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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프랑스 보수와 한국 보수
2019-12-24 06:00:00 2019-12-24 06:00:00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대한민국의 보수가 장외로 나가 연일 집회다. 인생 역전이란 말은 이런 때 쓰는가 보다. 유신시절 집회와 단식은 진보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반대다. 세월이 무상하다. 한국의 보수는 지난 50년간 기득권을 누려왔다. 그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한 채 불명예스럽게도 탄핵으로 잃은 정권을 벌써 되찾겠다고 연일 장외투쟁이다.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어 보인다. 
 
IT 강국을 외치는 한국이 정치인들의 소프트웨어는 너무 후지다. 집권 여당인 민주당도 썩 나을 건 없지만 제1야당인 한국당은 너무 구식이다. 한돌이 ‘쎈돌’을 물리치고 자율 주행차가 거리를 활보하는 시대에 그들은 60년대 자유당과 똑같은 정치를 하고 있다. 국회를 무력으로 점거하고 또 한판 난동을 피웠다. 패스트트랙 저지로 아수라장을 만든 지가 엊그제 같은데 또 야단이다. 품격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황교안 대표는 그야말로 몸부림이다. 삭발에 단식에, 이제는 수염을 기르고 마이크를 잡고 쉰 목소리로 “사생결단”을 외친다. 무엇을 위한 사생결단인가. 총선승리와 2022년 대선승리를 위해서인가. 틀려도 한참 틀렸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책임부터 사생결단으로 져야하지 않겠는가. 황 대표가 누구던가. 박 대통령 시절 총리가 아니었던가. 그렇담 정계에 나와 마이크를 잡기보다 연대 책임을 지고 자숙의 시간을 가지는 게 온당하지 않은가.
     
프랑스도 2017년 대선에서 보수당이 패했다. 대선 캠페인 시작 무렵 공화당 후보 프랑수아 피옹(Francois Fillon)의 권력남용 스캔들이 터졌고 이를 수습하지 못한 그들은 대패했다. 연이은 대선 참패로 공화당은 극렬히 흔들렸고 내홍은 깊었다. 공화당이 무너질 위기에 놓였다. 이때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며 은퇴 선언을 한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이 52세의 프랑수아 바루앙(Francois Baroin)이었다. 바루앙은 25년간의 정치인생을 마감하고 평당원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는 젊은 마크롱 대통령에게 프랑스의 노선을 바꾸고 성공하길 기원한다는 덕담을 건네고 정계를 떠났다. 그 후 2년 반 동안 트루아(Troyes)의 시장 직만 맡아 충실히 생활하며 자숙했다. 
 
그러나 마크롱 호는 출발한 지 반년 만에 노란조끼 운동이라는 풍랑을 만났고 프랑스는 위기에 빠졌다. 공화당은 재건설을 시도했지만 계속해서 삐걱거렸고 당 대표만도 두 번이나 바뀌었다. 지난 10월 새 대표로 크리스티앙 자코브(Christian Jacob)가 당선되면서 지도부는 전면 개편됐다. 이때 자코브 대표는 새로운 전략상 바루앙을 지도부의 멤버로 영입했다. 
 
정계로 복귀한 바루앙은 프랑스인들의 주목을 다시 받기 시작했고 언론은 그를 차기 주자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지난 16일 레 제코와 클래식 라디오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바루앙은 마크롱 대통령에 대적할 차기 대선주자로 프랑스인 29%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바루앙은 이 조사에서 4위에 불과하다. 1위는 전 환경부장관 니콜라 윌로(52%), 2위는 전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33%), 3위는 사회당의 현 외교부 장관 장-이브 르 드리앙(30%)이다. 극우 정당의 마린 르 펜은 5위(26%)다.  
 
바루앙이 이제 정계에 복귀한 상태니 여론조사의 추이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시사 주간지 렉스프레스(L'expresse)는 “어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바루앙이 엘리제에 갈 운명으로 보고 있다”고 전하며 사실상의 주자로 보도했다. 사실 일부 프랑스인들은 2017년 1월 공화당의 대선후보 피옹이 스캔들에 몰렸을 때 바루앙을 대체 후보로 보기도 했다. 측근들은 바루앙을 ‘방아쇠(gâchette)’라고 부른다. 또한 ‘외톨이 늑대(loup solitaire)’로 묘사한다. 외톨이 늑대는 과연 차기 대선에서 방아쇠를 당길 것인가. 아무튼 바루앙은 대중 앞에 사생활이 노출되는 것을 썩 내켜하지 않는다. 그는 사생활이 대중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정계복귀 이후 조금 달라졌다. 바루앙 부부는 전 보다 자주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대선을 염두에 두고 하는 행보가 아닌가 싶다.
 
결론적으로 두 보수 정치인의 행보는 천양지차다. 황 대표는 대중 앞에 선동가로 나서 문재인 정부를 심판하겠다고 사투를 벌이고, 바루앙은 마크롱 정부를 비난하기보다 자숙하면서 묵묵히 칼을 갈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양국 보수의 품격을 비교할 수 있다. 또한 정치문화의 차도 다시 한 번 느낀다. 정치 초년생을 차기 후보로 미는 우리 정치문화 말이다. 바루앙은 22살에 시장이 되었고, 15년간 하원의원, 3년간 상원의원을 지냈다. 그리고 정부 대변인, 내무부장관, 재경부장관 등을 두루 거치면서 25년간 정치 경험을 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갈고 닦는 중이다. 그러나 황 대표는 어떠한가. 삭발에 단식에, 선동에... 언제 갈고 닦을 시간이 있단 말인가. 우리 정치가 나아지려면 역량 있는 정치인들이 많아야 한다. 정치인들은 마이크를 잡고 장외투쟁을 하기보다 능력을 개발하고 아이디어 넘치는 정책을 개발해서 페어플레이를 하라. 이를 위해선 시민들이 나서서 선동 정치인들을 단호히 퇴출시켜라.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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