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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천문: 하늘에 묻는다’ 최민식, 그가 여백을 색칠하는 법
‘절친’ 한석규와 20년 만의 한 작품…”이 영화 아니라도 했을 것이다”
“세종과 장영실은 꿈꾸던 사람, 아이처럼 순수한 모습 좋게 봐주길”
2019-12-25 00:00:00 2019-12-25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막연하게 상상을 했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을 앞둔 세기말까지. 충무로는 단 한 명의 배우가 지배했다. 배우 한석규다. 당시 그는 그런 존재였다. 그리고 2000년대다. 그 바통을 이어 받은 배우는 다름 아닌 한석규의 대학 같은 과 1년 선배 최민식이다. 한국영화 역대 최고 흥행작 명량’(1761)의 기록은 사실 앞으로도 깨지기 힘들 수치다. 이 두 사람이 한 작품에 나온다면 어떤 느낌일까. 있기는 있었다. 1999년 강제규 감독의 쉬리에서다. ‘쉬리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시작으로 불린다. 기념비적인 작품에 두 사람의 이름이 아로새겨져 있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충무로에선 사실상 꿈의 프로젝트로 불릴 법한 조합이다. 최민식과 한석규는 화려하면서도 소박하다. 또 소박하면서도 강인하다. 강인하면서도 부드럽다. 두 사람의 조합은 완벽하고 또 완벽함을 논할 때 거론되면 안성맞춤이다.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서 이들은 만났다. 20년의 시간이 걸렸다. 먼저 형님최민식을 통해 20년만의 소감을 전해 들었다.
 
배우 최민식.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개봉 일을 며칠 남겨두고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최민식이다. 언제나 인상 좋은 옆집 동네 아저씨의 얼굴로 인사를 건네온다. 작품 속에서 워낙 강하고 쎈 역할만 도 맡아 온 배우 이미지 탓에 그의 실제 모습을 잘 모르는 대중들은 오해를 할 법도 했다. 배우가 아닌 인간 최민식일 때의 모습은 작품 속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다. 그래서 천문의 장영실과 비슷하면서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고 느껴지는 것도 그럴 법했다.
 
하하하, 저 많이 만나보셔서 아시잖아요(웃음). 쎈 작품을 몇 편 해서 그렇지. 올해는 봉오동전투에서 홍범도 장군 역으로 잠깐 나온 거 외에는 천문이 첫 작품이에요. 워낙 좋은 시나리오였고, 석규랑 같이 할 수 있단 점에서 무조건 하고 싶었죠. 사실 이게 비하인드가 있는 게, 허진호 감독이 저와 석규에게 동시에 시나리오를 주고 서로 하고 싶은 배역 고르고 통보해 달라고 했어요. 하하하. 그때 시나리오는 지금 상영 버전과는 좀 달랐죠. 우선은 석규랑 한단 점에서 무조건 선택했으니.”
 
그는 사실 천문이 아니라도 상대 배우가 한석규였다면 어떤 작품이라도 할 생각이었단다. 그만큼 한석규와 최민식은 충무로에선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절친이자 선후배다. 대학시절부터 함께 동거동락은 사이다. 20년 전 영화 쉬리를 했고, 그 이전에는 드라마 서울의 달에서 함께 했다. 두 사람이 함께 나온 작품은 이게 전부다. 이제는 할 때가 됐다는 느낌이 왔단다.
 
배우 최민식.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우리가 이젠 좀 같이 해도 되겠다 싶었어요. 석규도 딱 그러더라고요. 하하하. 그리고 그게 천문이었지. 사실 나도 왕 하고 싶었죠(웃음). 근데 석규가 먼저 형님 제가 세종 해보겠습니다라기에 뿌리깊은 나무에서도 하지 않았냐그러니 이번엔 다른 세종입니다라는 거에요. 우린 그 말이면 되는 사이거든요. 그 친구가 쉽게 말을 안 내뱉는 타입이에요. 뭔가 대단하게 준비를 했구나 싶었죠. 그래서 그냥 전 장영실 한 거에요. 하하하.”
 
그저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되는 데로 맡게 된 장영실은 아니다. 그 배역을 연기하는 배우가 무려 최민식이다. 그 이름 석자 만으로도 모든 것이 설명이 되는 존재 아닌가. 한석규도 그랬단다. 최민식은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시나리오 속에 남아 있는 여백에 주목했다고. 그리고 이 영화가 그리고 싶어하는 궁극적인 세종과 장영실의 모습을 관계로 해석했다. 이건 최민식 한석규가 공통적으로 잡아 낸 점이라고.
 
