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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암전’, 공포와는 전혀 다른 서늘한 손짓
공포+스릴러 ‘혼합’ 장르, 장르 공식 속에 독특한 ‘변주’
영화 속 영화 ‘액자식 구성’…“관객 몰입도 높이는 연출”
2019-08-12 00:00:00 2019-08-12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집착이다. 사실 이건 광기라고 불러야 한다. 무언가 목표를 두고 그 목표에 집착을 하면 감정은 끓어 오른다. 들 끊는 감정은 어느 순간 임계점에 도달하고 그 이후부턴 완벽하게 달라진다. 그 달라진 것은 미침이다. 광기라고도 불리지만 미쳤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이다. 영화 암전속 주인공 미정(서예지)도 인정한다. 공포 영화 제작에 집착하던 그의 모습에 후배는 멋지다는 말로 에둘러 응원한다. 하지만 미정은 메마른 감정으로 다시 응원을 에두른다. “그저 미치면 된다라고.
 
 
 
영화 암전은 독특하다. 공포를 밑바탕에 깔고 있다. 일반적으로 공포 영화 작법을 대부분 수용한다. 루머가 전제된다. 그 루머에 따른 사건 발단이 등장한다. 그 발단은 영화 전체 전개에 힘을 실어 준다. 동력이 된다. 그리고 루머와 만들어 낸 사건 발단이자 동력은 의외 지점에서 반전에 가까운 새로운 사실을 끌어 들인다. 이 과정에서 죽음이 등장하고 초현실적인 실체와 마주하게 된다. 여기까진 기존 공포 영화 작법이다. 사실 따로 특별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는 흐름이다. 하지만 암전은 기묘한 지점에서 비틀기를 한다. 변주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뻔한 공포 영화 작법을 장치적으로 활용하진 않는다. 우리가 공포 장르에서 뻔하다고 느낀 지점 뒤에서 꼭 한 가지씩을 더 숨겨 둔다. 이 지점이 러닝타임이 흐를수록 스릴러 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무섭지만 긴장감이 유발된다.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감정의 팽팽함이 꽤 단단하게 끌어 당겨진다. 그래서 무서우면서도 손에 땀을 쥐게 만들고, 손에 땀이 쥐어질 정도로 무섭고 서늘하다. 일종의 깜짝쇼가 아니라 누군가 목덜미를 쓰다듬는 공포와 스릴러의 연속이다.
 
영화 '암전' 스틸. 사진/TCO(주)더콘텐츠온
 
암전은 형식 자체가 스토리가 된다. 주요 인물은 두 사람이다. 먼저 미정은 공포 단편 영화 연출로 각종 영화제에서 큰 상을 받은 주목 받는 신인 감독이다. 장편 데뷔를 앞두고 시나리오를 준비 중이지만 좀처럼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영화사 압박은 날이 갈수록 심하다. 미정은 애간장이 탄다. 무언가 색다른 소재를 잡아내야 한다. 단편 영화 연출 시절 자신의 연출부였던 후배와 함께 술을 마시며 신세 한탄이다. 그러다 후배의 입을 통해 루머를 듣는다. 몇 해 전 부천영화제에서 상영 도중 일부 관객이 심장 마비로 사망했단 공포 영화. ‘귀신이 만들었다는 공포 영화.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암전이다. 하지만 단서가 없다. 그저 연출자가 대전대학교 영화학과 출신이란 점뿐.
 
무작정 찾아간 대학에서 미정은 몇 가지 단서를 잡는다. 그리고 그 단서를 바탕으로 부천영화제에서 근무하던 선배 도움(?)을 받아 ‘암전’을 손에 넣는다. 하지만 영화 전체가 아닌 클립(영상 일부분)이다. 그는 자신이 활동하는 인터넷 공포 영화 카페에 글을 올린다. 마침내 암전 연출자 재현(진선규)과 연락이 닿는다. 하지만 재현은 암전자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두려워한다. 직접 만난 재현은 정상이 아니었다. 미정은 더욱 더 호기심을 자극 받는다. 누구도 본 적 없는 공포 영화를 만들어 내겠단 미정의 욕구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마주한 실체는 충격을 넘어선 공포이고 공포를 넘어선 현실이 된다.
 
