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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조커’, 태어나고 만들어진 슬픈 악마의 연대기
DC코믹스 빌런 ‘조커’ 일대기, 가장 완벽한 악 아닌 불안한 자아 ‘초점’
비극적 삶 살아온 무명 코미디언 ‘아서 플렉’→‘혼돈의 악마’ 발전 이유
2019-09-30 00:00:00 2019-09-30 07:58:47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영화의 핵심 스포일러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주요 시퀀스에 대한 장면 설명이 많이 포함돼 있는 기사 입니다. 
 
악마는 태어나는 걸까. 만들어지는 걸까. 태어나기도 하지만 만들어 지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잘 모르겠다. 전 세계 영화 시장을 지배하는 코믹스 스토리는 이제 그 자체로 스토리이고, 콘텐츠로 부르게 됐다. 여기서 코믹스는 마블 DC로 양분되는 세계관이다. 미숙한 판단이자 질문일 수도 있겠다. 양대 코믹스를 통틀어 가장 매력적이면서도 완벽하며 선과 악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 인물을 딱 하나 꼽자면 어떤 캐릭터를 들 수 있을까. 정답은 없다. 하지만 가장 정답에 가까운 캐릭터는 있다. DC코믹스 세계관 최악의 범죄자이자 최고의 미스터리한 인물. 배트맨의 숙적, 바로 조커.
 
 
 
DC코믹스 원작 속에서 조커의 기원은 다양하다. 물리적 충격에 따른 태생을 거론하기도 한다.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시리즈에 등장한 잭 니콜슨의 조커. 화학약품에 빠진 뒤 기괴한 외모로 변한 태생적 악인이다. ‘누구도 모른다는 기원도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시리즈 속 고 히스 레저의 조커. 양쪽으로 흉측하게 찢어진 입가의 상처, 그 상처의 이유를 설명하는 여러 에피소드. “왜 그렇게 심각해”(why so serious?)란 대사는 혼돈의 악를 그린 놀란 감독의 세계관 속 조커의 정체성이었다. 사실 어떤 이유를 들더라도 이 인물의 기원이자 근원은 미스터리 그 자체다. 예술적 기질과 무정부주의적 혼돈의 파괴자. 하나로 규정될 수 없는 내면의 깊이. ‘조커는 그렇게 현실 세계에서도 견고함, 불규칙성이 드러났다. 아이러니한 점은 인간 내면의 불규칙적 반응 구조에 토드 필립스 감독이 관심을 보였단 점이다. 미국식 막장 코미디 행오버시리즈를 연출한 이 감독은 조커란 규정될 수 없는 인물의 내면을 코미디로 바라봤다. 감정적 소비 형태의 장르가 아니다. 서양식 카드 트럼프에서 조커는 선과 악의 이중성을 담보로 하지만 무소불위 권력을 지닌 힘을 갖고 있다. ‘조커의 존재가 영화적 세계관에서 가진 힘이다. 하지만 토드 필립스 감독은 ‘Joker’, 농담을 하는 사람으로 바라본다. ‘광대’, 희극의 장르 속에서 비극의 감정을 끌어낸 인물, 찰리 채플린이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것도 어쩌면 조커란 인물의 규정될 수 없는 내면의 혼돈이 인생을 멀리서 바라보며희극의 꿈을 꿨지만 가까운 지금의 현실이 비극일 수 밖에 없는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이란 인물, 그리고 시대적 혼돈을 담은 1970~80년대 미국 사회의 격화된 계급 갈등 속 대중들의 응집된 울분에서 해답을 찾은 듯 싶었다. 영화 조커의 키워드가 코미디로 불린 것은 토드 필립스란 괴물 감독의 탄생과 함께 호아킨 피닉스란 배우가 만들어 낸 영화적 세계관과 현실의 경계선을 붕괴시킨 캐릭터 발화의 불씨이자 방아쇠가 된 셈이다.
 
