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배우 박정민에게 2019년은 무지막지한 한 해였다. ‘사바하’로 첫 포문을 열었다. ‘타짜: 원 아이드 잭’으로 달려봤다. 그리고 ‘시동’으로 자신만의 진짜 색깔을 오랜만에 제대로 터트려 봤다. 여기에 촬영 중인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까지. 올 한해는 정말 ‘열일의 2019년’이었다. 현재 극장가에서 상영 중인 ‘시동’은 올해 선 보인 여러 영화 가운데 가장 박정민과 어울리고 또 가장 박정민스러운 모습이며, 그래서 가장 박정민이 제대로 놀아 본 재미있는 한 판처럼 다가왔다. 동명의 웹툰이 원작이다. 동네 3류 양아치 택일의 모습이 이 보다 더 어울릴 수 없을 정도로 박정민은 ‘택일’에게 빠져 들어 연기했다. 사실 연기를 했다기 보단 ‘연기를 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배역에 달려든 모습이었다. 그 역시 실제로 고교 시절 영화 속 택일처럼 반항기 가득하고 부모님 가슴에 대못 한 번 제대로 박은 적이 있었기에 딱히 연기라기 보단 자신의 경험을 녹여 낸 기억의 복귀 같은 작품이었던 것 같다. 반응도 좋다. 가볍게 보고 웃고 즐길만한 영화이지만, 분명히 얻고 갈 것도 많을 것 같은 영화 ‘시동’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박정민이다.
배우 박정민. 사진/NEW
영화 개봉을 며칠 앞두고 만났던 박정민이다. 올해만 벌써 세 번째 인터뷰였다. ‘너무 자주 만나는 것 같다’고 쑥스러워 하는 그는 올해 마지막이 이번 ‘시동’이란다. 이 영화는 사실 자신과 함께 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작품이라고. 제작사에서 ‘어떤 지 한 번 봐라’며 모니터링 개념으로 전달해 와 본인 역시 ‘모니터링’ 개념으로 읽었던 작품이란다. 그렇게 첫 인연이 지금까지 오게 됐다고.
“다 보진 못했지만 원작 웹툰을 이미 봤었기에 알고는 있었죠. 제작사에서도 ‘이거 영화로 만들 건데 어떤지 한 번 읽어 봐라’라고 시나리오를 건네 주셔서 정말 편안하게 읽었죠. 나중에는 제가 ‘택일’이 돼 있더라고요. 하하하. 우선 걱정이 됐죠. 원작의 방대한 인물들과 그 인물들 각각의 사연을 어떻게 다 집어 넣을까 싶었으니. 전달 받은 시나리오는 영화적으로 각색이 정말 잘 돼 있더라고요. 지킬 것은 지키고 쳐 낼 것은 쳐내고. 감독님의 고민이 많이 느껴져서 ‘같이 해도 되겠다’ 싶었죠.”
‘시동’의 핵심이자 포인트는 사실 박정민이 연기한 주인공 ‘택일’이 아니다. 원작 웹툰에서도 등장하는 기괴한 비주얼의 인기 캐릭터 ‘거석이형’이다. 영화에선 배우 마동석이 연기한다. 원작 속 비주얼을 그대로 끌어 온 듯한 싱크로율 100%의 모습이 압권이다. 영화 예고편에서도 등장한 바 있다. 예고편 공개와 함께 온라인에선 순식간에 화제를 모았다. 실제로 본 박정민의 느낌이 궁금했다.
배우 박정민. 사진/NEW
“정말 실제로 보면 흉물스러워요. 하하하. 근데 처음 선배님의 모습을 보고 ‘이 영화의 색깔과 톤이 어느 정도와 수준이구나’란 게 딱 나오더라고요(웃음). 사실 선배님도 되게 투덜거리셨는데, 내심 속으론 되게 만족하시던 모습이었어요. 뭐 다들 잘 아시겠지만 동석 선배가 정말 유쾌하세요. 현장에서 많이 의지도 됐고. 선배님이 저 비주얼로 저렇게 해주시는 데 ‘믿고 좀 나아가도 되겠다’ 싶었죠. 하하하.”
