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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정부 '등쌀'에 지치는 은행들
2020-05-26 06:00:00 2020-05-26 06:00:00
평일 저녁 8시에도 서울 영등포구의 한 은행 건물은 불이 환하다. 한참 전에 불이 꺼진 영업 창구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연일 비상회의를 진행하고 있고, 모든 업무 활동에는 코로나19로 제약이 있다"면서 "(일이 산적해) 업무가 거의 마비수준"이라고 토로했다. 
 
은행들은 네 달 째 코로나19 소상공인 대출지원에 나서면서 피로감이 크게 쌓였다. 기존 업무에 더해 코로나 정국에 따른 내외적 업무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기간산업 등 대기업에도 지원을 독려받고 있어 부담이 더 커졌다. 정부는 산업은행이 갖는 분담을 나누자는 입장이지만, 은행 입장에서 보면 산은과 함께 부실 가능성을 짊어지자는 강제성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정부 입장이 틀린 것은 아니다. 대규모 산업 부실과 고용 악화로 경제 전반이 흔들린다면, 그곳에 자금을 투입한 은행의 피해도 상당하다. 문제는 이러한 고민을 모두 정부가 지고, 결정까지 정부가 우선한다는 점이다. 더구나 은행들은 지난해부터 불거진 잇단 사모펀드 논란으로 정부에 목이 꽉 틀어쥐어진 상태다. 최근 라임자산운용 환매중단 사태와 관련한 은행들의 태도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젠 책임소지를 밝히기도 전에 선보상을 운운할 정도로 무력감을 내비치고 있다.   
 
정부가 코로나19 지원에서부터 소비자보호까지 은행 스스로 판단을 내릴 자율성을 빼앗아가는 모양새다. 이는 '보모'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 훗날 그 손을 떠날 은행의 미래를 불안하게 한다. 실제 은행들은 벌써부터 내년에 돌아올 코로나19 긴급대출 만기를 겁내고 있다. 대출 금리는 일반자금 대출로 전환돼야 하는데, 창구마다 소상공인의 원망소리가 터져나올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는 또다시 정부 개입 없이는 해결이 어려운 상황을 반복한다. 기간산업 지원, 사모펀드 대응 등 다른 사례들도 다시금 정부 개입이 불가피한 비슷한 양상의 전개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은행을 설명하는 규제산업이란 말이 이런 뜻을 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당장 은행에 거는 기대감이 크더라도 정부는 인내심을 가지고 스스로 판단을 할 시간을 줘야하지 않을까. 늦은 밤 켜진 불빛만큼 은행들의 고민도 깊다.
 
신병남 금융부 기자 fellsick@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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