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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청소도, 병원동행도, 해충방역도 해주는 ‘돌봄SOS’
올해 5개구 시범사업, 복지사각지대 맞춤형 ‘핀셋복지'
2019-10-31 06:00:00 2019-10-31 06:00:00
[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어머니, 동생과 연락이 끊긴 채 서울 강서구 발산1동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고진형(47)씨는 하지장애까지 갖고 있어 거동이 불편하다. 3년 전부터는 시력에도 문제가 생겨 앞이 보이지 않았다. 거동은커녕 외부와 관계까지 단절되면서 생업인 음악일은 끊기고 기초수급자로 생계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 장애인연금을 받는 형편이었다.
 
그러다보니 집안은 청소도 되지 않은 상태로 온갖 잡동사니와 쓰레기가 나뒹굴었고, 병원도 혼자 가지 못해 수차례 주민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주민센터에서도 생계급여를 줄 순 있어도 병원 동행이나 집안 청소는 소관 업무가 아니라 딱히 도울 방법이 없었다.
 
서울 강서구 발산1동 자택에서 고진형씨가 이재훈 돌봄SOS매니저와 상담하고 있다. 사진/박용준기자
 
다행히 강서구가 서울시의 돌봄SOS 사업의 시범사업에 참여하면서 이제 고씨는 돌봄SOS의 혜택을 받고 있다. 돌봄SOS의 일시재가서비스를 이용하면 일주일에 세 번 요양보호사가 고씨 집을 방문해 집을 청소·정리하고 아파트 분리수거일에 맞춰 쓰레기도 배출해준다. 이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해 1~2주에 한 번 고씨는 부축을 받아 이제 집에서 500m 거리에 있는 이대병원을 방문하며 서류 접수와 진료의 도움을 받는다.
 
다음달 백내장 수술을 받으면 고씨는 시각장애 판정으로 무난히 중증장애인 활동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동지원 서비스를 이용한 덕분에 고씨는 이제 조금씩 다시 바깥생활을 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고씨는 “눈이 나빠진 후로 도움을 받을 수 없어 세상에 저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덕분에 희망을 갖게 됐다”며 “수술을 받고 나면 조금씩 사람들도 만나면서 다시 음악일을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고씨의 수술 소식은 고씨를 담당하는 발산1동주민센터의 이재훈 돌봄SOS매니저에게도 희소식이다. 그간 도움을 주지도 못한 채 속만 상했던 이 매니저는 돌봄SOS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고씨를 떠올렸다. 이 매니저는 “고씨가 받게 될 백내장 수술비도 보건소의 의료비 지원사업과 연계해 본인 부담을 덜어줄 계획”이라며 “공무원이라 해도 막무가내로 도와줄 수 없어 안타까웠는데 당사자에게 도움이 됐다니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자택에서 김동석씨가 돌봄SOS 방역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박용준기자
 
마포구 아현동주민센터의 강지화 돌봄매니저도 누구보다 돌봄SOS를 손꼽아 기다렸다.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아현동이지만 재개발해제지역엔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이 어느 지역 못지않게 많았다. 돌봄SOS가 마포구에 시행된다는 소리를 듣고 강 매니저는 다른 매니저들과 함께 홀몸어르신 60가구에 일일이 전화를 돌리고 방문하며 불편사항과 연계할 서비스를 찾았다.
 
홀몸어르신들은 대부분 30년 이상 낙후된 주택에 살았고 바퀴벌레를 비롯한 각종 해충들은 삶의 질을 저해하는 불청객이었다. 김동석씨(84)의 집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집에서만 55년째 살고 있는 김씨는 지난해 8월 아내가 세상을 등진 이후 낡을 대로 낡은 집과 골목에 더 애착을 가졌다. 그러나 집 안팎 구분만 간신히 해주는 김씨 집은 대낮에도 성인남성 엄지만한 바퀴벌레나 귀뚜라미, 송충이가 다녀 김씨를 괴롭혔다.
 
지난 23일 김씨 집에 마포구장애인직업재활센터 소속 박상기 대리가 소독방역장비를 둘러메고 강 매니저와 함께 찾았다. 이미 한 차례 방문해 집 상태와 방역 필요한 곳을 확인한 박 대리는 하수구와 벽지, 문 틈새, 화장실 등 벌레가 다니기 쉬운 곳에 약품을 뿌리며 방역작업을 진행한 후 김씨에게 벌레 발생 시 대처요령을 알려줬다.
 
20분 남짓한 작업이고, 다른 사람 눈엔 별 거 아닐 수 있지만 김씨는 박 대리와 강 매니저에게 연신 고맙다고 인사했다. 김씨는 “사람들은 영구임대주택에 들어가라지만, 나한텐 이 낡은 집이 더 귀하다”며 “벌레 때문에 한밤중까지 고생했는데 와서 쫓아주니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 7월부터 돌봄이 필요한 시민들에게 맞춤형 8대 돌봄서비스를 지원하는 돌봄SOS센터를 성동·노원·은평·마포·강서구에서 시범 운영중이다. 현재는 노인과 장애인 중심으로, 2021년엔 25개 모든 자치구 모든 시민들로 확대한다.
 
각 동 주민센터에 1개 팀을 돌봄SOS센터로 운영하며 찾동(찾아가는 동주민센터)에 발굴된 돌봄 대상자에게 돌봄매니저 방문해 돌봄욕구를 파악 후 맞춤형 서비스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서비스 비용은 저소득층(수급자, 차상위) 전액 지원하고, 나머지는 자부담이다.
 
8대 서비스는 가정에 방문해 수발하는 일시재가, 단기간 시설에 지내는 단기시설, 외출활동을 동행하는 이동지원, 가정 내 간단한 수리와 보수를 맡는 주거편의, 식사를 배달하는 식사지원, 건강상담부터 투약 등을 돕는 건강지원, 안부나 안전을 확인하는 안부확인, 관련 제도나 서비스를 연계하는 정보제공이다.
 
9월까지 두 달여간 3983건이나 서비스를 제공할 정도로 현장에서 인기가 높다. 기초상담이나 단순안내인 정보제공을 제외하더라도 일시재가, 식사지원, 주거편의 등이 높은 인기를 얻고 있으며, 장애인이나 어르신 외에도 50대 중장년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대상이나 추가 서비스 등은 현장 수요에 따라 본 사업에 반영할 예정이다.
 
돌봄SOS는 무엇보다 장애판정이나 노인장기요양 등에 탈락했거나 대기 단계에 있어 기존 공적서비스 대상을 받지 못하던 사각지대에 높인 취약계층에 공적서비스를 행할 수 있다. 신청자 대부분이 돌봄SOS 이전에는 서비스 제공이 어려웠던 시민들이다.
 
또 찾동이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을 발굴하는데 초점을 맞췄다면, 돌봄SOS는 실질적으로 이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 현장 연계성이 높다.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등 종교기관이나 지역단체 등이 자발적으로 비슷한 서비스를 시행했지만, 이들은 비정기적이고 제공자 입장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둔다. 
 
이명란 발산1동 돌봄SOS센터장은 “아직 초기단계라 보완할 부분이 있지만 기존 복지사업들이 하지 못해 답답했던 부분을 수요자 필요에 맞게 해줄 수 있다”며 “찾동으로 사각지대를 찾고 돌봄SOS로 해결하는 체계가 갖춰지면 더 힘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자택에서 김동석씨가 돌봄SOS 방역작업을 마치고 배웅하고 있다. 사진/박용준기자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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