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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곤의 분석과 전망)김세연, 황교안 그리고 헤겔
2019-11-25 06:00:00 2019-11-25 08:24:30
김세연 의원의 불출마 선언과 ‘한국당 해체’ 주장은 여러모로 뜯어볼 구석이 많다. 그 내용을 놓고선 한국당 안팎에서 ‘맞는 말’이라면서 고개를 끄덕거리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지만 당내에선 ‘금수저의 투정’ ‘먹던 우물에 침뱉기’라는 격렬한 반발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내용을 떠나서 보면 오히려 허술한 면이 많이 보인다.
 
사실 과거 한국 정치권의 정풍 운동들은 사실 치밀한 기획들이 존재했다. 누군가가 먼저 강한 메시지를 내놓으면 2진, 3진의 호응이 뒤따랐다. 비판 대상인 기득권층이 반발하면 오히려 눈덩이는 굴러가면서 커졌다. 정풍 운동을 지지하는 칼럼 등 언론 보도가 뒤따랐고 대통령이나 당 지도부등 최상층은 ‘충정을 이해한다’며 힘을 실었다. 그렇게 질서가 바뀌곤 했다.
 
그런데 김세연의 외침에 대해선 그런 움직임이 뒤따르지 않았다. 황교안 대표는 “충정을 이해한다” “총선에서 결과가 안 좋으면 책임지겠다”고 반응했다. 그런데 이런 말은 메시지라고 볼 수 없다. 그냥 말로 남는, 말로 사라지는 말일 뿐이다.
 
하지만 김세연의 불출마 선언도 말로 남는, 말로 사라지는 말로 그칠 것 같진 않다. 일단 김세연은 매우 독특하고 다층적 면모를 지닌 인물이다.
 
한국당 의원 중에서 주민등록번호가 7로 시작하는 사람은 셋, 8로 시작하는 사람은 단 하나다. 1972년생인 김세연은 3선 의원으로 ‘소장파 중진’이라는 모순적 수식어의 소유자다.
 
선친인 김진재 전 의원은 재력가의 아들로 민정당에서 정치를 시작했지만 YS계와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부산 금정에서 5선의 경력을 쌓았다. 정치 말년엔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최측근으로 분류됐다.
 
장인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종사촌 형부인 한승수 전 총리다. 그런데 한 전 총리를 그냥 ‘친박’으로 분류하긴 어렵다. 강원도 춘천 출신인 한 전 총리는 노태우-김영삼-김대중-이명박 등 네 정부에서 연달아 장관급 이상의 자리를 지냈고 박근혜정부에선 공직을 맡지 않았다.
 
재력과 정치적 배경 양면에서 금수저인 김세연 의원 본인의 의정활동은 원조 소장파인 ‘남원정’이나 바른미래당 유승민 의원과 겹친다. 초선 의원 시절에는 김성식 의원이 주도한 민본21에서 활동했다. 재선 의원 때는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의 간사와 대표를 지냈고 지난 대선에서는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의 선대본부장을 맡았다.
 
구 민정계, 구 민주계, 이회창계, 원조 소장파, 유승민계 등 현재 한국 보수진영의 여러 갈래들을 체화하고 있는 사람이 김세연인 것. 복당파의 일원인 김세연을 황교안이 어쩔 수 없이 여의도연구원장으로 중용한 것도 이런 상징성과 맥락에서 봐야할 필요가 있다.
 
이런 김세연이기 때문에 김세연의 폭탄선언도 징후적이다.
 
다시 황교안으로 돌아가보자. 김세연의 선언으로부터 사흘이 지난 후 황교안 대표는 갑자기 단식에 돌입했다. 황교안의 단식이 김세연의 폭탄 선언에 대한 대답이라고 본다면, 김세연의 주장은 이제 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김세연은 한국당에 대해 “창조를 위해서는 먼저 파괴가 필요하다. 완전한 백지 상태에서 새로 시작해야 한다”면서 그 이유로 “비호감 정도가 변함없이 역대급 1위다. 감수성이 없다. 그러니 소통능력도 없다”고 진단했다.
 
모든 정치적 선언이나 주장은 자기충족적 예언의 성격을 띄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금 황교안의 단식은 김세연 선언의 논거를 강화하고 있으며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사전에 기획이나 계산된 것 같진 않지만 결과적으로 철저한 역할 분담이다. 헤겔이 말한 이성의 간지(List der Vernunft)를 바로 지금 한국 보수진영이 구현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taegonyo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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