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다니던 회사에 불만을 품고 업무용 노트북 컴퓨터를 포맷한 뒤 후임자에 대한 인수인계도 없이 퇴사해 비슷한 이름의 업체를 세운 임원들이 집행유예를 확정받았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부정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A씨 등 여덟 명에 대해 집행유예나 실형,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1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퇴사 직전에 회사의 공용폴더로 백업 하지 않은 자료를 인수인계 없이 삭제한 행위가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해당한다고 본 원심 판단은 정당하다"며 A씨 등의 상고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업무방해죄의 위력이 폭행·협박이나 권세에 의한 압박 외에 사람의 자유를 제압할 만한 물적 상태를 만들어 정상 업무 수행을 어렵게 하는 행위도 포함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판단 근거로 들었다.
피해 회사의 상표가 일반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어도 일정 거래처나 수요자가 유사 상표와 혼동하거나 자본·조직 등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믿게 했다면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이라고 했다.
자동문 회사 본부장이던 B씨는 대표이사에게 회사 지분권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임직원들과 공모해 퇴사하고 비슷한 영업표지를 쓰는 동종업체를 차려, 다니던 회사에 피해 입힌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함께 기소된 A·C·D씨는 퇴사 무렵 업무용 노트북 컴퓨터에 저장된 업무 관련 자료(개발·거래처·자재구매 정보)를 전부 지워 회사 업무를 방해한 혐의도 있다. 이들은 매월 회사 공용 폴더에 자료를 백업하라는 회사 방침을 어기고 퇴사 세 달 전부터 백업하지 않았다.
B씨 등은 피해 회사 대표이사가 경영권 승계를 위해 임직원 일부를 해고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범행을 주도한 B씨에게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했다. E씨는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나머지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2심은 B씨에게 징역 10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B씨가 주도한 일련의 범행으로 인해 피해 회사는 상당한 기간 동안 종전 영업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며 "B씨는 그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는 등으로 자숙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 회사의 대표이사에게 그 책임을 돌리려 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A씨 등은 법리 오해를 이유로 상고했다.
대법원 청사. 사진/대법원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