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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남산의 부장들’, 그는 왜 방아쇠를 당겼을까
‘10.26’ 그리고 ‘김형욱 실종사건’ 인과관계…‘두 사건’ 핵심 지목
권력의 정점 ‘박 대통령’이 전달한 ‘보이지 않는 칼’…권력의 속성
2020-01-21 00:00:00 2020-01-21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대한민국 현대사 최대의 굴곡이다. 1979 10 26. 궁정동 안가에서 총성이 울렸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죽었다. 대통령을 지키던 경호실장도 죽었다. 총을 쏜 사람은 권력의 2인자로 불리던 중앙정보부장이다. 그는 대통령의 총애를 받던 인물이다. 도대체 왜 그는 자신의 주군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됐을까. 4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날의 비밀은 묻힌 상태다. 누군가는 대통령을 꿈꾼 중앙정보부장의 야망이 만들어 낸 우발적 사건으로 결론을 내렸다. 누군가는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경호실장과 중앙정보부장의 관계가 만들어 낸 계획적인 범행이라고 몰아 세웠다. 가장 듣기 좋은 말은 독재에 환멸을 느낀 중앙정보부장이 대한민국 민주화를 위해 몸을 던진 의거라고 추켜 세웠다. 뭐가 됐든 그날 그 곳에서 누군가는 죽었다. 누군가는 죽였다. 도대체 그들 사이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동명의 책이 원작이다. 10.26으로 불리는 대통령 피살 사건을 정면으로 파헤친 가장 유명한 책이다. 이 책은 국가 권력의 2인자를 자처한 당시 대통령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파고 든다. 권력을 중심에 두고 그들 사이에서 벌어진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다. 총성이 울린 그 순간이 처음이다. 그리고 카메라는 총성이 울리기 40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를 기반으로 한 팩션이란 점을 강조한다. 이름은 전부 가명이다. 현직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병헌)은 자신의 친구이자 혁명 동지인 전직 정보부장 박용각(곽도원)을 만나러 미국으로 향한다. 박용각은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박 대통령(이성민)의 실체를 폭로한다. 이 소식을 듣게 된 박 대통령은 격노했다. 뜻하지 않게 화살은 김규평에게 향한다. ‘현직 정보부장 김규평은 도대체 뭘 했느냐는 경호실장 곽상천의 질책이 이어진다. 박 대통령의 총애를 받는 곽실장이다. 두 사람은 다르다. 김 부장은 쓴소리도 마다 않는 충신의 이미지다. 반면 곽실장은 듣기 좋은 소리만 골라서 하는 간신의 모습 그대로다. 박 대통령은 두 사람 사이에서 권력의 속성을 이용한 경쟁을 활용한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 사진/쇼박스
 
박용각 처리문제가 세 사람의 화두가 됐다. 박 대통령은 직접 지시를 하지 않는다. 대신 김규평에게 의견을 묻는다. 곽실장은 죽여야 한다는 강경론을 펼치지만 결정권을 김 부장에게 전달한다. ‘임자 곁에는 내가 있다. 뜻대로 하라는 말과 함께 힘을 실어 준다. 미국에서 친구 박용각을 만난 김 부장은 회고록을 전달 받는다. ‘회고록에는 박 대통령의 치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제 박용각 사건은 일단락이 되는 듯했다. 친구를 죽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박용각은 알고 있었다. ‘너나 나나 그냥 소모품일 뿐이었다며 김 부장에게 경고했다. 이미 박 대통령의 속내를 알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박용각은 박 대통령의 비선 정보조직 이아고의 실체를 귀띔해 준다. 박 대통령의 비자금 관리와 중앙정보부마저 감시하는 비선 중의 비선 조직이었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 사진/쇼박스
 
그럼에도 김 부장은 옆에서 잘 보필할 것이다” “내려오실 준비를 하고 있다. 잘 지켜 드릴 것이다등의 신념으로 박 대통령을 믿었다. 이런 믿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균열은 엉뚱하게도 곽 실장의 권력 싸움이 발단이 된다. 그는 권력 싸움에서 멀어진 박용각은 안중에도 없다. 김규평이 눈에 가시다. 그는 권력을 찬탈할 의도조차 없다. 그저 평생 2인자로 곁에서 모든 총애를 독차지 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쓴소리 바른 소리를 하는 김규평이 눈엣가시다.
 