영화 '조커'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DC확장 유니버스와는 별개의 세계관이다. 그럼에도 배경은 고담시, 아서 플렉은 고단하다. 웃는 것이 힘들다. 그럼에도 웃는다. 광대 분장을 하면서 거울 속 자신을 본다. 입을 찢어 미소를 만든다. 눈에선 눈물이 흐른다.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 자아의 아서 플렉이다. 혼돈의 불씨는 이미 시작부터 드러난다.
 
아서 플렉은 성장하는 것이 고통스럽다. 살아 있지만 죽은 것 같은 엄마 페니 플렉과 함께 살고 있다. 미국 사회의 개념에서 성인 아서 플렉은 아직 성장하지 못한 성인이다. 가슴을 드러내고 목욕을 하는 엄마의 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돕는다. 엄마 역시 그런 아들이 안쓰럽다. 이들 모자, 이상한 관계다. 앞서 아서는 시궁창 같은 현실의 도피처로 엄마를 선택하고 버티고 있었다. 그에겐 집이 필요하다. 오롯이 자신이 쉴 수 있는 집이 필요하다. 엄마와 살고 있는 집이 있다. 그 집이 아서의 집이 될 수도 있다. 성장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아서에게 집은 엄마가 될 수도 있다. 광대로서의 삶 속에서의 불안하고 유약하고 연약한 아서의 모습과 달리 집에서의 아서는 다르다. 집에선 엄마 앞에선 한 없이 작고 약한 아들 아서가 아니다. 아픈 엄마를 돌볼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존재할 수 있다. 아서에게 집은, 엄마는 그런 존재가 된다.
 
영화 '조커'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아서 플렉에게 세상은 두렵고 무서운 곳이다. 광대로 살아가는 그는 엄마에게 해피로 불린다. 언제나 웃고 언제나 행복했으면 하는 엄마의 바람이다. 그의 웃음과 행복으로 세상 모두를 웃고 행복하게 만들라는 엄마의 소원이다. 하지만 현실은 불행일 뿐이다. 광대 분장으로 거리에서 홍보를 하지만 돌아온 건 불량배들의 뭇매다.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비웃는다. 고용된 회사에선 흠씬 두들겨 맞고 돌아온 아서를 오히려 나무란다. 아서는 그저 관심을 받고 싶을 뿐이다. 아서는 따뜻한 시선이 필요했을 뿐이다.
 
아서 플렉에겐 아버지가 없다. 누군지도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알 필요도 없었다. 그의 곁에는 든든한 엄마가 있었다. 언제나 TV에 나오는 토마스 웨인을 바라보며 이 불행한 삶을 구원해 줄 구원자라고 부른다. 아서 역시 그럴 것이라고 믿고 있는다. 믿어주는 것이다. 엄마의 바람이기에 그렇다는 바람을 스스로에게 주문한다. 엄마는 매일 같이 토마스 웨인에게 편지를 보낸다. 엄마는 젊은 시절 웨인 가문에서 일을 했던 가정부였다. 친절한 부자 토마스 웨인은 죽어가는 고담시를 살리겠다며 시장 출마를 선언한다. 아서의 엄마에게 토마스 웨인은 구세주다.
 
영화 '조커'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아서 플렉은 광대로서의 삶을 사랑했다. 누군가를 웃길 수 있는 그 일이 행복했다. 행복하다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억지로 웃는 그의 기괴한 웃음은 처연하고 슬프게 들릴 뿐이다. 자신의 조크에 웃음을 터트리는 아이의 모습에 행복함이 다가온다. 하지만 그의 엄마는 아서를 나무란다. 자신의 아이를 괴롭힌다고 나무란다. 아서는 웃음을 터트린다. 그가 건낸 쪽지에는 웃음을 참을 수 없는 병에 걸렸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아서의 웃음은 자신의 감정을 감추기 위한 최소한의 폭력이었다. 그 폭력은 밖이 아닌 아서의 내면을 파괴하는 폭력이었다.
 
