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고 구하라씨 사건을 보고 나에게 '리벤지 포르노' 협박을 했던 옛 연인이 생각났다. 헤어지자고 하니 폭력을 휘두르고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동영상으로 협박을 했다. 죽고 싶었다. 6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악몽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리벤지 포르노 피해자 A씨)
최근 가수 구씨가 세상을 떠나고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 중 하나로 전 남자친구 최종범씨의 리벤지 포르노 시도가 지목되면서 해당 범죄 처벌 강화에 대한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최씨가 성관계 영상을 빌미로 구씨를 협박하고 그를 불안 속에 살도록 하는 2차 피해를 입혔음에도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난 사실이 환기되면서다.
5일 대법원 판결문 통합검색·열람시스템에 리벤지 포르노라는 키워드를 검색한 결과 지난해와 올해 관련 범죄에 대한 형량은 1, 2심 통틀어 평균 징역 3~4년 정도였다. 이들은 대부분 연인관계에서 상대방 동의 없이 촬영을 하고 이후 직접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메신저 등에 올려 피해를 확산한 혐의를 받았다.
다만 단지 동영상을 피해자에게 보내거나 동영상 존재 사실을 밝히며 협박한 경우에는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그쳤다. 실제로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는 10명 중 1명꼴에 불과하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6년간 불법촬영으로 재판을 받은 총 7446명 가운데 1심에서 자유형(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647명으로 8.7%에 그쳤다. 벌금형 선고가 4096명(55%)으로 가장 많았고 집행유예 2068명(27.8%)가 그 뒤를 이었다.
연인관계에서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하고 이를 유포한 혐의는 징역 5년 이하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사진/뉴시스
리벤지 포르노는 법률상의 정의는 따로 있지 않고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14조에 따라 처벌된다. 대법원 판례상 동영상을 피해자 본인에게만 보내는 것은 유포에 해당되지 않는다. 성관계를 촬영한 사람이 피해자이거나 적극적으로 촬영을 저지하는 등의 행동이 따르지 않았다면 피의자가 유포해도 성범죄 혐의는 받지 않는다. 최씨의 경우에도 1심은 몰래 촬영한 것이 아니며 유포하거나 제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법촬영을 무죄로 봤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관계자는 "동영상을 유포하지 않고 협박만 했을 경우에는 협박죄에 해당돼 형량이 낮게 나온다"면서 "재판부는 촬영을 인지하거나 거부하지 않으면 동의했다고 보고 약한 처벌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리벤지 포르노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현아 변호사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에 관한 연구’에서 "타인을 동의 없이 촬영하는 행위와 이를 유포하는 행위는 범죄의 위험성과 비난가능성 측면에서 상이하기 때문에, 촬영행위와 유포행위를 각 행위별로 조항을 구분해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유포 행위를 제한하지 않고 촬영물이 제3자에게 인식되게 하는 모든 행위를 처벌하도록 개정해 입법공백을 막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동영상을 무기로 피해자를 협박만 하는 경우에도 성범죄로 처벌받게 하는 등의 관련 법 개정안은 20대 국회에서도 여러 번 발의됐지만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법무부 측은 "법무부도 강화된 처벌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면서 "개인의 신원을 알아볼 수 있는 동영상을 유포하는 범죄는 징역형으로만 처벌하는 성폭법 개정안, 유포 관련 범죄수익을 환수하는 내용의 범죄수익처벌법은 발의돼 있기 때문에 국회 통과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연인관계에서 동영상을 촬영해 고 구하라씨에게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후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최종범씨. 사진/뉴시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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