곽실장의 농간으로 벌어진 회고록 유출은 즉각 박 대통령의 인내심을 폭발시켰다. 다시 한 번 박 대통령은 김 부장에게 박용각 처리 문제에 대한 전권을 줬다. 사실 처음부터 죽여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지만 김 부장이 그걸 묵살하고 온건책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려고 노력한 것을 질책하는 것 같았다. 결국 김 부장은 칼을 빼 들었다.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믿음이 먼저다. 충성이 먼저다. 그런데 물은 엎질러 졌다. 문제는 물을 엎지르라 명령한 사람이 발을 뺀다. “난 물을 엎지르라고 한 적이 없다라고. 김 부장은 혼란스럽다. 그저 시키는 대로만 했다. 그런데 정말 소모품이었단 말인가. 이제 박 대통령의 곁에는 듣기 좋은 소리만 하던 곽실장 하나 뿐이다. 김 부장은 두렵다. 친구 박용각의 다음은 바로 자신이 될 것 같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 사진/쇼박스
 
남산의 부장들은 한때 남산으로 불리던 국가 권력의 핵심 중앙정보부와 그곳을 이끌던 우두머리들(정보부장), 여기에 국가 권력의 1인자 박 대통령에 대한 관계의 얘기다. 가장 유명한 사건인 10.26과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 사건이 어떤 인과관계로 묶여 있지는 않았을까. 이 같은 의구심이 이번 영화의 출발점이 될 듯싶다. 시기적으로도 충분히 인과관계가 묶일 수 있다.
 
영화는 권력의 속성과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또 파고든다. 누구도 믿지 못하는 상황이 만들어 진다. 권력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그리고 권력에 빌붙어 사는 기생하는 자. 그들의 역학 관계는 힘의 논리가 평행 점을 이루는 정확한 무게 점을 완벽하게 짚어낸다. 무려 18년의 장기 집권을 통해 왕조를 꿈꾸던 한 남자의 권력욕은 전체를 보고자 했지만 정작 자신의 주변은 무너지고 쓰러져 가는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우매한 모습이었다. 반면 자신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던 세 남자의 각기 다른 욕망은 권력에 대한 해석을 어떤 방식으로 이뤄내는 가에 따라 선과 악의 이분법 그 이상을 넘어가는지를 증명해 낸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 사진/쇼박스
 
미묘하고 세밀하다. ‘남산의 부장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궁정동 안가 대통령 피살사건을 그대로 가져온다. 하지만 그 사건 발생의 인과 관계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중앙정보부장과 경호실장의 알력다툼이 만들어 낸 희대의 반역 사건으로만 알려진 점도 있다. 한 남자가 대권을 꿈꾸며 계획적이면서도 충동적으로 일궈낸 현대사의 오점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영화는 사실로 굳어진 이 두 가지 이미지를 걷어냈다. 대신 화살을 다른 곳으로 겨냥한다.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본명에 가까운 이름으로 등장한 박 대통령이다. 그는 김부장 곽실장 박용각 등 모든 인물들에게 단지 실마리만을 제공한다. 사건을 던져주고 책임을 피한다. 책임을 지게 만든다. 영화적으로 김규평 박용각 곽상천 모두가 피해자가 된다. 반면 박 대통령은 암묵적 가해자로 그려진다.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의문 투성이로만 남은 ’10.26’김형욱 실종 사건의 핵심을 파고들면 최종 결정권자의 결정 없이는 불가능했던 현대사의 굴곡임에는 틀림없다. ‘보이지 않는 칼을 건 내 칼춤을 추게 만든 박 대통령의 권력이 가해자일까. 아니면 충성을 가장한 칼춤에 스스로가 무너져 내린 세 남자의 망상이 지금의 현실을 만들어 낸 수혜일까. 그건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서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역사가 판단할 일이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스틸. 사진/쇼박스
 
스릴러와 스파이 장르의 무게 추를 완벽하게 조율한 남산의 부장들은 그 판단의 선택을 다음 세대로 넘겨 버린다. 개봉은 오는 22.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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