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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가장 보통의 연애’, 경험을 경험하는 관람
누구나 경험하고 흔하게 경험했던 연애담 ‘공감’ 지수↑
영화 속 ‘보통’의 연애 코드 vs 실제 연애 경험 ‘특별함’
2019-09-27 00:00:00 2019-09-27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이 남자, 술 냄새가 진동을 한다. 술 없이는 맨 정신으로 버티기 힘들다. 그럴 만 하다. 청접장까지 돌리고 결혼식 날짜를 잡았다. 그런데 파혼을 했다. 이유는 뻔하다. 예비 신부가 바람을 피웠다. 불륜이나 다름 없다. 하지만 영화에선 바람을 피웠다로 부른다. 애써 예비 신부의 행동에 적당한 정당화를 부여하려고 애쓴다. 영화가 그런 게 아니다. 주인공 재훈(김래원)은 그저 바람이라고 부르고 싶을 뿐이다. 인사불성으로 술에 취해서 매일 같이 자니’ ‘대답 좀 해줘’ ‘보고 싶어라고 치근덕 대는 이유도 그래서다. 물론 나중에는 ‘XX이라고 육두문자로 마무리를 한다. 당연히 다음 날 아침 숙취에 헛구역질을 하면서도 일어나서 기계적으로 하는 행동은 휴대폰 확인이다. 예비 신부의 답을 확인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전날 밤 꼴불견 행각에 대한 반성이다. 머리를 싸매고 땅을 치면서 후회를 해도 소용없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그의 흐트러진 정신처럼 집안도 엉망진창이다. 매일 밤 술에 취해 자신을 떠나간 예비 신부에 대한 매달림의 흔적은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는 옥수수 한 봉지가 대신할 뿐이다. 이미 냉장고에는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을 정도로 옥수수가 그득하다. 출처 불명의 고양이, 때로는 비둘기 한 마리가 숙취로 깨어난 아침의 재훈을 반길 뿐이다. 화들짝 놀라지만 사실 진짜 재훈을 놀라게 하는 건 이미 공개한 전 날밤 만취 상태의 꼴불견 행각일 뿐이다.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속 주인공 재훈은 지금 이렇다. 술독에 빠져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다. 미치겠다. 이미 예비 신부 수정은 떠났다. 그럼에도 미련이 남는다. 여자는 이별을 하면 남자의 모든 것을 가져가지만, 남자는 이별을 하면 자신의 모든 것을 이별한 상대에게 준다고 하지 않나. 잊지 못하겠다. 이 남자, 정말 지질하다. 하지만 지질한 게 아니다. 현실적이다. 남자 관객이라면 누구나 재훈의 만취 행각과 다음 날 숙취 속 후회의 한 탄을 한 번쯤은 경험해 봤으리라. 회사 동료 병철(강기영)은 그런 재훈의 뒷 끝 이별 행각을 조롱하고 놀린다. 친구로서 또 동료로서의 딱 그 수준이다. 까불거리는 모습이 밉지 않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딱 그 정도의 현실 친구다.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스틸. 사진/NEW
 
두 사람이 다니는 광고회사의 사장은 재훈의 대학 시절 선배 관수(정웅인)가 대표다. 어딘지 좀 모르게 덜렁거린다. 부하 직원들에게도 권위적인 상사는 아니다. 하지만 딱 꼰대 스타일의 그 정도 직장 상사다. 휴일에 전직원들을 끌고 등산을 가자는 모습에서 우리는 무릎을 탁 칠 만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당신의 직장 상사 중에 꼭 있을 법한 그런 상사다. 물론 이건 아니다. 관수, 아내에게 맞고 사는 한 없이 지질한 고개 숙인 남자다. 이 회사에는 관수 외에도 남자 친구를 두고 있단 노총각 직장 동료도 있다. 성적 정체성의 문제점을 드러낸 것은 아니다. 관수에게도 이 직장 동료에게도 하다 못해 병철에게도. 이 직장 속 동료들은 루머와 소문에 자신들의 모습이 재단된 인물들이다. 물론 이게 그들의 삶과 행실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 조차 귀엽고 애교로 봐 줄만 하다. 우리 모두가 겪고 또 들어보고 때로는 맞장구 치며 누군가를 규정하던 행동들이다. 그런 이들의 일상에 선영(공효진)이 들어온다. 이 여자, 한 마디로 대차다. 팀장인 재훈의 직속 부하 직원이 됐다. 상사로서 반말로 인사를 전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고운 법 인가. 사장도 있고 자신의 직속 상사까지 있는 자리에서 웃으면서 같이 반말을 한다. 물론 이내 농담이라며 분위기를 전환시킨다. 보통 내기가 아니다. 뭔가 있는 여자다.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스틸. 사진/NEW
 