시나리오를 보고 석규에게도 어떻게 봤냐고 물어봤죠. ‘형님 이건 세종과 장영실 두 사람의 얘기인데요라고 하는 거에요. 저도 무릎을 탁치고 그렇치라고 했죠(웃음). 그럼 이 관계를 어떻게 그려가야 할까. 떠오르는 이미지가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였죠. 위대한 업적과 천재적인 재능을 둘다 갖고 있지만 서로에게 질투도 하는. 서로 허물 없이 지냈지만 때로는 장영실이 기어 오르고, 세종이 찍어 누르는 관계도 있었을 것이고. 영화에서 세종께서 한글을 보여 줄 때 이것 때문에 저를 멀리하신 겁니까라고도 나오잖아요. 완전 질투죠. 그리고 서운함도 있고.”
 
배우 최민식.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그런 미묘하고 설명하기 힘든 관계 속에서 최민식이 그리려 했던 장영실은 특별했다. 실제 역사로 보더라도 장영실은 세종보단 7세 연상이다. 하지만 위치는 하늘과 땅 차이다. 세종은 가장 높은 곳에 있던 남자다. 반대로 장영실은 가장 낮은 곳에 있던 남자다. 극과 극이 만났다. 그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선 우선 가장 낮은 곳의 남자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게 관건이었다.
 
점차 나이가 들어가는 장영실을 보여 주고 싶었어요. 사실 차별에 대한 강박은 없었어요. 역사적으로도 장영실 선생에 대한 기록 자체가 거의 없으니 제가 그리는 대로 가면 됐죠. 기록에 따르면 세종께선 장영실을 내관처럼 침전에까지 들이면서 가까이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은밀히 만난 장영실과 무슨 얘기를 했을까. 어떤 상황일까. 영화에서 나오는 침전에서 창호지에 먹을 바르고 별을 만드는 장면도 그래서 나왔죠. 누구나 아는 관계에서 좀 더 발전 시키고 싶었어요.”
 
아무리 최민식이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장영실을 자신의 색깔로 색칠하고 만들었다고 해도 천문은 기본적으로 세종장영실의 얘기다. 장영실의 모든 것을 받아줘야 하는 세종의 역할은 막강하고 지대했다. 그 연기를 한석규가 한 것이다. 여러 번 언급했지만 한석규는 최민식의 대학 같은 과 1년 후배다. 최민식은 한석규에 대해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이다라고 극찬했다.
 
배우 최민식.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석규는 대학 시절과 지금이 똑같아요. 연기에 대한 철학과 자세 그리고 한 결 같은 톤과 그 톤 사이의 길이를 유지하는 배우? 전 한석규 외에는 본 적이 없어요. 정말 대단한 배우에요. 제 후배지만 전 석규에게 비교가 안될 정도로 모자라죠. 석규는 항상 고민해요. 항상 생각을 하고. (웃음) 석규가 취미랄까. 현장에서 까마득한 후배부터 어마어마한 선배들에게까지도 항상 하는 질문이 있어요. ‘왜 배우가 되셨어요?’ ‘왜 연기를 해요?’ 사실 이건 본인에게 하는 질문이거든요. 참 보석 같은 배우에요.”
 
이번 영화를 보고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를 표현해 낸 허진호 감독의 연출에 거북스러움을 드러낼 관객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반대로 흥미롭게 볼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 세종과 장영실은 브로맨스를 넘어 로맨스적인 감정을 서로 주고 받는다. 이미 영화는 시작과 함께 엄연한 창작임을 드러냈지만 사극에 대해선 칼 같은 기준점을 들이 대는 국내 관객들이다.
 
배우 최민식.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오히려 더 과했던 장면도 있었지만 허 감독이 편집에서 많이 잘 냈어요. 글쎄요. 전 들어갔어도 과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두 분은 제 생각에 그 시절로 보면 꿈을 꾸는 몽상가들이셨잖아요.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니 얼마나 순수했을까 싶어요. ‘전하 제가 이걸 만들었습니다하고 버선발로 뛰어가 왕 옆에서 시연해 보이고. 잘 못하면 전하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거죠하며 옆에서 막 좋아하고(웃음). 세종께선 그걸 또 다 받아 주시고. 그게 브로맨스? 로맨스? 뭐 어떻게 보여도 그럴 수 있다고 봐요. 그걸 두 분 삶의 철학이자 가치관으로 보면 좀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요. 재미있게 봐주시면 좋을 영화라고 봅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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