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세종로 주한미국대사관에 게양된 성조기. (사진=뉴시스)
미국이 이번에는 우리에게 중국에 반도체 수출량을 조절하라는 요청을 해왔습니다. 미 반도체 보조금 지급을 위한 독소조항과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서 우리 기업들을 배제해놓고 또 다시 무리한 요구를 해오고 있습니다.
로이터통신은 23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자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이 중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자, 중국 내 마이크론 반도체 부족분을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메우지 않게 해달라고 우리 측에 요청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를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사기업에게 물건을 팔라 말라는 시장 경쟁 침해뿐 아니라 기업의 자율성 침해입니다. 특히 미국이 반도체 보조금에 대한 4가지 독소조항을 내건 것에 이어 IRA에서 현대·기아차를 배제하면서 우리 기업의 손발을 묶는 요구를 연이어 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 같은 미국 측의 요청은 기업 자율성 침해는 물론 주주가치 훼손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중국은 전 세계에서 반도체 수요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지난해 마이크론의 매출은 308억달러였는데 여기서 33억달러는 중국에서 거둬들었습니다. 마이크론의 중국 수출에 문제가 생기면 반사이익을 삼성·SK하이닉스가 받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들 물건을 사러 온 사람에게 물건을 팔지 않는 것은 주주가치 훼손, 배임에 해당됩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라고 할지라도 사기업에게 판매를 하라 마라는 엄연히 간섭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반도체 공급망 재편 중심에 있는 미국 측에 선 우리로서는 미국이 요구하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거절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외신 보도를 자세히 보면 미국이 우리 측에 이 내용을 정식 요청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이같은 보도가 나온 점을 미뤄볼 때, 실제 이같은 내용이 오고 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은 앞서 IRA 세부 지침에 따라 최대 7500달러 보조금을 지급하는 16개 전기차 대상 차종을 공개했는데 현대·기아차는 지급 대상에서 빠졌습니다. IRA는 최종적으로 북미에서 조립된 전기차에 대해서만 세액공제 형태로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합니다.
이뿐 아니라, 미국은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들에게 보조금을 주는 대신 △미 정부의 반도체 시설 접근 허용 △초과이익 공유 △상세한 회계자료 제출 △중국 공장 증설 제한 등 4가지 독소조항을 내걸었습니다.
한국은 전 세계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공급국입니다. 미국이 앞으로 어떠한 요구를 해올지 두렵지만, 현명하게 대처하기를 바랄뿐입니다.
오세은 기자 os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