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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지시' 다투고 쓰러진 계약직...법원 "유족급여 지급하라"
재판부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뇌동맥류 파열 인정"
입력 : 2021-12-31 오전 7:00:00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혈압약을 먹던 계약직 근로자가 상사의 부당한 지시로 다투다 지주막하 출혈로 숨졌다면 산재가 맞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재판장 이종환)는 A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등 부지급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31일 밝혔다.
 
재판부는 "망인이 사망 직전 팀장과 심한 갈등 상황을 겪었던 것이 망인의 신체적인 소인과 겹쳐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뇌지주막하 출혈을 발생하게 했다고 추단할 수 있다"며 "망인은 업무상 사유로 인해 사망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A씨는 지난 2019년 6월부터 이천 소재 공사현장에서 안전요원으로 근무했다. 트레일러 등 대형 자재차량이 안전하게 현장에 진입·진출하도록 유도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A씨는 지난해 2월13일 오후 1시30분쯤 팀장으로부터 자재차량 하역을 위해 공사현장으로 유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A씨는 하역장소가 확보되지 않았다고 했지만 팀장은 원청의 바리케이트를 옮기라고 지지했다. 바리케이트를 무단으로 옮기면 A씨가 안전유도원 자격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두 사람은 다툼 끝에 하역작업을 유도하지 않기로 했다. A씨는 2시30분쯤 동료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다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병원에 옮겨진 A씨는 당일 숨을 거뒀다. 사인은 뇌지주막하 출혈이었다.
 
유족은 A씨 사망 직전 팀장의 부당한 업무지시로 다퉈 뇌지주막하 출혈이 발생했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공단은 지난해 6월 A씨 업무로 뇌지주막하 출혈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족이 불복해 산업재해보상보험 심사위원회에 심사청구를 했지만 같은 이유로 그해 11월 기각됐다.
 
이에 유족은 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A씨는 한 달 단위로 연장계약을 하는 단기계약직으로 팀장의 지시를 따를 경우 안전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어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A씨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쓰러져 사망에 이르렀다고 했다.
 
법원은 유족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망인의 고용 특성에 비춰 망인은 팀장의 업무상 지시를 거부하기가 적잖이 어려운 입장이었을 것임에도 사망 직전 팀장과 바리케이트 이동 문제로 이견을 표출하며 공개적으로 다퉜다"며 "망인은 팀장의 행동을 제지하기 위해 제3자까지 불러오는 등 외부에 드러난 다툼의 정도도 일시적인 충돌 정도로 치부할 상황은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 사망 8개월 전 혈압이 정상(120/80mmHg 미만)과 고혈압(140/90mmHg) 사이인 130/82mmHg으로 혈압약을 복용했지만 자연적인 진행 경과만으로 사망할 수는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망인의 계약직 신분 등에 비춰 보면 망인이 그 다툼으로 인해 상당한 정 신적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망인은 한겨울 동안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실외에서 근무하는 과정에서 온도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혈압이 상승했을 가능 성도 높은 점 등에 비춰보면, 업무환경과 사망 직전의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해 갑자기 혈압이 상승하면서 뇌동맥류가 파열돼 지주막하 출혈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서울행정법원 청사. 사진/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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