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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명의로 몰래 비대면 대출', 절차 줄인 금융사 책임
입력 : 2021-06-02 오전 11:41:48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현대캐피탈이 자신 명의로 몰래 비대면 대출한 형 대신 돈을 갚으라며 동생에게 소송을 제기했다가 2심에서 패소했다. 법원은 영업 편의상 본인확인 절차를 간소화한 금융사에 책임이 있다고 봤다.
 
2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의정부지법 민사2부(재판장 김기현)는 최근 현대캐피탈이 A씨를 상대로 낸 대여금 반환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A씨는 지난 2018년 9월 친형 B씨에게 자신의 운전면허증 사본과 통장 사본을 건네줬다. 동생 명의로 휴대폰을 쓰던 형이 기기 교체를 해야 한다며 운전면허증 사본 등을 요구해서다.
 
하지만 B씨는 자신이 쓰던 동생 명의 휴대폰으로 현대캐피탈에서 비대면 실명확인을 거쳐 2200만원을 대출받아 중고차를 매입했다.
 
대출 다음날 이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현대캐피탈에 대출 취소를 요청하고, 검찰에 B씨를 사문서위조죄로 고소해 벌금 300만원 약식명령을 받아냈다.
 
사정이 이런데도 현대캐피탈은 A씨의 대출 취소 요청을 거부하고 대출금을 일시에 갚으라고 요구했다.
 
또 휴대폰 본인인증과 운전면허증으로 본인여부를 확인했으니 A씨에게 채무변제 의무가 있다며 대여금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현대캐피탈은 A씨가 B씨에게 운전면허증 사본과 통장 사진 등 대출에 필요한 서류를 제공해 기본대리권을 수여했다고 주장했다.
 
1심은 현대캐피탈 주장 대부분을 받아들였다. 반면 항소심은 원심 판결을 취소하고 A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원고는 여신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금융회사로서 채무를 부담하게 될 당사자에게 직접 그 의사를 확인하는 등 보다 신중하게 대출을 실행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며 "영업의 편의를 위해 그 절차를 간이하게 해 발생하는 위험은 원칙적으로 원고가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휴대전화 본인인증을 통한 전자서명은 서명자를 확인하고 서명자가 당해 전자문서에 서명했음을 나타내는 것에 불과해, 공인인증서에 기초한 공인전자서명과는 달리 그 전자서명의 존재만으로 거래 상대방이 신뢰할 만한 외관이 창출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휴대전화는 금융거래에 이용되는 공인인증서나 보안카드 등에 비해 제3자에 의해 악용될 위험이 상대적으로 크다"고 했다.
 
또 "원고가 요구한 피고의 생년월일, 운전면허증 번호와 같은 개인정보는 금융거래 시 이용되는 보안카드 번호, 전자식 카드나 공인인증서를 사용하는 데 필요한 비밀번호 등에 비해 타인이 이를 입수하는 것이 그리 어렵다고 할 수 없다"며 "휴대전화 본인인증을 보완하는 추가적인 본인확인 수단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봤다.
 
현대캐피탈이 대출금을 A씨 은행계좌에 직접 입금하지 않고 중고자동차 매매업체에 송금한 점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약관은 대출금을 채무자 본인계좌로 입금하지 않아 발생한 채무자 손실을 모두 금용사가 배상한다고 규정했다.
 
재판부는 현대캐피탈이 대출 명의자인 A씨 통장에 중고차 대출금을 지급했다면 B씨의 중고차량 구입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소송을 진행한 이재형 공익법무관은 "비대면 금융거래가 증가하면서 관련 쟁송도 늘고 있다"며 "금융회사들이 절차를 간편하게 할수록 본인확인 절차를 더욱 엄격하게 준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청사. 사진/법률구조공단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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