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주년' ECM, 음악의 동시대성을 묻다
만프레드 아이허의 세계적 음반사…'24시간 음악 흐르는 설치물'
18일부터 내년 2월29일 현대카드 스토리지서 전시
입력 : 2019-10-18 17:09:48 수정 : 2019-10-18 17:09:48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50년 역사의 세계적인 음반사는 여전히 시대와 호흡하고 있다. 
 
ECM(Edition of Contemporary Music). 1969년 만프레드 아이허(76)가 독일 뮌헨에 세운 음반사. 키스 자렛, 얀 가바렉, 칙 코리아, 팬 메시니 같은 이들이 이 음반사를 거쳐 세계적 뮤지션 반열에 올랐다.
 
아이허는 음반사 자체가 하나의 음악 장르로 인식될 수 있도록 한 인물. '소리의 절대 미학'을 추구하는 그는 실내악 녹음시스템을 모든 앨범에 적용시켰다. 개별 연주자와 가수를 고려한 이 세밀한 맞춤 레코딩은 마이크별 위치와 악기 진동 여운, 녹음실 공기까지 필수 요소로 고려한다. 
 
고유의 로고가 찍힌 레코드 디자인은 ECM 음악을 예술화. 재즈부터 클래식, 뉴에이지, 월드뮤직 등 지난 50년 동시대를 대표한 음반 1600장은 '한편의 종합 예술작품(gesamtkunstwerk)'로 여겨진다. 세계 동시대 음악의 기여로 아이허는 2002년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클래식 음악 부분 수상, 영국 브라이튼대 명예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만프레드 아이허. 사진/현대카드
 
18일부터 서울 용산구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ECM의 반세기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 'RE:ECM'이 열린다. 음반 녹음 시 사용했던 아카이브 자료와 설치, 드로잉, 인포그래픽, 프로젝트 등 초대작가 6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전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참여 기획자들은 "단순히 ECM의 소리를 시각적으로 바꾼 것 만은 아니다"라며 "ECM과 함께 해온 청취자의 행위, 반응, 오감에 착안하고 이를 창의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소통하고자 했다"고 전시 의의를 설명했다.
 
이번 행사의 전시 총괄은 정선(37) 프로듀서가 맡았다. 그는 마에스트로 정명훈(66)의 아들. 그는 "요즘 같은 세상에 독립적인 레코드 레이블을 이끌어간다는 건 어려운 일"이라며 "50년 간 음반사를 운영해 온 아이머의 헌신과 열정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선. 사진/현대카드
 
이번 전시는 앨범 커버 등 이미지를 크게 출력해 걸던 기존의 단편적 시각체험을 벗어난다. 또 음악과 음반에 직접 관계된 자료보다는 음반사 내면의 생각과 철학, 감성과 감각을 공유한다. 
 
이를테면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건 영국 작가 샘 윈스턴의 드로잉 작품. 존케이지의 음반 'As It Is' 수록곡들을 하나씩 듣고 청자이자 작가로서 반응을 그림으로 기록한 것이다. 악기, 배경 노이즈 등 존 케이지 음악의 각 요소별 특징을 모두 다른 형태의 드로잉으로 표현했다.
 
이날 윈스턴은 "존 케이지는 쉽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한다"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몰입해간 내러티브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했다. 또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 음악은 단시간 소비된다"며 "하지만 ECM 음악은 일상 모든 경험에 들어갈 수 있는 깊은 초대장처럼 느껴진다"고도 설명했다.
 
미국 작가 릭 마이어는 ECM이 사용했던 초창기 로고 타입 밑에 레이블 역사를 숫자로 기록한 인포그래픽 작품을 걸었다. 미디어 아티스트 라스 울리히는 ECM 음악을 기반으로 한 인터렉티브 3D 그래픽 작품을 선보인다. ECM 음악 주파수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이 알고리즘은 수평 물결처럼 번지는 그림을 그려낸다.
 
울리히는 "ECM의 음악이 시간 흐름에 따라 진화, 발전해온 움직임을 표현하고자 했다"며 "그래픽 작품들은 음악 앨범에 담긴 커버색과 같은 색"이라고 설명했다.
 
ECM 레코드 창립 50주년 전시 'RE:ECM'. 사진/현대카드
 
탁구대에서 영감받은 사운드 설치물은 전시장 하이라이트. 독일 사운드 디자이너이자 작곡가 마티스 니치케가 뮤지션 키스 자렛과 만든 작품이다. 레코딩 도중 탁구를 하던 아이허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탁구대처럼 두 파트로 나뉜 공간에선 음악이 바뀔 때마다 조명이 점멸한다. ECM 제작 1600장의 음반이 1380시간 동안 흘러간다. 
 
18일 오후 12시 ECM 최초 음반 'Free at last'를 시작으로 발매순, 트랙순에 따라 재생된다. 폐관날인 내년 2월29일까지 24시간 내내 음악은 끊어지지 않는다. 
 
ECM 녹음실 장면. 사진/현대카드
 
50년 전부터 현재까지, 전시는 ECM과 음악의 동시대성을 집요하게 묻는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공간은 뭘까요. 지나온 시간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죠. ECM이 동시대성을 지닐 수 있는 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해석해왔기 때문입니다."
 
정선 프로듀서와 초대 작가들이 본지 기자의 물음에 대답하던 순간. 탁구대 형상 조형물 전등이 깜박였다. 새로 재생된 ECM 레코드가 음악의 동시대성에 대답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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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익도

자유롭게 방랑하는 공간. 문화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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