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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욱 변호사의 블록체인 법률이슈 진단)암호화폐로 급여지급, 합법일까? 불법일까?
2019-08-20 06:00:00 2019-08-20 06:00:00
정재욱 법무법인 주원 파트너 변호사
암호화폐 시장 침체나 블록체인 기술의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암호화폐 거래소가 등장하면서 누구나 쉽게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을 사고 팔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규제 공백과 정치권의 무관심 속에서 암호화폐와 관련한 사기, 유사수신, 다단계 등 많은 범죄도 발생하고 있지만, 암호화폐를 이용한 해외 송금과 결제, 대출 등 여러 혁신 서비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암호화폐 매매가 간편해지고 그 활용도 점차 높아지면서 암호화폐를 급여로 지급하는 기업도 생겼다. 특히 글로벌 기업의 경우 암호화폐로 직원들에게 급여를 지급하면, 별도 환전이나 외환신고 등의 과정을 생략할 수 있어(이렇게 생략하는 것이 합법인지는 차치하더라도) 이같은 수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해외 매체들에 다르면 암호화폐로 급여를 지급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고, 페이스북도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은 아니나 리브라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직원들에 대해서 해당 암호화폐로 급여를 지급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를 국가 차원에서 제도화하는 경우도 있는데, 뉴질랜드 국세청은 근로계약에서 정해진 급여를 암호화폐(거래소에서 법정화폐로 바로 교환할 수 있는 암호화폐 한정)로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 세금관리법 개정안을 발표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를 두고 뉴질랜드가 세계 최초로 암호화폐 급여 지급을 합법화했다고 평을 하는 경우도 있다. 뉴질랜드가 세계 최초로 합법화한 것이 맞는지, 다른 모든 국가에서는 암호화폐 급여 지급을 불법으로 보고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국내에서 암호화폐로 급여를 지급하는 일은 불법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
 
"근로기준법 위반 여지 있어"
 
근로자가 근로를 제공한 대가로 지급받는 임금은 (1)"통화"로 (2)"직접" 근로자에게 (3)"전액"을 지급해야 하며 (4)"법령 또는 단체협약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 한해 임금의 일부를 공제(세금과 4대 보험료)할 수 있다(근로기준법 제43조 제1항). 이를 임금지급의 4대 원칙이라고도 하는데, 암호화폐 급여지급과 관련해 문제되는 것은 통화지급의 원칙이다. 즉 임금은 원칙적으로 통화로 지급해야 하며 법령이나 단체협약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만 통화 이외의 것(상품권이나 상품, 기타 현물 급여 등)으로 지급할 수 있을 뿐이다. 이를 위반하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근로기준법 제109조). 
 
암호화폐가 통화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 되는데, 만약 암호화폐가 통화로 인정된다면 위와 같은 근로기준법 위반 문제는 발생하지 않게 된다. 암호화폐의 법적 성격에 대해 명확히 정리하고 있는 법령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법원에서도 비트코인에 대해 그 재산적 가치만 인정했을 뿐 법적 성격에 대해 명확히 정리한 것은 아니어서(대법원 2018.5.30. 선고 2018도3619 판결) 추후 해석 내지 법제화 과정에서 암호화폐가 화폐 내지 통화로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현재 가상통화(암호화폐)를 법정화폐로 취급하지 않고 있어 실제 규제당국(고용노동부 등)이 규제를 하거나 법 집행을 할 경우 이를 통화로 취급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암호화폐로 임금을 지급하면 근로기준법 위반 문제가 현실화될 수 있다. 근로자가 암호화폐로 임금을 지급받는 것에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사용자는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위와 같은 규정은 본인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다만 피해자(근로자)의 명시적인 의사와 다르게 공소를 제기할 수 없으므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근로자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처벌불원서 등을 제출하면 실제 처벌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경조금·장려금·위로금 등은 가능"
 
통화지급 원칙의 대상이 되는 것은 임금에 국한된다. 여기서 임금이란 사용자가 근로의 대가로 지급되는 금품을 말한다(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5호). 그 형식과 명칭은 불문하므로 근로자에게 계속적·정기적으로 지급되고 그 지급에 관해 단체협약, 취업규칙 등에 의해 사용자에게 지급의무가 지워져 있다면 모두 임금에 포함될 수 있다(대법원 1999.9.3. 선고 98다34393 판결). 예컨대 같은 명칭의 가족수당이라고 하더라도 가족 수에 관계없이 전 근로자에게 일률적으로 지급하면 임금에 해당하고, 가족이 있는 경우에 한해 가족 수에 따라 차등 지급하면 복리후생적 성격의 기타 금품에 해당한다. 
 
하지만 근로제공과 무관하게 지급되는 것, 예컨대 (1)경조금, 장려금, 위로금 등 의례적, 임의적이거나 호의적, 은혜적인 의미에서 지급되는 것 (2)학자금 등 근로자의 복리후생을 위한 시설이나 비용으로 지급하는 것 (3)판공비, 출장비 등 실비변상적으로 지급하는 것 등은 임금에 해당하지 않아 이를 암호화폐로 지급한다고 해서 근로기준법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정리하면 암호화폐로 급여를 지급하는 것이 합법인지, 불법인지는 그 개별 수당의 성격과 지급 방식, 단체협약 등 규정 내용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원론적으로는 암호화폐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위법하고, 복리후생적 성격의 금품을 임의적이고 재량적으로 지급하는 것은 현행법상으로도 가능해 보인다. 다만 세부적으로 급여 지급체계를 어떻게 설계하고 구체적으로 계약서나 규정에 그 내용을 명시할 것인지, 경영진의 의사결정이나 이사회 결의 등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면밀히 검토해 관련 법령 위반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재욱 변호사는 국내 대형로펌 중 하나인 법무법인 세종(SHIN&KIM)을 거쳐 현재 법무법인(유한) 주원의 파트너 변호사로 재직하고 있다. 주원 IT/블록체인 태스크포스(TF) 팀장을 맡으며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핀테크, 해외송금, 국내외 투자 및 관련 기업형사 사건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아울러 서울지방변호사회 법제이사를 거쳐 현재 대한변호사협회 상임이사(교육이사)로 활동하고 있고, 대한변호사협회 IT블록체인 특별위원회 부위원장, 사단법인 블록체인법학회 발기인 및 학술이사, 한국블록체인협회 자문위원 등으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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