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자신을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라
입력 : 2019-09-03 06:00:00 수정 : 2019-09-03 06:00:00
어떤 사람에게는 세상이 너무 쉽고 어떤 사람에게는 세상이 너무 어렵다. 요즘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을 둘러싼 논란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고등학생이 2주간의 인턴십으로 의학논문의 제1저자가 됐다. 명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경력이 적지 않은 사람도 논문 한 편을 제대로 쓰려면 최소 6개월이 걸린다. 보수 정당들의 지나친 정치공세에 힘을 실어 줄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불공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이번 사건을 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땀을 아무리 흘리고 발버둥을 친들 흙수저는 금수저를 따라잡을 수 없다"거나 "희망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대와 고려대, 부산대 등에서 집회가 실시된 이유도 우리 사회의 이 같은 부당함에 절망하고 분노해서 일거다.
 
이 같은 현상은 비단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프랑스는 우리처럼 고위급 자녀들의 교육 특혜로 사회가 시끌시끌해질 정도의 스캔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18~34세)은 세상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낀다. 2016년 12월 세비뽀프(Cevipof·시앙스포 연구소)의 안 뮉셀(Anne Muxel) 교수는 "세대 무엇인가(Generation What?)"라는 조사를 통해 젊은이들의 생각을 알아보았다. 그 결과를 르 피가로 에뛰디앙(Le Figaro Etudiant·학생 피가로)이 발표한 결과를 보면 프랑스 젊은이들은 세상에 대한 불신과 회의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은 자기 스스로를 "희생당한 세대"라거나 "길을 잃은 세대"로 규정하고 있다. 그들은 "모든 게 썩었다. 정치인들, 언론, 교육제도, 어느 것 하나 썩지 않은 게 없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99%의 젊은이가 생각하기에 정치는 부패했고, 66%가 보기에는 모든 게 부패했다. 90%의 젊은이는 주요 정치인들과 언론을 전혀 신뢰하지 않고 있다. 68%는 교육제도가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87%는 프랑스 교육이 직업을 구하는데 유용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사회적 분노를 집회를 통해 표출하고 구체화하려 한다. 응답자의 62%가 저항운동에 참여할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젊은이들의 75%는 지금의 경제 위기가 그들의 미래에 큰 충격을 줄 것으로 보고 있고, 50%는 그들의 미래가 부모 세대보다 더 고통스러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젊은이들 중 65%는 그들의 능력에 비해 보수가 적다고 응답했다. 뮉셀 교수는 르 몽드(Le Monde)와의 인터뷰에서 "더욱 심각한 것은 젊은이들이 프랑스에서 그들의 능력에 맞는 일을 찾아 사회에 유용한 역할을 함으로써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프랑스 젊은이들은 이 같은 암울한 현실 앞에 자포자기하고만 있는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종교에 의지하려는 젊은이들이 부쩍 늘고 있다. 가톨릭, 개신교, 이슬람, 불교, 유대교 등 다양한 종교를 찾아 의지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가톨릭 신문 라 크루와(La croix)의 의뢰로 오피니언 웨이(Opinion way)가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이 같은 현상이 드러난다. 과거에는 34%의 젊은이들이 종교를 믿고 의지했지만 지금은 53%까지 늘었다. 여러 종교 중 프랑스 젊은이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종교는 가톨릭이다. 응답자 중 40%는 가톨릭을, 4%는 이슬람을, 3%는 개신교를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탈리 베까르(Nathalie Becquart) 수녀에 따르면 젊은이들 중 40%는 기도를 위해, 30%는 명상을 위해 종교를 중요히 여기고, 25%는 순례길을 찾은 경험이 있다. 놀라운 것은 무신론자들조차 기도를 일상의 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신을 믿지 않는 젊은이들 중 25%가 기도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참모였던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다. 그는 <언제나 당신이 옳다>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프랑스의 위대한 천재 철학자 파스칼의 내기를 실천하라. 파스칼은 증거는 없지만 신을 믿는 쪽으로 내기를 하라고 제안했다. 이 내기는 잃을 것이 없다.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신을 믿었다고 벌을 받지 않을 것이고, 반대로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신을 공경한 대가로 상을 받을 것이다. 권력층은 현재의 환경, 윤리, 정치, 경제 분야의 과제를 정면으로 해결할 의지가 전혀 없다. 다른 사람에게 아무 것도 기대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믿어라."
 
'조국 정국'에 휘말려 양 극단으로 나뉘어 싸우는 한국인들에게 아탈리 방식의 행동을 제안하고 싶다. "기대할 것 하나 없는 정치권 싸움에 한국인들이여 왜 두 패로 나뉘어 그렇게 소모전을 벌이는가. 싸움을 멈춰라. 다른 사람들의 불확실한 행동에 관여하지 말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지배하는 쪽에 내기를 걸라. 그러면 최악의 경우가 생기더라도 잃을 것이 없다. 권력자들에게 더 이상 아무 것도 기대하지 마라. 어려운 세상을 그나마 쉽게 살아가려면 자기 자신을 믿는 게 최고의 무기다. 자기 자신을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라."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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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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