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민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처음 봤을 때가 2011년 MBC '파스타' 때였다. 처음보는 아저씨인데 연기를 정말 잘했다. 나쁜 사람 같으면서도 빈틈이 많아서 정이 갔다. 결국에는 호감가는 캐릭터를 완성했다. 그리고 '골든타임'에서는 결이 강한 의사 최인혁 역으로 묵직한 연기를 선보였다. 검색사이트가 배우 이성민으로 도배되는 시기였다.
이성민은 '미스코리아'에서는 가볍고 힘 없는 조폭이었고, 영화 '방황하는 칼날'에서는 감정표현이 전혀 없는 17년 경력의 형사였다. 편차가 큰 캐릭터를 오고가는데, 어색함이 없다.
연극을 통해 내공을 다진 배우 이성민을 지난 8일 삼청동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방황하는 칼날' 홍보차 인터뷰였다. 사람 좋은 인상으로 기자를 맞이한 이성민은, 솔직하면서도 담담한 화법을 구사했다. 눈을 마주치며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기 보다는, 다른 곳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그리고 신중히 한 마디 한 마디를 이어갔다.
◇"과거도 없고 감정도 없는 억관, 계산하지 않았다"
그가 주연으로 나선 '방황하는 칼날'은 오는 10일 개봉한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시기가 배우나 감독에게 가장 부담스러운 시간이다. 이성민도 마찬가지다.
이성민은 "아무래도 이번에는 내가 주연으로 나선 작품이다 보니까 괜히 신경쓰이고, 설레고 그런다. 이런 느낌 처음이다. 책임감에 대해 배우고 있다"고 미소를 지었다.
이번 작품에서 이성민은 17년 경력의 형사 장억관을 연기했다. 10대 청소년 범죄에 대해 감정적으로 행동하고 싶지만, 경찰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이성을 유지하는 인물이다. 감정과 이성의 괴리를 표현해야하는데, 말수도 적다. 그저 표정으로, 작은 행동으로만 관객을 설득해야 하는 위치다. 어려운 역할이다.
이성민은 "처음에는 좀 가볍게 생각했다. 억눌려 있어서 억관인가 싶었다. 계속 시나리오를 읽다보니 억관이 가지고 있는 무게감이 보이기 시작했다. 촬영 전에 감독과 상의를 많이 하면서 억관에 대한 시선이 풍부해졌다"고 밝혔다.
극중 장억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과거도 없고, '어떤 사람'이라는 설명이 거의 없다. 오랜 경험을 가진 경찰이 거의 캐릭터 설명의 전부다.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아 대사도 적다.
이성민은 "원래는 가족사를 보여주려고 했는데, 억관이 가진 중립적인 시각이 흐트러질 것 같아서 찍지도 않았다. 영화를 보니까 적절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억관을 연기할 때는 계산을 안했다. 법과 정의에 대해 회의를 느끼는 경찰이고 혼란스러움에 있는 인물이라고 판단했다. 되도록이면 촬영장에서 내가 느껴지는 대로 연기했다. 그래서 내 연기에 내가 놀라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다큐멘터리 같은 요소가 풍부하다. 어둡고 무거운 영화인데, 실화 같다. 영화 말미 하이라이트에서 깊은 감정을 주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력이 실제 같았기 때문 아닐까.
◇이성민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매번 새로운 캐릭터 만든다"
이성민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캐릭터의 폭이 크다. '스펙트럼이 넓다고 표현할 수 있는데, 다른 배우들보다 폭이 더 넓은 느낌이다. 가벼울 때는 한 없이 가볍고, 무거운 캐릭터는 지나치게 강하다. 물론 과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어쩌면 그렇게 편차가 큰 캐릭터들을 완벽하게 연기할 수 있냐. 자유자재로 연기 변신을 하는 느낌"이라고 칭찬을 담아 질문했다.
그는 칭찬이 어색한지, 아래를 내려다보며 "연기 변신이 아니고, 개성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고 겸손하게 답했다.
이어 "나는 워낙에 개성이 없었던 애였다. 누구나에게 별명이 있는데, 나는 별명도 없었다. 군대에서도 연극할 때도 별명이 없었다. '짱구' 이런 별명도 없었다. 연극할 때는 못느꼈는데, 드라마나 영화를 하면서 핸디캡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딱히 잘생긴 것도 못난 비주얼도 아니다. 인상이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다. 어중간한 느낌이 있다. 차라리 인상이 강했다면, 건달이나 형사를 했을텐데 그렇지 않다.
"원래 연극하던 친구들이 영화를 하면 형사나 건달로 하는데, 건달도 거의 안했다. 해도 빈틈이 많은 건달이었다"면서 그는 "색이 있는 배우를 부러워했다. 오달수라고 하면 딱 그 느낌이 있지 않냐. 나는 그런게 없었다. 그래서 나를 갖고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였을까. 매번 등장하는 캐릭터마다 새롭고 신선하다. 완전히 전작의 색깔을 빼고 새로운 연기를 펼친다. 개성이 없는 연기가 더 실제같았다. 개성이 없다는 단점이 카멜레온 같은 이성민을 만든 듯 했다.
이성민은 "가벼운 역할은 좀 어렵다. 차라리 억관이나 '골든타임'의 최인혁이 나하고 가깝다. 내 목소리로 연기를 해도 된다. 계산을 안해도 되고, 있는대로 하면 된다"며 "내가 밋밋해서 그렇다. 난 메소드도 모르고 그냥 상상을 많이 할 뿐"이라며 계속해서 자신을 낮췄다.
◇이성민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40대 중반에 갑자기 터진 인기 "스타병 뭔지 알겠더라"
기자와 이성민은 10여년 이상 나이차이가 난다. 이런 경우 기자와 배우로 만났다고 하더라도 대개 배우들이 어른스럽게 분위기를 주도한다. 아무래도 나이차이에서 나오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성민은 달랐다.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웠고, 말 한 마디 한 마디 신중했다. 평소에는 편안한 아저씨라는 소속사 관계자의 말이 이해됐다.
자신이 나온 작품을 누군가 보고 있으면 바로 채널을 돌려버린다는 이성민이다. 아내가 시사회 오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한다. "직장 상사에게 혼나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그런 이성민이 지난 2012년 인생에서 터닝포인트를 맞이했다. '골든타임'에서 최인혁으로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그에게 열광했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대중의 인기였다. "그 땐 정말 놀랐었다"고 껄껄 웃었다.
"와~ 그 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는 이성민은 "'이런 거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원래 잘 놀라지 않는 스타일이다. 연극 공연 끝나고 나왔는데, 젊은 친구들이 사인 받으려고 줄을 서고 있더라. 정말 놀랐다. 뭘 사오고 그러더라. 그래서 '안 사오면 사인 해준다'고 했다. 그러니까 뭘 만들어서 오더라"고 미소를 지었다.
이어 "내가 해줄 수 없는 게 사인 밖에 없었다. '내가 만약 젊었을 때 이 감정을 느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기의 힘을 느꼈다. 스타병이 왜 생기는지 대충은 알겠더라"고 웃어보였다.
어떤 작품이든 매번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이성민은 '방황하는 칼날' 다음으로 '군도:민란의 시대'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군도: 민란의 시대'를 통해 적지 않은 나이에 액션에 대한 재미를 느꼈다면서 액션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는 욕심을 표현했다. "아이러니하죠. 나이 47에 액션을 하고 싶다니"라는 이성민. "아직 내 연기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이성민은 매번 새로운 도전을 꿈꾼다.