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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천우희를 ‘버티고’로 이끈 단 한 마디의 ‘힘’
“시나리오 마지막 대사 한 마디 마음 움직여…해야겠다 싶었다”
“이 영화 통해 내가 받은 위로, 관객 들도 무언가 받아가길 바래”
2019-10-22 00:00:00 2019-10-22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영화 제목 때문은 아니다. 이 배우에겐 꼭 이 질문으로 첫 인사를 하고 싶었다. ‘잘 버티고 있느냐라고. 2014년 영화 한공주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의 수상에 동료 선배 여배우들은 자신의 영광처럼 함께 눈물 흘리고 기뻐해줬다. 무려 15년을 버텼다. 2004년 영화 신부수업에서 단역으로 출발했다. 우리에게 가장 강렬한 이미지를 알린 것은 영화 써니에서의 등장이었다. ‘본드걸이란 닉네임으로 이 여배우를 소개해 왔다. 여배우에겐 실례가 될 수도 있는 표현이지만 몽골리안스타일의 강한 이미지는 그를 쌘 캐릭터전문으로 끌어가 버렸다. 이후의 필모그래피만 봐도 그렇다. 항상 누구라도 쉽게 선택하기 힘든 배역들은 모두 이 여배우에게 돌아갔다. ‘한공주도 마찬가지였다. 어둡고 깊은 내면을 소유하고, 또 몸도 힘들기만 한 어려운 배역은 온통 이 여배우를 향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건 이 여배우의 강한 이미지보단 출중한 연기력 때문아니었을까. ‘한공주우상은 연출한 이수진 감독은 두 작품을 선보이며 천우희 아니면 못했을 작품이다고 추켜세웠을까. 물론 우리가 본 두 작품은 천우희를 위한 천우희만의 천우희를 위한 영화였다. 그래서 영화 버티고를 선보이며 다시 물었다. ‘힘들었지만 잘 버텨온 것 같은가라고.
 
배우 천우희. 사진/나무엑터스
 
영화 개봉 며칠을 앞두고 오랜만에 만난 천우희다. 워낙 강하고 쌘 이미지로 충무로 쌘 캐전문 여배우란 닉네임을 붙어 있을 정도였지만 실제의 천우희는 곱디 고운 심성의 소유자다. 눈물도 많다. 그래서 이 여배우가 도대체 어떻게 그런 배역에서 카리스마를 넘어서 귀기를 뿜어낼 정도의 무언가를 발산하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물론 그도 그렇게만 소비되는 것에 지칠 때도 있었을 터.
 
사실 작품 때문이라고 하기 보단 슬럼프 비슷한 걸 겪었어요. ‘우상이 끝나고 정말 ‘1년 동안은 쉬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버티고시나리오를 보게 됐죠. 제가 안 해본 이야기였고, 또 끌리는 멜로였죠. 그런데 마음이 끌리는 건 딱 한 가지였어요. 영화 속 마지막 관우의 대사였어요.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라는 대사. 그 말이 꼭 저한테 해주는 말 같았어요. 이번 영화는 완성도 흥행 어떤 결과를 떠나서 그냥 해야겠단 의욕을 갖고 접근했어요.”
 
마지막 대사에 끌렸다. 하지만 영화 전체로 보면 너무도 현실적이면서도 또 반대로 너무도 판타지적인 면이 많았다. 한 없이 자신을 괴롭히고 힘들어 하는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일상은 고통스럽고 괴롭고 힘듦의 연속이다. 이런 모습에 공감을 할 관객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이런 모습에 도저히 감정 이입을 하기 힘든 관객도 있을 것이다. 천우희는 어떤 쪽이었을까.
 
배우 천우희. 사진/나무엑터스
 
전 당연히 연기를 해야 하니 전자 쪽이었죠. 영화 속 서영의 괴로움은 사실 괴로움이라기 보단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잖아요. 그리고 서영의 모든 선택이 그게 최선이었기 때문이라고 납득하고 접근했어요. 안 그러면 아무것도 맞지가 않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현실이에요. 사실 너무 답답했죠. 왜 이렇게 서영은 참고 또 자신을 뒤로 밀어두기만 할까. 그런데 우리 주변에 그런 분들 있잖아요. 뭐든지 잘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분도 있고.”
 
영화에서 그런 서영을 지탱하는 것은 연인 진수였다. 계약직 여직원 서영과 달리 진수는 잘생긴 외모에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완벽남이다. 회사의 모든 여직원이 선망하는 남자다. 이 남자와 서영의 비밀 연애는 달달하고 또 짜릿하다. 영화 첫 장면부터 두 사람의 화끈한 육체 관계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유를 모르게 슬프고 처량한 느낌이 강하다. 서영에게 진수는 어떤 존재로 천우희는 해석을 했을까.
 
