쇼박스
 
우리가 청산리대첩은 다들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봉오동 전투?’ 그러면 아시는 분들이 정말 별로 없어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전력 차이를 넘어서 승리한 첫 번째 전투인데. 비록 촬영이지만 경험해 본 이 전투. ‘진짜 엄청났겠구나란 어렴풋한 짐작이 들 정도였죠. 저도 공부를 해보니 진짜 이렇게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게 죄스러울 정도로 대단한 업적이더라고요.”
 
비록 영화였지만 그 역시 봉오동 전투를 경험했다. 만약 류준열 본인이 그 시절 전투의 한 복판으로 들어갔다면, 일본군 최정예 부대인 월강추격대와 독립군의 전투 자체에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영화에선 사실상 대결 자체가 어불성설로 그려진다. 물론 실제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존했던 월강추격대는 만주 일대에 주둔한 일본군 가운데에서도 최고의 전투력을 자랑했다. 반면 독립군은 말 그대로 이합집산이었을 뿐이다.
 
사실 제가 그걸 어떻다고 말씀 드릴 순 없죠. 그런데 촬영 현장에서 몇 번을 울컥한 적이 있어요. 독립군 막사와 동굴 장면에서 진짜 눈시울이 붉어지더라고요. 숙연해지기도 했죠. 거의 그때의 고증에 맞춰서 세운 막사는 정말 여기서?’라고 할 정도로 초라했어요. 우린 여기서 잠깐 고생하고 촬영 끝나면 시설 좋은 호텔에서 쉬는 데. 독립군들도 시시각각 총만 들고 싸우진 않았을 거 잖아요. 쉬기도 하고 잠도 자고. 근데 여기서? 그런 게 와 닿으니 정말 울컥하더라고요.”
 
배우 류준열. 사진/쇼박스
 
류준열이 맡은 배역은 독립군 분대장 이장하. 그와 함께 호흡을 맞추는 황해철(유해진)은 일본군에게 어린 동생을 잃은 사연을 갖고 있다. 군인으로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해철과 달리 이장하는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인 군사 교육을 받았다. 물론 그 역시 어린 나이에 누이를 두고 독립군에 투신했다. 류준열은 이장하를 연기하며 겪은 어려움을 전했다.
 
정말 어려웠던 건 이장하를 연기하는 그 자체였죠. 액션? 산길 달리는 거? 어려운 촬영? 예전에 학교에서 군인 연기가 제일 어렵다는 교수님의 말씀을 오롯이 이해하게 됐죠. 비유하자면 선배님들은 휴게소에서 호두과자도 사먹기도 하는 등의 여유를 보일 수 있는 캐릭터였어요. 그런데 장하는 그러면 안됐죠. 사실 장하는 거의 대부분 후시녹음으로 가려고 했어요. 좀 부드럽게 톤을 조절하고 싶었는데 감독님이 장하는 그러면 안된다라고 선을 그었죠. 쉽게 말해서 장하는 서 있어도 연기를 하고 있는 듯한 캐릭터인데 실제는 그러면 안되잖아요. 그 중간을 찾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극중 그는 명사수로도 나온다. 백발백중의 사격 실력을 자랑한다. 단 한 발에 일본군 한 명을 사살할 정도로 멋진 모습을 자랑한다. 최근 한일 관계와 맞물려 민감한 질문이 될 수도 있을 듯싶었다. 한 발에 한 명씩 적들을 사살하는 모습에 보는 관객들은 묘한 쾌감을 느꼈다. 직접 연기하는 배우 입장에선 어땠을까. 영화 중반 쯤에는 기관총을 난사하는 모습도 나온다.
 
배우 류준열. 사진/쇼박스
 
쾌감이요? 언덕에서 기관총 쏠 때는 진짜 기분 끝내줬죠. 하하하. 영화에 사용된 총들이 진짜 오래된 것들이라 정말 고장이 잘 났어요. 해진 형이 영화에서 총을 쏘려다가 총알이 걸려서 못 쏜 장면이 있잖아요. 아마 그거 실제였을걸요(웃음). , 저희 영화에 나온 총들은 전부다 실총이에요. 영화 소품이나 가짜 총이 아니에요. 전부 실탄을 넣으면 살상이 가능한 총들이에요. 물론 촬영에선 공포탄을 넣고 사용했죠. 그래도 정말 조심조심했어요.”
 
영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배우들의 동선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달리고 또 달린다. 그것도 산길을 뛰고 또 뛴다. 각각의 배우들은 모두가 총을 들고 칼도 차고 달린다. 일부 단역 배우들은 커다란 배낭과 등짐까지 지고 달린다. 가벼운 영화용 소품이 아니다. 실제로 극중 유해진이 사용한 항일대도는 무쇠로 만든 거대한 큰 칼이었다. 류준열은 달리기 촬영에 혀를 내둘렀다.
 
제가 정말 달리는 거 하나는 자신 있어요. 술 담배도 안하고 축구도 워낙 많이 하고. 누구보다 뛰는 건 자신 있는데. 이번 촬영에선 정말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해진 형 뛰는 건 정말 못 따라 잡겠더라고요. 거짓말 안하고 전 스태프와 보조출연자 분들 전부 통틀어서 200명 가량 되는 데 해진 형이 제일 잘 달리세요. 진짜 산신령 같았어요(웃음). 뭐 평생을 산에서 단련을 하신 분이라. 엄청난 속도를 내시는 데 감탄만 나왔어요. 하하하.”
 
배우 류준열. 사진/쇼박스
 
이름 모를 독립군, 봉오동 전투승리를 만들기 위해 목숨을 받친 실제 역사 속 숫자로만 기억된 독립군을 연기한 류준열은 한 가지 바람도 전했다. 만약 이 영화가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의미 있는 흥행 결과를 이끌어 낸다면 꼭 그들의 노력이 값진 대우를 받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자신 그리고 유해진 조우진 등 주연급 배우들과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스크린에서 함께 한 단역 배우들에 대한 감사였다.
 
저희 독립군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대사 몇 마디, 혹은 대사도 없이 저와 해진형 우진형 뒤에서 묵묵히 화면을 채워 준 형님들이 계세요. 이분들 진짜 한 분 한 분 연기 경력이 어마어마한 분들이거든요. 그런데 단 한 번도 불평불만을 안 하셨어요. 오히려 웃으면서 누구보다 솔선수범하시고. 이분들의 공이 꼭 값진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꼭 우리에게 이런 위대한 역사가 있었단 점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