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지난 4월 도시재생산업박람회를 찾은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유독 한 부스에 관심을 보였다. 그 부스에서는 한 청년이 버섯을 요리해 박람회장을 온통 버섯냄새로 뒤덮었다. 김 장관이 이 부스에 주목한 이유는 이 버섯들이 구도심 반지하 ‘빈집’에서 만든 버섯이기 때문이다.
빈집은 이제 사회적문제로 자리잡았다. 인천의 대표적인 구도심인 미추홀구도 예외는 아니다. 조사기준에 따라 다르지만, 1200채를 육박하며, 늘어나는 속도도 빠르다. 외지인 소유, 주민 고령화, 청년층 부재, 우범지대 증가, 도시미관 파괴 등 빈집은 지역사회를 죽이는 암세포와 같다.
최환(34) 빈집은행 대표는 사회적기업 최고로환한미소를 운영하며 유독 빈집 문제에 몰두하고 있다. 빈집은행이란 이름도 그가 직접 특허청에 상표권까지 신청했다. 그에게 빈집은 어떤 의미며, 어떤 활용이 가능한지 <뉴스토마토>가 만났다.
최환 빈집은행 대표가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 빈집은행에서 직접 키운 버섯을 들고 있다. 사진/박용준기자
처음 창업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에 있는 인하대에서 의류디자인을 전공했다. 입학 당시만 해도 별 생각 없이 명품 패션 디자이너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들어와보니 현실이 너무 달랐다. 부모님한테서 물려받을 돈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도 결혼 전까지 집을 못 살 거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파트를 사서 가족을 꾸리는 삶을 꿈꿨는데 그게 안된다니 취직생각이 사라지고 이럴 거면 창업을 해서 아파트 살 만큼 돈을 열심히 벌어보자로 바뀌었다.
처음엔 당시 아파트 가격에 맞춰 무작정 3억원만 벌려고 했다. 제대로 된 아이템도 없이 앱도 개발하고 이것 저것하다 잘 안 됐다. 심지어 제물포스마트타운에서 창업교육을 들었는데 꼴찌를 하기도 했다. 세상에 저를 알아주는 사람은 없고, 일은 제 뜻대로 안 되던 외로운 시절이었다.
처음 주목받은 건 폐현수막으로 만든 구두였다.
인도로 해외봉사활동을 가면서 전공을 살려 학교에 버려진 현수막을 주워 에코백을 만들었다. 그냥 저는 멋있으려고 한 건데 반응이 너무 좋았다. 그 계기로 폐현수막으로 가방도 옷도 구두도 만들었다. 제 마음대로 해보고 싶어 회사이름도 최고의환한미소로 그 때 바꿨다.
제 브랜드를 갖고 패션쇼를 하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미추홀구청 대강당을 빌리고 과 후배들에게 자선 패션쇼라고 불러서 모델로 세웠다. 그날 세상에 별일이 없었는지 저에 대한 기사가 많이 나고 포탈사이트 메인화면에 제 얼굴이 떴다. 그 후로 패션쇼 의뢰가 많이 들어오고 폐현수막으로 인조가죽을 만드는 특허도 냈다.
어쩌다 폐현수막에서 빈집으로 아이템이 바뀌었나.
폐현수막 아이템을 전국에서 불러주는데 유독 인천에선 찬밥신세였다. 서울시에선 정작 서울기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받았다. 그러한 과정을 겪으며 로컬이란 것이 중요하고 지역에 있는 사람들과 상호 잘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으면 기업도 크기 힘들구나라는 걸 처음 배우게 됐다.
조금 유명해지긴했지만 매출이 어마어마하게 늘진 않았다. 1년에 6000만원 정도 벌어선 직원들 돈 주기도 민망했다. 그래서 ’버는 걸 늘릴 수 없으면, 쓰는 거라도 줄이자’ 생각했는데 직원들이 다들 월세로 매달 수십만원을 내는 걸 보고 화가 났다. 주변을 돌아다니다 보니까 빈집들이 눈에 보였고, 빈집들을 수리해서 내가 월세를 안 내면 되지 않겠는가 단순하게 거기서부터 시작을 하게 됐다.
빈집은행 프로젝트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작한건가.
혼자서 조사도 해보고 하면서 빈집은행을 한국에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빈집은행 상표권부터 신청했다. 빈집 집주인을 찾아가 만나서 “우리가 수리비용을 부담할테니 그만큼 월세를 깍아달라”고 제안했더니 3~5년을 빌려줬다. 재개발되면 군소리말고 나가라는 전제조건 외에는 뭘해도 좋다고 했다. 그렇게 5채를 빌려 우리끼리 살기도하고 리모델링 수업도 하면서 틀을 만들어갔다.