아서 플렉에겐 꿈이 있었다. 코미디언이 되는 게 꿈이다. 광대로서의 삶에 만족하지만 궁극적으로 웃음의 삶을 살 수 있는 코미디언이 되고 싶었다. 엄마와 함께 머레이 프랭클린 쇼를 보는 게 낙이었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진짜 웃음을 터트릴 수 있었다. 꿈을 꿔 본다. 머레이 프랭클린 쇼에 등장해 그와 멋들어지게 악수를 하고 쇼를 하는 상상을 한다. 행복하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온 그는 주변을 살핀다. 그저 현실이다. 현실에선 작은 클럽의 삼류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일하는 자신을 보게 된다. 동료의 스탠드업 코미디 쇼에 대중들이 웃는다. 하지만 그 웃음이 그치면 아서는 웃음을 터트린다. 현실의 웃음과 아서의 웃음은 다르다. 아서에게 현실은 다르게 흐르고 있단 증거다.
 
영화 '조커'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아서 플렉은 광대로서의 삶을 사랑했지만 결국 해고를 당한다. 광대 분장을 하고 찾아간 어린이 병원에서 권총을 떨어트린다. 동네 불량배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돌아온 날 동료가 자신에게 건 낸 총이다. 그건 배려였다. 착하고 순진한 아서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였다. 하지만 그 배려가 자신의 행복 중 하나를 빼앗게 됐다. 회사에선 이를 문제 삼아 아서를 해고한다. 광대 분장을 한 채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한 여성을 희롱하는 남자들을 바라보며 다시 웃음을 터트린다. 그 웃음은 행복도 불행도 아니다. 울부짖음에 가깝다. 남자들은 자신들을 비웃는 거이라 확신한다. 아서는 그들에게 다시 흠씬 두들겨 맞는다. 하지만 그에겐 총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울부짖음은 거대한 굉음을 내며 폭발하게 된다. 우연이었다. 사실 우연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아서는 그저 자신을 지키려고 했다. 고담시 모두에게 웃음을 주고 행복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멸시와 불행뿐이었다. 그런데 그 폭발의 방아쇠를 당긴 뒤 아서는 조금씩 무언가를 깨닫기 시작했다.
 
아서 플렉은 방아쇠를 이미 당겨 버렸다. 하지만 왜 그 방아쇠를 지금껏 당기지 못하고 괴로워했는지 모를 정도로 후회를 하는 듯 했다. 그는 자신감을 찾아가고 있었다. 매번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 유일한 인물 사회복지사 데보라 케인에게도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결과적으로 그는 방아쇠를 당겨 버렸고, 데보라에게 말한다. “당신은 내 얘기를 듣지 않는다라고.
 
영화 '조커'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아서 플렉은 계속해서 세상에게 부탁했다.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그 대가로 나는 세상인 당신에게 웃음을 주겠다고. 물론 버티고 버텼다. 세상이 자신에게 응답할 때까지. 쏟아지는 멸시와 폭력은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있던 유일한 단 한 가지. 꿈마저 빼앗아 갔다. 세상은 그를 받아 들이지 않았다. 아서 플렉은 자신의 조크 공책에 내면을 옮겨 왔다. “내 삶이 내 죽음보다 가취있기를 바라며라고. 의도적으로 잘못 쓴 단어인지, 아니면 아서 내면에선 세상을 잘못보고 있었단 증거인지 모르겠다. 이 문구 그대로, 그는 버티고 버티면서 자신의 인생이 비극이지만, 이 비극의 삶이 희극이 되기를 희망했다. 광대, 코미디언, 웃음, 엄마, 토마스 웨인, 아버지, 권총. 모든 것은 그가 죽을 힘을 다해 버티고 있단 증거를 말해 주고 있었다. 같은 아파트에 살던 미혼모 소피도 그에겐 아주 잠시 쉼터였다. 하지만 뒤 바뀐 아서의 무엇을 느낀 소피마저 그를 밀어 낸다. 이제 아서는 돌아갈 곳이 없다. 현실 자체가 아서를 한 없이 코너로 몰아 세웠고, 코너에 몰린 아서를 사정 없이 두들겼다. 이젠 쓰러져 겨우 숨만 붙은 아서에게 죽으라고 악담을 퍼붓는다. 그때서야 아서는 모든 것을 환기시키고 세상을 바라보는 진짜 눈을 뜨게 된다. 고통은 없다. 오히려 진실을 보게 됐다. “내 인생, 비극인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코미디였다라고. 이제 아서 플렉은 사라졌다. ‘해피도 없다. 녹색 머리에 기괴한 광대 분장을 한 조커만이 남게 됐다.
 