영화 '암전' 스틸. 사진/TCO(주)더콘텐츠온
 
암전은 일종의 액자식 구성이다. 미정이란 주인공이 등장하지만 암전을 만들어 낸 재현 역시 주인공이다. 영화 제목 암전도 이 영화 제목이지만 영화 속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미정이 현실이고 재현이 환상처럼 느껴진다. 물론 두 사람 모두 실체다. 관객들은 영화를 감상하는 동안 미정의 호기심을 따라 이동하는 감정 속에서 재현의 욕망을 들여다 보게 된다. 그 욕망 자체가 사실은 미정의 그것과 맞닿아 있었다. 두 사람은 영화를 경계로 현실과 판타지 속에서 허우적대며 무엇이 실체이고 무엇이 환상이며 또 무엇이 그 경계를 나누는 것인지를 쫓는다.
 
그 경계의 실체는 미정의 후배가 말한 단 한 줄이다. ‘귀신이 만든 영화. 공포 영화는 본질적으로 란 질문을 끊임 없이 만들어 낸다. ‘공포가 시작 됐고, ‘그 공포가 지금 주인공을 괴롭히며 관객들이 공포를 느끼는지를 묻는다. 하지만 암전은 조금 다르다. ‘무엇 때문에란 질문이 앞선다. ‘암전이란 영화 속 영화 때문에 재현의 현실이 망가진 이유가 궁금해 진다. 과연 무엇 때문일까. 단순하게 귀신이 만든 영화때문일까. 귀신은 무엇 때문에 재현을 대신해서 영화를 만든 것일까. 과연 그 영화는 재현이 아닌 귀신이 만든 것일까. 이 모든 의문의 근원인 무엇 때문에는 관객을 몰입시키고 영화 속 진짜 주인공 미정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그 자극은 이미 재현이 처음 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암전이란 영화를 만들어 냈고, 결국 일상이 파멸되는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미정이 호기심을 느끼는 암전에 대한 공포가 그에겐 현실이다.
 
영화 '암전' 스틸. 사진/TCO(주)더콘텐츠온
 
이 과장 자체가 의외로 힘을 갖고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점은 간단하다. 인물들의 개인 서사에 힘을 주지 않았다. 국내 영화계에선 선호하는 방식은 아니다. 인과관계와 개연성 측면에서 이 방식은 상당히 위험하다. 불친절하게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암전은 그런 위험성을 최소화시켰다. 개연성 자체를 누르는 대신 영화 속 영화 암전에 대한 호기심에 방점을 찍는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미정이 전체 흐름을 끌고 가는 주인공이 아닌 영화 속 영화 암전을 만든 재현이 주인공인 셈이다. 미정은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고 따라가는 화자의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몰입감이 의외로 강력하다. 인물들의 개인 서사를 축약시켰지만 개연성이란 측면이 크게 대두되지 않는 이유다.
 
미정을 연기한 서예지는 특유의 발성과 표정 연기로 연기 자체에 한계점이 뚜렷한 배우였다. 무표정한 듯한 표정 연기와 중저음 보이스톤 자체가 여성 배우로선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하지만 암전을 통해 보여진 그의 연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암전과 같은 색채의 스토리에서 서예지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란 표현이 딱 들어 맞았다. 그의 건조한 표정과 불안한 듯한 몸 연기는 암전속 미정 그대로였다.
 
영화 '암전' 스틸. 사진/TCO(주)더콘텐츠온
 
진선규는 기존 필모그래피와는 다른 느낌이다. 처음부터 혼란스럽고 두려움투성이다. 강도에 방점을 찍은 듯 하지만 의외로 옅다. 이미 그는 전작들에서 웬만해선 비교 불가 쎈 캐릭터들을 소화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순도 면에서 전작들을 능가한다. 그의 혼란스러움이 암전속 불안함의 실체처럼 다가온다. 그는 암전의 주인공이고 또 서술자다.
 
무섭단 표현은 암전에겐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하지만 암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쭈뼛하게 곤두선 관객들의 긴장감을 조용히 쓰다듬는다. 그 실체가 누군지는 이 영화 속에 오롯이 담겨 있다. 개봉은 오는 15일.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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