다시 하루가 시작된다. 재훈은 여전하다. 만취 상태에서 또 헤어진 예비신부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다. 그런데 오늘은 아니다. 선영에게 전화를 했다. 그것도 무려 두 시간이나 통화를 했다. 미치겠다. 회사 부하 직원이다.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 일까. 별다른 을 탈 이유도 없는 사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선영과 무슨 대화를 했을까. 그것도 두 시간이나. 이제 잃어버린 두 시간의 비밀을 찾아야 한다.
 
가장 보통의 연애는 영화로 봐야 하지만 우리가 가장 흔히 겪고 또 경험하는 일상이다. 관람이라고 하지만 관음의 느낌까지 받게 한다. 야릇한 상상이 아니다. 다른 누군가의 연애 라이프를 지켜 보는 것은 묘한 상상력과 함께 민망함을 전해준다. 이건 누구에게나 있었던 경험이다. 그걸 통해서 고칠 것은 고치고 받아 드릴 것은 받아 드리자는 주의가 아니다. 그저 제목 그대로다. ‘가장 보통의 연애가 무엇 일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보통이다. 정확하게 적정선을 유지하면서 보통을 만들어가는 것은 왜 그렇게 어렵고 어려운 것일까.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스틸. 사진/NEW
 
우선 이 영화 속 주변 환경은 보통이다. 3040세대 직장인이라면 반드시 한 번쯤은 봤고, 또 경험한 그들이다. 어린 여자 친구를 사귀는 것에 주접 부심을 떠는 직장 남자 동료, 컴퓨터 메신저로 동료들의 뒷담화를 즐기는 사람들. 우리들의 삶 속에서 보통의 범주에 들어가는 군상들이다. 반면 그 보통을 격멸하는 선영은 특별함이다. 입사 첫날 회식에서 바람을 피우고 이별을 택한 남자 친구는 오히려 뻔뻔하게 꽃다발과 반지를 들고 회식 장소로 찾아와 프러포즈를 한다. 자신의 바람에 선영이 맞바람으로 대응하자 걸레란 단어로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시킨다. 정당화가 아닌 책임 전가다. 이런 상황은 이 영화 속에서 아이러니한 반대 급부로 연이어 등장하고 터진다.
 
선영의 상황이 보통의 개념에서 해석될 수 없는 특별함의 그것이라면, 재훈은 우리가 경험해 온 진짜 보통의 그것일 뿐이다.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하지만 재훈에게 위로를 건 내는 주변은 없다. 그건 보통이기에 그렇다. 대수롭지 않고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보통의 그것이다. 그 생채기가 자신의 그것이 아니기에 보통아무것도아니게 된다. 그래서 그의 주변은 재훈의 그것을 놀리고 놀리며 술자리 안주로 대신한다. 그리고 재훈은 술로 생채기를 소독한다. 매일매일 술 한 잔에 의지해 속내를 드러내고 그 드러난 속내가 결과적으로 선영의 특별함과 주파수와 파동을 맞춰가는 과정이 시간이 지날수록 이어지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이해하는 과정의 흐름이기에 피식 웃음이 터지게 된다.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스틸. 사진/NEW
 
사랑에 상처 받은 남자라면, 사랑에 상처 받은 여자라면. ‘가장 보통의 연애가 꿈꿔질 만하다. 그건 마음 가는 대로 숨김 없이 서로에게 솔직한 가장 보통의 주파수를 맞추면 된다. 그 방법은, 이 영화 속에 재훈과 선영의 마지막 만남에 오롯이 담겨 있다. 보통을 찾아가는 과정이 이 영화와 같다면 지금의 이별도 지금의 상처도 다음을 위한 특별함이다. 기대해도 좋을 보통의 연애가 주변 어딘가에 있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개봉은 10 2.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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