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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나도 설치하던 ‘교통섬’, 실제로는 보행자 “위험천만”
2020-02-02 06:00:00 2020-02-02 06:00:00
[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우회전 차량의 통행을 원활하게 할 목적으로 인기를 끌던 교통섬이 오히려 보행자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지적이 일고있다. 2일 서울시와 서울연구원 등에 따르면 정부와 지자체들은 1988년부터 간선도로를 중심으로 우회전 차량의 원활한 통행을 위해 교통섬을 설치해 왔다.
 
교통섬은 우회전 차량이 직진·좌회전 차량의 교통흐름과 상관없이 주행하기 위한 것이다. 원칙적으로 교통섬 앞 횡단보도에는 정지선이 있어 우회전 차량도 일단 멈췄다가 보행자 진입 여부를 확인한 후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차량들이 이를 무시하고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진입하기 일쑤다.
 
서울연구원이 교통섬이 있는 24개 교차로를 조사한 결과, 차와 보행자의 ‘심각한 상충’(사고 위험)은 2시간당 평균 0.27회, ‘가벼운 상충’은 29회나 발생했다. 심각한 상충은 아예 없고 가벼운 상충도 0.5회에 불과한 일반교차로와 비교하면 상당히 위험하다. 
 
보행자 140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90% 이상의 보행자가 ‘교통섬 횡단 시 불편 및 위험성’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교통섬이 보행자의 안전을 보장하기보다 오히려 사고를 유발하는 시설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나 제거 또는 개선의 필요성이 크다.
 
현재 서울에는 523개 교차로에 모두 963개에 교통섬이 설치돼 있다. 교차로당 교통섬 수는 2.6개로 도쿄 1.3개의 두 배이며, 런던 1.2개, LA 1.1개, 벤쿠버 1.2개보다 월등하다. 미국 고속도로관리국, LA, 샌프란시스코, 호주 멜버른, 뉴질랜드 오클랜드 등의 해외 도시들은 교통섬을 차량 중심의 보행방해시설로 규정하고 철거하거나 보행공간을 확장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서울연구원은 963개 교통섬 중 정비가 필요한 우선순위를 매겼다. 그 중 삼각지역 사거리, 문래동 사거리, 정의여중입구 사거리에 설치된 교통섬이 정비 필요성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세 곳 모두 둔각으로 교차하거나 대기공간이 너무 협소하거나 주변에 교통약자 시설이 존재하는 곳이다.
 
최근 영등포구는 영등포시장 교차로의 개선사업을 하면서 교통섬 4개 중 2개를 없애 보도를 정비했다. 남은 2개도 고원식 횡단보도를 설치해 교차로 내 진입 차량 속도를 낮췄다. 영등포시장 교차로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간 13건의 노인 보행사고가 발생했던 곳이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조사를 통해 영등포시장 교차로 교통섬의 우회전 반경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로 인해 차량 속도가 빨라지고 사고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개선계획을 수립했다”고 말했다.
 
영등포구는 최근 영등포시장 교차로에 있던 교통섬 4개 중 2개를 없애고, 나머지 2개도 개선했다. 사진/영등포구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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