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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신년사는 국민화합의 장이어야
2020-01-07 08:00:00 2020-01-07 08:00:00
송구영신. 기해년이 저물고 경자년이 밝았다. 시민 각자는 해돋이를 보며 2020년 각오를 다지거나, 책상 앞에서 신년 설계를 골똘히 했을 것이다. 대통령들은 대국민 메시지를 내기 위해 고심했거나 고심 중에 있을 것이다.
 
신년사는 어쩜 대통령의 업무 중 가장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비중은 나라별로 다르다. 한국의 신년사는 대통령이 매년 하는 하나의 행사로 그다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않지만 프랑스의 경우는 국민 모두가 크게 주목하고 신년사에 쓰인 단어 하나하나를 의미 있게 분석한다. 
 
지난달 31일 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엘리제궁에서 프랑스 국민들을 향해 2020년 신년 덕담과 최근 프랑스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연금문제 등에 관한 국정운영 계획을 텔레비전을 통해 발표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마크롱 대통령은 이 신년사로 사방팔방에서 뭇매를 맞는 중이다.
 
프랑스는 연금개혁을 둘러싸고 근 한 달째 파업 중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이에 대한 타협안을 하루 빨리 찾아 “연금개혁을 완수하겠다”고 자신의 각오를 다시 한번 다짐했다. 그는 간결한 어조로 “내 결심이 얼마나 많은 두려움과 반대를 야기할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일상을 바꾸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조직이 포기한 것을 재차 포기한다면 이는 우리 아이들을 저버리는 일이다. 우리가 포기한다면 그 값은 누가 지불할 것인가. 따라서 연금개혁은 끝까지 끌고 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불복종하는 프랑스당의 에릭 코크렐(Eric Coquerel) 하원의원은 “에마뉘엘 마크롱은 프랑스인들이 집회에 동참하도록 매우 확실한 메시지를 보냈다”고 평가했다. 그는 프랑스 엥포와의 인터뷰에서 “겸손함이 부족한 마크롱에게 도전장을 내밀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집회를 열어야 한다”면서 마크롱 대통령의 신년사에는 “두 개의 세상”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하나는 마크롱의 세상이고, 또 하나는 거의 모든 프랑스인들이 감내하는 세상이다. 말하자면 마크롱의 고용창출 청사진은 겉으로는 멋져 보이지만 속으로는 기업을 살찌우는 정책이다. 그런데도 마크롱은 프랑스인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그들의 사회보장기금과 실업수당을 깎고 불평등을 더욱 야기하고 있다. 이 두 세상 사이에는 아주 큰 갭이 있다. 따라서 마크롱의 신년사는 허황된 것이다”라고 비난했다.
 
유럽 녹색당의 쥘리앙 바이우(Julien Bayou) 국가비서 역시 마크롱 대통령의 신년사를 듣고 대실망했다. “나는 18분 중 10분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나 환경 이야기는 1분도 채 하지 않았고 다가올 10년에 관해서만 이야기했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바이우는 연설의 일부분을 “속빈 강정”이라고 규정했다. 
 
공화당의 에릭 시오티(Eric Ciotti) 하원의원은 트위터에 나라가 사회적 폭력과 긴장의 한 해로부터 간신히 빠져나왔는데 마크롱은 영혼도 없고, 비전도 없고, 공허하기만 한 신년사를 늘어놨다고 비난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제일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FN의 마린 르 펜 대표는 간략히 “새삼...아무 것도 없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극우의 조르당 바르델라(Jordan Bardella) 유럽의원은 “마크롱의 신년사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는 참으로 한심하다”고 평가했다.  
 
불복종하는 프랑스당의 장 뤽 멜랑숑 대표는 “이는 신년사가 아니다. 그의 개혁을 반대하는 수많은 프랑스인들에게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그의 연설은 모두 엉터리고 공허하다. 외계인이 말하고 있다”고 혹평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아군의 평가는 180도 달라 의아하다. 전진하는 공화국의 오로르 베르제(Aurore Bergé) 여성의원은 “우리는 오로지 거리의 소리만을 듣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유권자의 목소리를 듣고 프랑스인들로부터 위임받아 필요한 개혁을 끝까지 추진해 나가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대통령의 연설은 단호하고 우리가 기다리는 도전에 대해 매우 차분하다”고 호평했다. 크리스토프 카스타네르(Christophe Castaner) 내무부장관 역시 마크롱 대통령의 결의와 프랑스인들을 결집시키려는 의지에 경의를 표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오늘 신년사를 발표한다. 올해 신년사는 너무 포괄적이거나 허구적인 단어의 나열이 아닌 구체적이고 공감력 있는 언어의 조합이기를 바란다. 신년사는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하는 공간이다. 여느 때처럼 형식적인 행사, 형식적인 언어의 나열로 끝나버리는 공허한 자리가 아닌 대통령의 국정비전과 국가현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국민통합을 모색하는 뜻깊은 자리로 업그레이드돼야 한다. 
 
마크롱 대통령이 신년사로 곤혹을 치르는 것은 국민을 이분화하고 국민이 원하지 않는 정책을 끝까지 관철하려는 자만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과 달리 모두의 대통령으로 국민이 원하는 정책, 그리고 분열된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 한국사회의 분열 수위는 임계점을 한참 넘었다. 이 분열을 축소하는 장으로서 이번 신년사가 공헌할 수 있길 고대해 본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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