그저 기댈 수 있는 한 남자였지 않았을까요. 반대로 진수에게도 서영은 기댈 수 있는 여자였고. 다른 사람과 잘 소통하지 못하는 서영은 유일하게 진수에게만 웃음을 띠잖아요. 자신의 가족에게도 소통을 거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가족이 가까운 존재라고 하지만 때론 그 가족에게 조차 말하지 못할 비밀이 있잖아요. 서영에게 가족, 즉 엄마는 그런 존재였죠. 제일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숨이 막힐 때 그 숨통을 티게 해 준 존재가 진수였죠.”
 
배우 천우희. 사진/나무엑터스
 
진수를 연기한 유태오는 국내에선 영화 레토로 급부상한 배우다. 최근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에서 판타지 캐릭터 뇌안탈을 연기하면서 남성미를 물씬 풍기기도 했다. 천우희와 유태오는 이번 영화에서 감정적으로 실제 연인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밀접한 교감을 나눈다. 함께 작품을 한 사이라고 보기엔 두 사람의 호흡이 미묘할 정도였다. 천우희는 크게 웃으며 유태오와의 인연을 전했다.
 
사실 태오 오빠와는 잘 알던 사이에요. 함께 작품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죠. 친한 것도 아니지만 안 친한 것도 아닌 사이?(웃음) 영화 시사회를 가고 뒷풀이 자리에서 처음 인사를 나눴어요. 너무 잘생기셨잖아요. 그래서 저도 인사를 하고 지냈고. 그렇게 이런 저런 뒷풀이 자리에서 꽤 자주 보게 됐죠. 첫 촬영이 키스신이었어요. ‘연기인데 뭐 어때라며 서로 웃으며 했어요. 하하하.”
 
유태오가 연기한 진수가 영화 속에서 천우희가 연기한 서영을 지탱하게 해 준 인물이라면 천우희가 누군가를 지탱하게 하기도 했다. 건물 외벽 로프공 관우다. 관우를 연기한 배우 정재광은 단편과 독립 영화에서만 주로 출연해 온 신인 중에 신인이다. 개인적으로 진수와의 호흡도 좋았지만 정재광이 연기한 관우와의 에피소드와 촬영 분량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
 
배우 천우희. 사진/나무엑터스
 
하하하. 갑자기 촬영 때 배우들끼리 했던 엉뚱한 상상이 떠올라서(웃음). 만약에 로프공 관우가 여자였다면 어땠을까. 저희끼리 촬영하면서 했던 얘기에요. 글쎄요. 마지막 장면에서 관우가 서영이 키스를 하지만 그게 사랑이었을까. 자신있게 대답은 못하겠어요. 서영이 수 많은 상처를 받고 그렇게 힘들어 할 때 서영의 손을 잡아 준 유일한 사람이 관우잖아요. 힘들 때 포기하지 말고 주변을 봐라. 도와줄 사람은 반드시 있다. 그런 메시지를 담은 인물이 관우라고 생각해요.”
 
다시 질문의 처음으로 돌아갔다. 영화에는 별 다른 대사도 없다. 러닝타임 거의 대부분이 배우들의 얼굴과 그 얼굴의 미묘한 감정으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 이야기에서 누군가는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누군가는 편안함을 느낄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위로를 받을 것이다. 천우희는 위로를 선택했다. 그리고 또 버텨야 한다. 그는 아직도 잘 버티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고 했다.
 
배우 천우희. 사진/나무엑터스
 
저희 직업이 언젠가는 떨어지는 걸 받아 들여야 하고. 잘 떨어지는 방법도 찾아가야죠. 물론 전 위로 올라가 본 적도 없으니 좀 더 올라가 보고는 싶어요(웃음). 전 개인적으로 어떤 위기가 오면 몸을 그냥 맡겨 버리는 편이에요. 휩쓸리면 휩쓸리는 대로. 그 힘듦 안에서 긍정적인 면도 찾고 희망도 찾고. 어떤 걸 찾든 나름의 가치는 다 있다고 봐요. 이번 영화에서 전 위로를 받았어요. 보시는 분들도 나름의 무언가를 찾아가시면 이 영화에 참여한 배우로서 너무 기쁠 것 같아요. 되도록이면 제가 느낀 위로를 받으시길 바라죠(웃음)”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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