마동석과의 무지막지한(?) 연기로 웃음을 자주 만들어 낸 박정민이다. 하지만 사실 진짜 고민은 극중 배역의 나이가 아니었을까.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에 18세 고교생 연기를 해야 했다. 박정민은 정말 쑥스러운 듯 ‘그게 제일 고민이긴 했다’고 웃는다. 아마도 올해 이 작품이 자신의 고교생 연기 마지막이 될 것 같단다. 그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그 시절의 말투, 그리고 그 나이대의 문화, 여기에 요즘 십대의 트렌드까지 섭렵하느라 고생 아닌 고생도 했다고.
“제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이건 요즘 고교생들이 이해를 하고 납득을 해야 하잖아요. 그들만의 문화와 패턴을 알아야 하는데 ‘어떻하지’ 싶었죠. 실제로 그렇게 해봤는데 이게 오히려 더 이상한 거에요. 나이 든 사람이 어린 사람 연기하는 느낌 같은. 그래서 원작을 봤을 때의 느낌을 생각했죠. 어떤 ‘결핍’을 떠올렸어요. 그 시절에는 그러지 않았을까 싶어요. 뭘 해도 성에 안차는. 그냥 반항하고 싶은. 그 감정을 좀 끌어와 봤어요.”
배우 박정민. 사진/NEW
결핍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관객들의 눈에는 10대 반항아가 선보이는 일탈이다. 바른 생활 이미지가 강한 박정민이지만 영화에선 꽤 탈선의 모습을 많이 연기한 바 있다. 그의 고교 시절에도 그런 모습이 있었을까. 알려진 대로 그는 서울의 유명 명문대학에 다니다가 영화 연출 공부를 위해 과감하게 자퇴를 하고 한국종합예술학교에 진학했다. 이곳에서도 그는 또 한 번 화려한 변신을 했다.
“(웃음) 뭐 너무 많이 알려져서. 택일처럼 그렇게 대놓고 반항하진 못했어요. 반항도 정말 담이 커야 하는 거에요. 동의하시죠(웃음). 영화 감독 되겠다고 부모님과 트러블이 있기는 했었죠. 그래서 학교도 뛰쳐 나왔고. 하하하. 그때 한 번 부모님에게 좀 실망을 드린 것 같은데. 대못이라긴 뭐하지만. 사실 지금도 가끔씩은 ‘중고교 때 제대로 반항 좀 해볼 걸’이란 막연한 생각은 해봐요. 만약 그랬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배우가 돼 있었을까. 뭐 이런 황당한 생각에서 나온 발상이지만(웃음)”
지금은 배우로서 제대로 연기하고 제대로 좀 해보자 정도가 배우 박정민의 인생 목표가 됐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연출도 있고, 지금 운영 중인 책방도 잘 꾸려 나가는 것도 있다. 책은 기회가 되면 쓰겠지만 너무 고달픈 작업이라 당분간은 좀 놓고 싶다며 웃는다. 뭐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모르는 것 아니냐며 웃는다.
배우 박정민. 사진/NEW
“고두심 선생님이 저희 영화에 나오시잖아요. 저랑은 함께 하는 장면이 없어서 너무 아쉬웠죠. 현장에서 딱 한 번 뵈었어요. 선생님 연기는 진짜 ‘아우라’란 단어 조차 쓰기 죄송할 정도였어요. 첫 리딩 때부터 선생님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죠. 다들 그랬어요. 선생님이 ‘상필이 할머니’로 출연하신단 말에 모두가 왜? 왜? 왜?를 한 수십 번은 했으니깐(웃음) 감히 선생님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말은 못하겠어요. 다만 저도 이번에 선생님이 출연한다고 했을 때 미래의 후배들이 ‘왜’를 연발할 정도의 존재감을 가진 선배이자 배우가 되고 싶단 생각은 해보게 되네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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