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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곤의 분석과 전망)추석, 조국 그리고 바둑 이야기
2019-09-16 06:00:00 2019-09-16 06:00:00
추석 민심 잡기, 차례상 민심, 민족의 대이동. 모두 옛날만 못한지 오래됐다. 가족, 친지가 모이는 명절만큼 휴식을 취하는 연휴의 의미가 커졌고 정치 현안 같이 골치 아픈 이야긴 피하는 것이 매너로 자리잡기도 했다.
 
그래도 올해는 좀 달랐다. 2, 30대 남성들이 주로 활동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이번 추석에 결혼, 취직 등 곤란한 질문을 피할 수 있는 '꿀팁'이라며 "어르신들 모였을 때 '조국이 결국 임명됐네요'로 대화를 시작한다"는 문장이 제시됐다.
 
그만큼 조국 법무부 장관 이슈는 흡인력이 높았다. 원래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물론 입시, 사모펀드, SNS, 집안일은 잘 모른다는 50대 남성의 모습 등 사람들의 관심을 자극할 만한 뇌관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재인정부에 대한 찬반, 한국 정치 지형상 진보와 보수 대립 등 기존 대립각뿐만 아니라 다층적 대화들이 추석 전부터 펼쳐졌었다.
 
이 모습은 두 가지 상징적 변화를 담고 있다. 첫째 현 정부가 직면한 도전의 변화다. 조국 장관 논란에선 여러 가지가 나타났다. 기존 진영 대립의 약화, 이명박·박근혜정부나 보수 진영과 상대 평가 효과의 약화, 현 정부 임기에 대한 본격적 평가의 시작, 진보 진영이 강조했던 도덕적 우위의 부메랑 효과, 언행불일치에 대한 염증, 좌우를 막론한 기득권의 실체에 대한 대중의 불만 등.
 
둘째는 보수 야당의 허약성이다. 실은 이 둘째는, 첫째를 뒤집어 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기존 진영 대립과 다른 전선에서 자유한국당은 반사이익을 얻지 못했다. 조국 장관을 반대하는 집회에선 한국당을 배제했다. 조 장관을 강하게 성토하는 사람들의 다수는 '나는 한국당을 지지하지만' 혹은 '나는 한국당은 더 싫지만'이라는 문구를 말머리에 꼭꼭 달았다. 조 장관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한국당 황교안 대표나 나경원 원내대표 등의 의혹을 제기하며 반격에 나서자 "그래서 뭐?" "그래. 모두 다 보내버리자"라고 응수했다.
 
물론 조 장관 지지자들은 시종일관 전통적 진영대립을 복원시켰다. 사태 초반부터 "여기서 밀리면 다 밀린다" "이 싸움은 조국의 싸움이 아니라 정권의 싸움이다"고 규정하며 지지자들을 불러 모았다.
 
전선 맞은 편 상대방으로 야당이 너무 허약하다는 느낌이 들자 '기레기' '이기적인 이십대' '개혁에 저항하는 검찰' 등을 소환해서 지지층 결집의 기제로 삼았다. 유시민, 김어준 등 여권 정치인보다 영향력은 강하지만 공적 책임으로 부터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사람들이 선두에 서서 독전했다. 그리고 이러한 기획은 성공했다. 조 장관의 반대자를 줄이진 못했지만 지지자는 늘렸다. 이런 흐름이 없었다면 청와대도 조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진 못했을 것이다.
 
야당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여권이 이런 흐름을 밀어붙이긴 어려웠을 것이다. 중도층, 20대, 수도권이 흔들리는 기미가 보였지만 이들이 무당파에 머물러있지 야당 지지로 넘어가진 않을 것이란 ‘믿음’은 굳건했다. 현재까지는 실제로 그렇다.
 
하지만 이러한 적대적 공생관계는 점점 허약해질 것이다. 조국의 얼굴을 보지 말고 이명박이나 박근혜 혹은 황교안이나 나경원 얼굴을 떠올리라는 외침은 점점 힘을 잃을 것이다. 묘수 혹은 무리수는 자주 쓸 수 없다. 바둑 격언에 '한 판에 묘수 세 번이면 진다'는 말이 있다.
 
얼핏 이해가 안 갈수도 있는 이야기다. 묘수가 한 번만 나와도 효과가 클 텐데 세 번이나 나오면 얼마나 대박인가? 하지만 묘수를 세 번이나 써야할 판이라면 곤궁하기 짝이 없는 바둑이란 이야기다. 평범하고 좋은 수 대신 묘수를 자꾸 찾다간 더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이게 어디 바둑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겠나?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taegonyo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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