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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산업안정기금 유명무실…대한항공도 주저하는 이유
2020-08-05 16:07:40 2020-08-05 19:07:57
[뉴스토마토 최홍 기자] 기간산업안정기금 신청 공고를 낸지 한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신청 기업은 전무하다. 정부가 지원대상으로 직접 언급한 대한항공마저 기금 신청을 주저하고 있다. 기안기금 신청시 고용유지 등 많은 의무가 부여되는 데 반해 실익이 크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기금 신청 자체가 부실기업으로 낙인찍힐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기업 부담을 더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이 지난달 7일 기안기금 신청공고를 내 뒤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신청기업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당시 기안기금 운용심의회가  지원 충족 대상으로 직접 언급한 대한항공조차 신청하지 않았다. 쌍용차·저비용항공사(LCC) 지원에 손사래 치던 정부가 대한항공은 지원해도 된다고 했음에도 정작 해당 기업은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항공이 최근 유상증자를 통해 숨통이 트인 점도 일부 작용하지만, 섣불리 기금을 신청했다가 시장에 안좋은 시그널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게 신청 기피 진짜 이유다. 국책은행 한 관계자는 "대한항공은 다른 항공사와 다르게 아직 버틸 만하다"면서 "오히려 기안기금을 신청하면 시장에 안좋은 시그널을 제공할 수 있어 기금신청을 꺼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금융권에서는 기안기금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당초 기안기금의 문제로 제기됐던 건 자격요건이다. 기업이 기금을 받기 위해서는 총차입금 500억원 이상·근로자 300인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 또 지원을 받은 이후에는 고용인원 90% 이상을 6개월간 유지해야하며, 정부가 채권 회수 과정에서 기업 지분을 보유할 수도 있다. 결국 이런 악조건을 감수하며 기금을 신청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경영상황이 어렵다는 걸 방증한다. 기업들이 시장에 보일 시그널을 고려해 신청하지 않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산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이렇게 문턱을 높인 이유는 사실상 정부가 책임을 최대한 지지 않기 위해서"라며 "이번 정책은 기업을 위한 것이 아니라 관료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기안기금 신청 주체를 기업→채권단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기간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정책이 오히려 기간산업의 신용을 깎아내리는 모순을 해결하자는 취지다. 국책은행 관계자는 "기안기금 신청 주체가 기업인 것이 정말 타당한 구조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며 "정부는 어떤 업권이 신청 가능하다는 메시지만 주고, 나머지 신청 권한은 채권단이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채권단은 채무기업과 긴밀한 협의를 거쳐 기업의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또 채권단이 정부기관인 만큼 정부와의 협상이 보다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국책은행 관계자는 "채권단이 신청 주체가 되면 기업을 어떻게 더 지원할지 적극적으로 고민할 여지가 있다"며 "반면에 현재 상태에서는 권한은 전혀 없고 책임만 지는 구조"라고 했다.
 
기금 지원여부를 심의하는 기금운영심의회가 교수·학자 등 외부인으로 구성된 것도 논란이다. 외부인은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심의할 수 있지만, 채권은행 만큼 기업의 내부 사정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외부인이라 정부기관 만큼 책임있는 의사결정을 내리긴 어려울 것"이라며 "40조원을 다루는데도 실패할 시 어떻게 책임진다는 언급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 질의에 답을 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최홍 기자 g243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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