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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여당 "분쟁조정안 무조건 따르라"…금융업계 "초법적 관치금융" 반발
금감원장·이용우의원 '편면적 구속력' 강조…'재판받을 권리 박탈' 위헌 소지 다분
2020-08-14 06:00:00 2020-08-14 06:00:00
[뉴스토마토 우연수 기자] 정부와 여당이 금융당국의 분쟁조정 권고를 금융사가 무조건 수용하도록 구속력을 부여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초법적 관치금융'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배상 권고를 소비자가 수용하면 금융사의 의사와 무관하게 효력을 갖게하겠다는 것인데, 금융사의 재판청구권이 박탈된다는 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당국 분쟁조정에 소비자 중심의 편면적 구속력을 부여하는 방안이 금융당국과 여당을 중심으로 본격 추진되면서 은행, 증권사 등 금융권이 반발하고 있다. 사법기관이 아닌 행정부인 정부가 재판과 같은 효력을 갖겠다는 취지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현행법에서는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안에 대해 금융회사와 금융소비자(민원인)이 수락해야 '재판상 화해' 효력이 발생하도록 하고 있다. 재판없이 당사자 간 직접 협상 또는 제3자에 의한 조정으로 해결하는 방식이다.
 
다만 금융사가 조정안을 수락하지 않으면 효력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단점도 있다. 최근에도 최근 라임자산운용 일부 사모펀드에 100% 배상, 키코(KIKO) 건에 대해 일부 배상을 권고했지만 금융사들은 이를 수용하지 않거나 답변을 미뤘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은 분쟁조정위원회 결정에 대해 '편면적 구속력'을 부여하는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편면적 구속력이란 자본시장에서 분쟁이 발생했을 때, 민원인이 금융당국의 분쟁조정 권고를 받아들이면 금융회사도 이를 따라야 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용우 의원실 관계자는 "일반 투자자들은 분쟁이 소송으로 발전하게 되면 시간과 비용 부담 때문에 소송을 포기하게 된다"며 "금융소비자보호법에서도 소액분쟁사건 금액 기준으로 규정한 2000만원 이하 분쟁조정에 한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석헌 금감원장 역시 최근 임원회의에서 "(편면적 구속력 부여로) 분쟁조정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라"고 지시했다. 금감원장의 언급과 여당 의원의 개정안 발의가 이어지면서 관련 논의가 일순간 급물살을 타는 형국이다.
 
금융권에서는 편면적 구속력 부여에 대해 반시장적 규제인데다 헌법에 어긋난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금감원 결정을 무조건 수용하라는 건 법을 뛰어넘는 초월적 조치"라며 "법정에도 3심제도가 있는데, 금감원이 한번 내린 분조위 결정이 모두 옳다고 할 수 있나"라고 지적했다. 또한 다른 관계자는 "최근 일부 사모펀드에 대해 판매사 100% 배상 권고까지 나오면서 금융사와 소비자와 책임을 분담하는 원칙도 희미해진 상태"라고 우려했다.
 
금융분쟁 사례가 유독 많은 보험업권의 우려도 높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사법부의 역할까지 하겠다는 것"이라면서 "분쟁조정 취지는 법에서 보장해주는 사적화해 절차인데, 법적 구속력을 지니면 화해의 정의에도 맞지 않다"고 했다.
 
금융사의 재판 받을 권리를 원천 차단하기보다는 소비자들이 금융사와의 소송에서 불리한 위치에 서지 않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재판 전 소송 당사자가 기업에 사건과 관련한 각종 자료를 공개하도록 요구할 수 있게 하는 '증거개시명령제'는 소송을 제기하는 소비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지난 11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금감원의 분쟁조정 제도에 편면적 구속력을 갖추고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우연수 기자 coincidenc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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