실내건축 면허도 갖게 되자 마침 타이밍 맞게 미추홀구나 고용노동부 이런 곳에서 관심을 가져주며 제안을 해줬고, 현재는 LH에서 매입형 빌라를 16채, 저희가 자산화한 빈집이 4채, 처음에 빌린 빈집이 1채 있다. 빈집에서 살려면 일단 자격증이 필요하다 생각했고 도배자격증, 방수자격증을 가졌다. 집수리 영역에 들어가니 입찰도 따게 되고 실적이 쌓이면서 삶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시공하다 보니까 기술이 점점 늘어가고 올해 집수리 300채를 하게 됐다.
빈집을 수리한 후 거주도 가능할텐데 왜 버섯일까.
LH에서 반지하를 줬는데 주변 청년들이 모두 반지하에 살고싶어하지 않았다. 심지어 공짜여도 말이다. 서울과 달리 인천은 집값 자체가 싸다보니 돈 더 내고 좋은 원룸이나 오피스텔을 간다. LH가 준 매입형빌라에 폐지 줍는 어르신들이 많았다. 당장 반지하에 청년들은 살기 싫어하는 상황에서 어르신들이 버섯을 키우면 폐지 줍는 것보다는 낫겠다 생각했다.
우연히 한 농민과 대화하다가 버섯 배지가 자라기에 반지하의 습도와 온도가 적합하다고 생각해 집수리로 번 돈에 보조금을 보태 버섯농장 16곳을 갖췄다. 사실 버섯말고도 미꾸라지, 엽채류 등 여러가지를 시도했는데 버섯이 제일 알맞았다.
도시 한복판 반지하에서 버섯농사, 어떤 성과를 거뒀나.
미추홀구에서 신청을 대신 해줘 지역형 일자리로 16명과 함께 버섯농장에서 일했다. 지금도 주민 중 일부는 협동조합을 만들어 자체적으로 일하고 있다. ‘인천 송이향 표고버섯’이란 이름으로 판매되는데 생산 기준으로 한 달에 800kg 정도 된다. 행정안전부에서 행정서비스 공동생산 우수사례로 사회혁신 분야 대상을 받기도 했다.
문제는 오프라인 판로 확보다. 인근 장터, 음식점 등을 찾기도하고 잘 팔릴 때도 있지만, 중국산 버섯과의 가격싸움이나 들쑥날쑥한 재고 관리는 쉬운 일이 아니다. 양질의 배지 공급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보니 속 썩는 일도 꽤 많다. 지속 가능한 사업으로 만들려면 2차 상품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
지금은 사회주택에 관심을 갖고 있다.
집수리 과정에 청년들이 참여해서 주거를 해결하는 사회주택 모델을 찾고 있다. 저희가 빈집을 살 수 있었던 것도 집값이 싼 인천이라 가능한 일이다. 서울과는 사회주택 모델이 다르다. 서울은 20%만 임대료를 싸게 줘도 가능하지만 인천은 그렇지 않다. 사회주택에 대한 제도 기반도 없는 상태라 인천형 사회주택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서울처럼 한 건물에 앵커시설을 넣는 형태말고 인천에는 마을 곳곳에 앵커 시설과 커뮤니티 시설을 배치하는 형태로 사회주택을 만들어야 한다. 여기 지역이 구도심이지만 근처에 대학도 많고 수봉공원과 가깝다. 지역의 브랜드 가치는 충분하기 때문에 사회주택으로 정주성을 올리고 콘텐츠 있는 골목상권을 만들고자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희도 집값 올리는 애들로 귀결될 수 있다.
도시재생 측면에서도 중요한 문제다. 리모델링형으로 4세대 정도가 사는 사회주택 모델을 만들려고 한다. 수입으로 주변에 일자리도 만들 수 있다. 태양열과 전기자전거를 이용하면 이동성이 생겨 대학생들도 다닐 거리가 된다. 집 주변에 공원이 있어 주거환경도 좋다.
결국 빈집에 매달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도시가 잘 돌아갈 수 있게끔 역할을 하고 싶어 마을관리기업도 준비 중이다. 결국 공공 디벨로퍼가 되고 싶다. 제가 이 도시에서 할 수 있는게 빈집 밖에 없었다. 저희가 존재해서 사회가 아름답게 돌아가려면 가치있는 일을 하려고 하는데, 빈집은 저와 같은 청년들에겐 기회다.
빈집이 마을의 가장 큰 문제점이었는데 막상 주민들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청년의 힘으로 다음달부터 요가 프로그램도 진행하면서 빈집은행을 창업공간뿐만 아니라 주민공동시설로 하려고한다. 서울은 단기간에 가시적인 효과가 나지만 지역은 스며들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반발이 심하다. 그래도 청년들이 다니니 밥집도 세탁소도 좋아한다. 이 마을이니까 저희에게 기회를 준다 생각하고 열심히 하려고 한다.
최환 빈집은행 대표가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 빈집은행에서 집수리 시범을 보이고 있다. 사진/빈집은행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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