영화 '조커'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악마는 태어나는 걸까. 아니면 만들어 지는 걸까. 영화 조커에선 태어나기도 하고,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대답 한다. 사실 태어났기에 악마가 된 건지, 태어났지만 만들어 진 것인지는 정확하게 드러나진 않는다. 분명한 것은 비극적 인생을 살고 있는 한 남자는 자신의 인생을 희극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언제나 자신의 입을 억지로 찢어가며 웃는다. 웃고 싶은 게 아니라 사실은 살고 싶었기에 웃었다. 그의 기괴한 웃음은 역설적으로 세상을 향해 쏟아낸 악다구니였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왜 외면을 하는가’ ‘최소한 한 번 쯤은 인정을 하고 바라봐 주는 것, 그것 자체가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라고. 그래서 바라봐 달라고, 한 번만 쳐다 봐 달라고 쏟아내고 쏟아낸 웃음의 기괴함이었다. 그 웃음을 쏟아내고 쏟아내면 인생은 희극이 될 줄 알았다. 그래서 광대를 자처했다. 찰리 채플린의 명언이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고. 영화 조커속 인생은 가까이서 봐도 멀리서 봐도 희극은 없다. 그렇다고 비극도 아니다. 이 영화 속 아서 플렉은 이제 스스로의 희비극 속에서 자신을 가둬 버렸다. 악마는 그렇게 태어났고, 또 만들어져 버렸다.
 
영화 '조커'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DC코믹스 세계관 속 조커는 가장 완벽한 악의 개념으로 규정돼 왔다. 토드 필립스 감독과 호아킨 피닉스, 두 사람이 그 악을 현실로 끌어 내 버렸다. 미국 사회에서 이 영화에 대한 우려와 걱정을 하는 이유를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수작, 걸작, 레전드, 문제작. 영화 조커에겐 전부 무의미한 수식어다. 영화 조커는 그 자체로 조커. 이 영화는 관객의 심리와 감정을 구겨버리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극단적으로 불안정한 한 인간의 내면을 체험하는 순간이 이 영화의 러닝타임이다. 개봉은 10 2. 15세 관람가.
 
P.S-1 무조건 아이맥스 관람을 추천한다. 아이맥스에 최적화된 액션도 화면도 전혀 아니다. 액션은 전무하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하지만 호아킨 피닉스가 만든 조커의 연기 디테일을 느끼려면 아이맥스 외에는 다른 포맷은 존재하지 않는다.
 
P.S-2 코믹스 원작이기에 기존 마블 혹은 DC 스타일의 영화를 기대한다면 완벽한 착각이다. 오히려 아트하우스(예술영화) 스타일이 강하다. 실제 조커의 제작비도 할리우드에선 독립영화 수준인 5500만 달러(한화 약 660)에 불과하참고로 마블의 어벤져스: 엔드게임공식 제작비는 조커 7배 수준인 3 5600만 달러(한화 약 4272)이다.
 
P.S-3. 국내에선 15세 관람가다. 19금 장면은 없다. 피가 튀는 잔인함은 딱 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진짜 우려되는 점은 아서 플렉의 불안한 내면을 그린 여러 장면이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보는 자신의 내면 조차 뒤엉키는 소름끼치는 경험을 반드시 하게 될 것이다. 되도록 19세 이상 성인관객들의 관람을 추천한다. 혹은 정신과적 치료를 받고 있는 분들이라면 되도록 관람을 자제하길 당부한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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